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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Sep 05. 2021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고찰

당신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기회

현재 고3 담임이기 때문에, 수능 공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아이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그중에서도 말 그대로 '배터리'가 모두 소진된 아이들이 하나둘씩 보이는데, 올해는 유독 증상이 심한 아이들이 많다. 학기 초부터 너무 의욕에 넘쳤던 아이일수록, 하반기인 지금쯤 burn out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수능 공부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신력인데, 가정적인 문제로(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모든 것이 가정 내의 문제이다, 화목한 가정의 아이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잘 버틴다), 혹은 열심히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버거움 그 자체로 정신이 약해진 아이들이 많다.

 

학교에 있으면 답답하여 교실에 있지 못하는 아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 친구들이나 교사에게 집착하는 아이, 하루 종일 자는 아이, 학교 밖에서 일탈하는 아이, 이따금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넋이 나가고 눈빛이 멍한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그래서 학교가 입시 위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정신병동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나도 이 학교에서 몇 번의 번아웃을 겪었고 올해는 갑자기 빈혈에 걸려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빈혈이 그렇게 아픈 줄은 처음 알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네이버에서 찾은 번아웃 증후군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 생각하고 손에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거나 죄의식을 느끼는 일중독에 빠져 번아웃(Burnout) 상태에 이르게 된다. 미국의 정신분석 의사 허버트 프뤼덴버그(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 번아웃 증후군은 탈진 증후군,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데 어떠한 일에 몰두하다가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무기력증이나 심한 불안감과 자기혐오, 분노, 의욕 상실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번아웃 증후군


포인트는

1. 일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

2.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쉬지 않았다는 것.


이 두 가지인데, 현대인들 중에서 이 두 가지에 전부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번아웃 증후군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입시와 취직으로 연결되는 삶의 과제 속에서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하는 압박' 탓인지, '일과 사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탓인지, 사람이 살다 보면 타성에 젖어 결국 환경에 지배당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건강도 기력도 열정도 이미 잃어버린 이후 일 때가 많다.


그리고 번아웃을 겪은 이후에는 깨닫게 된다. 산다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이 우선이 구 나하고. 그 어떤 성취도 '내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빈혈에 걸려(걸린다는 표현이 맞는지?)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깨질듯한 머리와 함께 출근하여 토하면서 수업했던 그날, 깨달았다. (수업 도중 애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다시 수업했다)


토하고 수업하고 조퇴한 그날, 내가 이제까지 잘못 살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기계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은 기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소진되어 가는구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살아온 삶이 이제 경종을 울리는구나.


돌아보면, 대학교 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뭐든지 쉬지도 않고 스트레이트로 해버렸다. (총 167학점을 4년 만에 채워 빨리 졸업했고, 심지어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도 중학교에서 일하면서 준비하여 바로 붙었다. 독종은 독종이다.)


그런 독한 기질 때문에 힘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5년이나 버틴 것이다. 뭐든지 일장 양단은 있기 때문에, 나의 그런 번아웃 증후군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기질이 공부나 일에서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했지만, 개인적인 삶이나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나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어 이제야 그 형태가 드러난 것이다. 나야말로 일중독에 딱 맞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성취에서 보람을 느끼고,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사람, 그러다가 자극이 사라지면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삶의 균형이 크게 어긋난 사람.


올해, 유독 우리 반에 번아웃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나는 실제로 꽤 지쳤고,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더욱 내 모습을 보게 하는 현실의 어떤 장치인 것을 느낀다. 수능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며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성적과 자신의 가치를 직결시키며, 자신을 돌보기 힘든 스케줄 속에서 계속 공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나라도 에너지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제야 번아웃 증후군을 자각하고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균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보다는 개인 생활에 의식적으로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살아나가야 결국에는 일도 적당히 하고 건강히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


결론은,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 혹은 쉬지 않고 달려온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언젠가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게 된다. 사실 번아웃 증후군은 '증후군'이라기보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삶의 당연한 한 국면이라고 생각된다. 특별한 정신적 병이나 증상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면, 한 번쯤 걸리게 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을 '프레임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건강마저 여러 가지 언어로서 규정되고 개인의 특징이 되어 평가받는 사회다 보니 사람들은 심적으로 지쳐버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것이 더 정신에 해롭고 부자연스럽다. 지쳐버린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지치지 않았다고 저항하는 것에 에너지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갈 힘이 생길 때까지 밑바닥에 있으면 된다. 그러나, 밑바닥에 있으면서 위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자신을 속이게 되고 그것이 진짜 정신병이다.


지친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지금 나를 돌아보라는 신호일 뿐이다. 지친 것을 돌아봐주면, 다시 올라갈 일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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