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커피와 빗방울

작은 일상의 빛

by 리앤

짐의 딸 수잔으로부터, 엄마 마따의 부고 이메일을 받은 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은 메일함을 닫지 못했다. 컴퓨터를 켜면 한쪽 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닫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빈 공간이 내 마음 속을 훵하게 구멍 뚫은 것 같아, 잔 바람에도 금세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요며칠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정말 비가 내렸다. 그래도 어느새 그치기도 했다. 그런 날, 방 안의 공기는 눅눅했고, 창밖 은행잎은 하루가 다르게 짙은 초록으로 변했다. 그리고 수잔의 메일은 내 메일함 속 중요한 파일로 분류되었다.


후덥지근하면서 축축한 날, 6월의 끝. 비는 종일 내리다말다했다. 낮은 층이어서인지, 잠시 열어둔 창문 너머로 흙비 냄새가 희미하게 들어왔다. 빗물이 어디선가 떨어지며 굵은 소리도 내고 얇은 소리도 내며 박자를 애써 맞추고 있었다. 이 소리를 이제부터 장마가 끝날 때까지 줄곧 들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가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고난 후, 세 주었던 오피스텔에 내가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다. 남향이어서 14평 남짓한 집은 오전 오후 내내 해가 드는 것처럼 밝았다.


그 밝음과 조금 다르게 나에게는 이 집이 아직 낯설었다. 축축한 공기는 방 안을 에워쌌고, 그 눅진함이 싫어 에어컨을 틀었다. 남편이 미리 닦아두고 에어필터도 갈은 상태였다. 그때는 그 꼼꼼함에 웃음이 나왔는데, 이렇게 딱 맞게 유용할 줄 몰랐다.


쉬는 날, 그러니까 오늘같은 날엔 아침도 거르고 대충 어제 남은 음식들을 데우는 게 일이다. 이게 아침인지 점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어제 남긴 카레가 당첨이다. 물을 조금 더 부어주고 밥과 함께 전자렌지에 데웠다. 국이 없어 뭔가 뻑뻑한 느낌이 있지만, 탁자에 올려 놓고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감자와 당근, 고기가 조화롭게 섞인 카레밥이 어금니 사이에서 누욱 하고 씹힐 때마다 그 감촉이 좋았다. 밖에서는 젊은이들 몇이 쫑알거리며 거리를 지나갔다. 이곳은 대학가 인근이지만, 조금 떨어진 골목이어서 다행히 분주하지 않은곳이다. 젊음을 잃지 않는 곳이면서도 소규모의 고즈넉한 집 카페들이 많은 그런 곳이랄까.


남편이 지난 주말, 이곳을 잠깐 다녀갔을 때 곳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인테리어가 특이한 카페도 많았고, 중년들이 갈만한 고풍스런 한국식당도 있었다. 거기에서 골드빛 놋그릇에 담아져 나오는 떡만두국을 둘이서 먹었다. 와인병에 시원한 냉수를 담아 컵에 따라 마시는 행위(?)도 재밌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은 그렇게 더한 재미들로 가득차 보였다. 그 변화들을 묵묵히 따라가며, 남편과의 주말부부 생활도 어느새 10년이 흐르며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오래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게 여겨질 정도다. 단지, 아이가 떠나고 나에게 많은 시간이 생겼다는 건 조금 낯선 일이지만. 서로가 바빠도 같은 공간에 사는 것과 아주 따로 산다는 건 확연히 달랐다.


"비 오는 날은 창 밖 보면서 커피 한 잔이 딱이야!"

카레밥을 씹으며 비가 온다고 딸에게 전화하니, 핸드폰 너머로 딸이 말했다. 그 소리에 물주전자의 불을 키고, 원두를 갈았다. 드르륵드르륵 커피알이 서로 부딪히며 갈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방 안을 채웠다. 살구 같은 스톤프루트향내가 진하게 퍼졌다.


"엄마가 내려주는 커피 맛보고 싶다. 나는 아마 오늘도 날밤 새야할걸? 데이터 분석 들어가거든."

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어딘가 흥미로워보였다. 나는 '엄마가 내려주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붉은 벽돌집이 생각났다. 낮게 바람개비가 돌던 그 집 안에서 짐이 내려주었던 아침의 커피 한 잔.


그때 전기포트의 물이 끓었다. 아이는 다시 전화하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 '다시'가 언제일지 몰라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갈아놓은 커피알갱이 위로 또로록 뜨거운 물을 흘려보냈다. 물따라 보글보글 작은 알갱이들이 춤추듯 위로 부풀었다. 이 신선함을 보는 재미로 커피를 내릴 때도 있다. 그럴때면 그윽하게 에디오피아산 시다모의 정체가 확연해진다. 커피알을 사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주인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시다모를 내리면 감귤류향이 피어오르면서 고소한 견과류향도 나요. 신기하죠? 은은한 초콜릿 잔향도 맡을 수 있을거예요. 이건 바디가 가벼워서 딱 찾던 그 맛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녀의 말은 내 취향에 적중했다. 진하지 않으면서도 빠지지 않는 맛. 딱 두 번을 들렸지만, 그녀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경쾌한 멜로디의 핸드폰 전화가 울렸다. 다시 딸이었다. 나는 비 오는 창 밖을 보며 커피 한 잔 마신다고 말했다. 나보고 잘했다고 했다. 왠지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보스턴의 먼 거리와는 다르게 가깝게 느껴졌다.


"너 꼭 거짓말하는 것 같다. 너 뉴잉글랜드 맞아?"

"아니 엄마가 나 보내놓고 뭘."


보스턴행 비행기표는 내가 사줬다. 박사학위 공부하는 기념으로다. 아이가 처음 미국 보스턴에 있는 대학원 이야기를 쭈뼛쭈뼛 꺼냈을 때, 그 나라 이름만 들어도 묘하게 따뜻함이 밀려왔었다. 흔쾌히 아이에게 가보라고 했다. 거기서 마음껏 공부해 보라고.


"그래도 같이 있다 떨어지니까 뭔가 허전하네." 말해놓고 나니 쑥스러웠다.

"아이고! 붙어 있음 싸우게? 그나저나 교수님! 강의는 요즘 어떠세요?"


정교수가 되고부터 딸은 놀리듯 집에서도 ‘교수님!’이라 불렀다. 딸은 내 안부를 물었다. ‘강의가 어떠냐’는 질문이 곧 내 안부를 묻는 말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에게 문학을 공부하는 게, 언어가 아니라 마음을 배우는 일이라고 강조했었다. 10년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분석과 시험 중심이었다면, '기억과 서사 치유' 같은 우리 삶의 실직적 윤리와도 맞닿은 것들을 주로 이야기한다. 때로는 학생들의 에세이에서 과거의 나, 그러니까 아버지와 짐의 흔적 같은 걸 발견하기도 한다. 수업이 내 치유의 연장선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문학과 기억’이라는 세미나를 맡고 있어."

"뭐 '당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이런거? 그래서 '그 기억이 지금 어떤 얼굴로 남아 있지요?' 그런거잖아."


딸은 내 흉내를 내며 어그작, 어그작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던질 수 있는 유쾌함은, 마치 아이의 외할머니인 엄마를 닮은 것 같아 말없이 웃었다.


"이런걸 하다보면, 나는 자꾸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

말하고도 멋쩍어 호로록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마저 마셨다. 딸은 이제 정말 공부해야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 기억은, 나와 아버지, 그리고 짐과 함께 - 여전히 강의실 밖 어딘가, 이 집이든, 내가 잊은 시간 속이든 -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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