10. 용서의 거리

먼 길을 돌아 마주한 이름

by 리앤

땡스기빙 당일의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다. 라디오에서는 말없이 음악만 흘러나왔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거리 위의 차들도 뜸했다. 이미 대부분의 가족이 한데 모여 있을 시간이었다.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해서, 미리 챙겨둔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낯선 간판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5시간쯤 달리면 펜실베이니아에 닿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혼자 떠난 장거리 여행이라 오래 운전하기엔 무리였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구름은 솜털을 아무렇게나 뭉쳐놓은 듯 하얗고 예뻤다.


오후 3시가 넘자, 펜실베니아의 윌크스베어 표지판이 보였다. I-81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 들었다. 윌크스베어는 산맥 사이의 조용한 소도시였다. 내비게이션 지도에서 가까운 모텔을 찾았다. 저렴한 곳을 피하느라 마을 안쪽까지 조금 더 들어와 방을 구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방 안은 따뜻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멀리서 트럭을 모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식하기에 좋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딱히 할 게 없어 TV 리모컨만 만지막거리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러봤다. 예전 영화들을 다시 틀어주는 채널도 있었고, 집 리모델링, 돈이 오래 밀린 창고 옥션, 푸드 채널 등이 있었다. 나이 든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채널도 있었다. 순간 아버지의 '모나 리사'가 생각났다.


“You’re so like the lady with the mystic smile…”


신비하고 닿을 수 없는 존재. 그건 아마도 아버지가 느꼈을 짐의 인간적인 다정함의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정말 그 길 위로 간다. 아버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한 도로 위에서 잠시 겹쳐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TV를 켜둔 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보니 광고가 계속해서 나오는 걸 처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한참 지나고나서 알게 되었다. 광고 속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더 나은 선택을 설득했다. 한국과 미국의 광고가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할 것이다. 그 점이 꽤 흥미롭게 다가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는데, 그 방식은 어쩐지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아버지의 기억도 그랬다. 어느 날은 그가 젊었고, 또 어느 날은 이미 늙어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설득하려는 것처럼.


다음 날이 되자, 설레는 마음이 더했다. 이제 차를 몰면 켄싱턴으로 바로 향하는 거였다. 내비게이션에 짐의 주소를 입력했다.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쓴 커핏물이 식도를 통과해 위로 내려가며 아리는 기분이 들었다. 체크아웃을 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켄싱턴까지의 거리는 거의 300킬로였다. 도착은 어차피 오후가 될 것 같았다. 다시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가다보니 산등성이를 따라 옅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차창 밖 풍경은 흐릿했고,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짐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안개는 오래된 기억처럼, 쉽게 걷히지 않았다.


해리스버그를 지나 요크 방면으로 접어들었다. Susquehanna 강 사이판을 건너니 잠시 도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메릴랜드주로 진입할수록 하늘은 유리조각처럼 맑아졌다. 차창 밖으로 햇살이 부서지며 달렸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자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듯했다. 그날의 햇살은 이상하리만치 투명했다. 어쩌면 마음속 오래된 그림자를 지워내려는 빛처럼.


아침부터 빈 속에 커피 한 잔만 마셨더니 속이 쓰리고 아팠다. 이제 짐의 집까지 30분을 남기고 있었다. 270번 도로를 달리다 잠시 락빌 번화한 쪽으로 차를 돌렸다. 카페며 서점이며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땡스기빙 다음 날까지도 문을 닫는 곳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열려 있어 다행이었다.


락빌 시내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아담하고 작은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사선으로 비추는 게 보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치킨 샌드위치와 핫티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가 짐을 처음 만나던 날에도 이렇게 햇살이 드는 오후였을까. 낯선 땅의 공기, 어색한 인사,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고마움 같은 것들.


따뜻한 얼그레이티 향이 공기를 채우자, 갑자기 오래된 기억들이 밀려왔다. 낯선 도시였지만 마음을 녹이기에 안전한 곳처럼 여겨졌다. 이곳에서 10km 남짓, 고작 15분 거리에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소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묘했다. 짐이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있을까, 아닐까. 어젯밤 내내 했던 생각이었다. 주소가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걸로 보아서는 정말 존재하는 집인건 확실했다. 짐이 만약 문을 연다면,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아직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무엇을 묻고, 무엇을 침묵해야 할까. 혹시라도 빈집이면 어쩌지. 온갖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호흡을 가다듬고, 차를 한모금 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돌았다. 그와중에 꼬르륵 배가 신호를 보냈다. 이런. 그리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 나는 잘 튀겨진 치킨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때서야 허기가 몰려왔다. 아버지는 다른 고기는 잘 안먹어도 닭고기는 좋아했다. 여름이면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고 만든 '삼계탕'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뜨거운 데 식히며 드세요. 이 양반, 누가 쫓아오나?"

엄마가 떠난 지 몇 해 되어도, 신기하게 두 분이서 나눈 대화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통닭구이도 시장에서 곧잘 주문해서 먹었다. 털이 잘 발라진 분홍빛 피부의 닭을 냉장에서 꺼내어 칼로 탁탁 조각내 튀김옷을 입혔다. 노릇하고 찰랑거리는 기름에 치킨 조각을 하나씩 빠뜨리면, 촤아 차르르 소리가 좋았다.


미국까지 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나의 기억은 내가 자라온 환경과 맞닿아 있었다. 늘 묵묵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는 전쟁이야기 만큼은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억은 곧 나의 기억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가 켄싱턴 가까이에 이렇게 앉아 있는 건 결코 우연도 아니고, 가볍게 치부할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머물던 이야기를 찾으러 가고 있다. 그것이 그리움이었든, 혹은 후회였든, 그 진실을 아버지 대신 마주해야 할 사람은 결국 나였다. 돌아가도 늦지 않다고 스스로를 달래보았지만, 마음은 이미 켄싱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켄싱턴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차창 밖으로 낙엽이 부서졌고, 어쩌다 달리는 차 한 대가 내 옆을 스쳐갔다. 음악을 틀까 하다 말았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바퀴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구르는 소리만이, 나를 짐의 집 앞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가, 이제야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용서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마주하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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