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시간으로
아침이 온 줄도 몰랐다.
일주일 동안 시차적응에 시달리며 이렇게 푹 잠든 건 처음이었다. 매트리스는 푹신했고, 이불은 막 세탁한 것처럼 깨끗했다. 집 안에 스며든 오래된 나무 냄새도 이제는 익숙했다.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침대에 걸터앉아 샤워를 할까 잠시 망설였다.
마따는 어젯밤, 방을 보여주며 편하게 머물다 가라고 했다. 화장실도 혼자 쓰면 된다며 웃었는데, 그 표정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손님방인 듯했지만, 책상과 책장이 있었다. 짙은 나무색 책장에는 책이 빼곡했다. 짐의 서재일까. 그 생각이 미치자,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꿈처럼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벽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엔 막 잠에서 깨어난 내 얼굴이 비쳤다.
아버지의 딸 윤지안.
아버지가 이 집에 살았더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아버지가 남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 선택이 아버지에게는 그리움을 남겼을지 몰라도, 어느 쪽이든 그는 이미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진 사람이었다.
가방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진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짐이 어젯밤 말했었다. "내일 아침엔 내가 커피를 내릴게." 그는 약속을 지켰다.
혹시 내가 깰까 봐,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부엌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준비했을 것이다.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 이것저것 준비했어요."
식탁 위에는 베이글을 비롯해 버터, 잼, 크림치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다 잘 먹는다고 말하고, 뜨겁게 내려진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현관 앞에서는 짐이 아쉬운 듯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나는 대답 대신 두 팔을 크게 벌려 그를 안았다. 마따가 그런 우리를 다시 꼬옥 껴안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처럼 다정한 포옹은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아 마음에 사진처럼 박아두었다.
짐은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 애썼다고 했다.
"영수를 데려왔으면 더 나았을까." 마따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전쟁은 누구에게나 오랜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만이 분명한 진실이었다.
마따는 내게 가면서 먹으라고 과일과 갓 구운 매시드 포테이토를 싸주었다. 그 따뜻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온기가 식지 않길 바라며 냅킨으로 몇 번이나 감쌌다.
짐과 마따는 내가 렌트한 차 앞에서 한참을 손을 흔들었다. 나도 쉽게 엑셀을 밟지 못했다. 괜히 흘러내리는 눈물만 몇 번 소매끝으로 닦을 뿐이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고마움의 몫이었다.
누군가의 집에 머문다는 건, 그 사람의 시간을 잠시 빌린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시간을 빌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걸 사이드미러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헤어짐은 꼭 나쁜 일이 아니라고. 각자의 시간을 다시 살아내다 보면, 그리움으로 또 만날 수도 있으니까. 지금의 세상에서든 다음 세상에서든.
만남을 기다린다는 건, 어쩌면 '희망'이다. 삶을 살게 하는 조용한 희망.
연수는 그 후 일주일 더 이어졌고, 그렇게 끝을 맺었다. 배움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미 내 안에 있었던것들을 새롭게 발견했을 뿐이다.
타국의 언어 속에서, 오히려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침묵, 그리고 내 안의 오래된 질문들이 조용히 정리되었다.
귀국길 비행기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하늘빛이었다. 그 빛이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비추는 것 같았다.
기내에서 나는 기절하듯 밥도 안 먹고 꼬박 잠만 잤다.
‘We’ll be landing in Incheon soon.’
사람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돌아왔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