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끝나가는 나의 20대를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았던 나의 지난 행동들(아무도 모르는….)을 생각하며,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때가 요즘 같은 때인 것 같다. 철이 드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항상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주변에서도 어른스럽고 식언이 들었다(어른들 말로)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정말 나는 주변 또래들에 비해 성숙하다고 믿었다. 얼굴은 어려 보이는데 분위기가 차분하고 어른스럽다는 말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그러나, 내가 '철이 들었다'라고 생각했던 그때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심적으로 많은 방황을 했다.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 유형일 뿐이지(내가 생각해도 항상 너무 완벽하고 단정하다), 내면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지난 이십몇 년 동안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지금 이렇게 나의 내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의 처음의 순간인 것 같다. 글이야 항상 써왔었지만, 사실 글을 쓰면서도 나를 속이는 것은 너무도 쉽다. 오히려 언어는 사실을 포장하고 마음을 숨긴다. 자꾸 포장하고 숨기다 보면 진짜는 심해에 가라앉은 보석처럼 찾을 확률이 희박하다. 너무 우습지 않은가. 내가 태어나서 가장 오래 함께 있고, 평생 같이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나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이…? 심리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명상, 영성, 치유, 마음공부 등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의 마음에 관심이 많은 나였다. 나 자신의 인생에 관한 에세이도 수도 없이 썼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자꾸 힘든 일이 일어났고, 나는 내 마음이, 내 존재가 자꾸 불편했다. 항상 내가 불완전하고, 부족하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만을 이십몇 년 간 했던 것 같다.
그래, 나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항상 바로 해답을 찾고 일시적인 위안을 하던 것이 문제였다. 책, 글쓰기, 인터넷 커뮤니티, 사람들의 조언 등, 내 내면에서 나온 답이 아닌 외부의 답이 진짜라고 믿어왔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아 그렇구나, 이해가 되네, 하고 다 아는 척했다. 정말 엉터리였다. 교사라고 해서 진짜 뭐든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직업병이 또 도진 것인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정의 내리고 한 번도 진짜 마음을 봐주지 않았다. 글을 쓸 때도, 콘셉트를 정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내 마음을 포장해서 적었다. 그리고 글의 주제는 항상 '마음의 상처와 그 극복'이었다. 차라리 '마음의 상처, 바라보기'였으면 좀 덜했을 텐데…. 깊은 터널 속을 지나면서 '터널 속에 있는 나 자신'은 보지 못하고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만을 쫓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힘들다, 나는 지금 슬프다, 나는 지금 엉망이다. 나는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사는 게 그냥 힘들다. 사람이 싫고 믿을 수가 없다. 모든 게 싫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싫다. 버겁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두렵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잘 안되더라. 자꾸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내가 스스로 내 입을 틀어막고 괜찮은 척, 쿨한 척, 즐거운 척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보인다.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 하는데,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잘못 주문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필요한지도 모른 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순된 인간으로 살아온 날들.
끝도 없는 자기 합리화와 마음의 결핍을 메꿔보러고 시도한 행동들은 모두 후회와 상처로 남았다. 어쩌면 지난날들은 그것을 일깨워주려고 계속 반복된 것은 아닌지. 모순된 지금의 내 모습과 불안정한 마음을 이제는 직면해야 할 때다. 왜 사람들이 30대가 되면,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아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