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안정감을 찾아내서 느끼는 법
예전에 쓴 글인,
완벽주의 여성의 딜레마 (brunch.co.kr)를 보고 '완벽주의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문의를 주신 있어 글을 쓰게 되었다.
2021년에 쓴 글인데, 블로그 운영을 꾸준히 못하고 있음에도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위의 글 자체도 그동안의 오랜 생각이 함축되어 단번에 쓴 글이다.
각설하고,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그렇고 이런 사례를 자주 봤습니다. 혹시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지만 내가 하는 말이 정답도 아니고 나 자신도 아직 이런 성향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도한 완벽주의, 혹은 완벽주의적 성향은 남들보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과 사랑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꾸준히 충족되기가 힘들 때 발생한다. 혹은 그것이 '늘' 충족되어야만 만족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나는 남들보다 인정욕구와 사랑욕구가 높은가에 집중해야 하는데,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만족의 순간'과 이만하면 됐다!라는 '수용의 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거창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느낌이다. 성취와 목표달성과는 다르다. 달성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개념이다.)
뻔한 얘기이겠지만,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만족과 수용의 느낌을 충분히 느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끊임없이 (마치 전쟁터처럼, 인생이 생존의 전쟁터지만...) 긴장해야 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거나, 어떤 것을 했을 때 정서적 지지가 충족되는 경험이 부족했다거나, 한 번의 사건을 계기로 트라우마가 생겼다던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슬픈 성향을 무조건 어린 시절에 형성된 환경이나 부모나 외부 상황만을 탓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완벽한 성장환경을 지나온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나도 모르게 형성된 나의 행동 패턴들을 쭉 유지한 채로 어른이 되었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른 채로)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지나치게 갈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어린아이 시기의 무의식적인 고착화를 스스로 깨닫고 자립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줄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5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 이것은 최근 몇 년간 가장 크게 느낀 점인데,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집념과 집착이 강한 것인데, 이것이 일이나 사람에게로 몰빵 되면 본인이 상당히 괴로워진다. 사람은 원래 집착하면 떠나갈 확률이 높고, 일도 스트레스와 과로로 지쳐 중간에 관두는 현상이 발생한다. 차라리 그 집착 에너지를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건강을 지키는 루틴에 쓰는 것이 좋은 전략인 것 같다. 그리고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들은 욕심이 많기 때문에(남들보다 더 뛰어난 외모나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 함.) 일생 생활에서의 루틴을 잘 지켜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강박적으로 자신을 관리하니 완벽주의적 성향은 만족되면서 결론적으로는 자기 만족도 되고 본인의 일상에 집중하면 남한테 관심도 덜 간다.)
또한 일상생활의 루틴(일찍 일어나기, 식단 관리하기, 운동하기, 일찍 자기 등)이라는 것이 강박적으로 지키기 않으면 (몸에 이미 배인 사람이 아닌 이상) 지키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다. 현대 사회는 중독과 집착의 사회이다. 유튜브든 담배든 술이든 모두들 하나씩에 중독되어 있다. 그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운동, 명상, 청소, 샤워, 음악 듣기, 산책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활동이다. 이러한 일상생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꼭 지키는 것을 하루의 업적으로 삼으면 된다. 주변을 봐도 자신만의 살짝 강박적인 루틴이 있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자기중심이 잡혀 있어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일상이 무너지면 그 외의 것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나 같은 경우는 '도시락 직접 싸서 2끼 먹기', '아침 운동 및 명상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아침 운동 및 명상하기'는 거의 매번 실패하고 있는데, 올해 꼭 성공해서 아침 명상과 관련된 브런치북을 내고 싶다.
-> 개인적으로 활동을 할 때 충분히 몰입하는 것은 '즉각적인 자기 만족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활동을 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일 이외의 취미활동'일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활동의 종류가 아니라 무슨 활동이든지 간에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그 순간 자체에 딱 몰입하고 여러 가지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본인이 원래 그런 성향이어도) 최대한 한 가지 활동을 한 번에 하는 것이 뇌의 습관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는, 최대한 뇌를 비우고 그 활동 자체의 완료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집중과 몰입의 순간이 삶을 더욱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충분히 몰입하면, 자잘한 성취는 당연히 따라오고 일을 미룬 죄책감이 커지거나 자기만족이 지연되는 느낌이 없어 '순간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순간적인 만족감을 위해 일에 몰입하고 그것이 완료되는 순간의 느낌을 몸에 익히는 과정인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아무런 기대 없이 그 순간에 최대한 몰입해서 하는 것'을 기준으로 잡는 것이 좋으며, 이러한 활동이 많아질수록 삶은 풍족해진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그 활동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성과를 내기 위해 활동에 임하거나,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몰입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고 잊어버린다.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 싹만 하고 끝까지 한다.
-> 일주일에 한 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아무 일정도 잡지 않는 것'이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도 좋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바깥을 걸어도 좋다. 말 그대로 아무 계획 없이 그날 떠오르는 활동을 그때 그때 하는 것이 'idle tim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위'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은 이완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활동을 추천한다.
-> 자취를 하고 한 3년이 지나서야,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곳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본인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나 공간을 조성해서 공간이 자기 자신을 감싼다는 느낌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은 집에서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공간을 조성하고 청소하고 물건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존중이 생겨나며 안정감이 생긴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배열함으로써 내면도 잠깐 배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활동이다. 물론 '어질러진 마음'은 다시 또 '금방' 어질러지기 마련이고, 청소한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가시적인 영역이지만, 신체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도 정비할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잘 정돈된 나만의 'comfort zone'은 내 마음은 어지럽더라도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내 마음이 살짝은 정돈이 되는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좋은 향기를 맡거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힐링이 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 제일 중요한 것이 5번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오지 않을까? 사람에게 갖는 감정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기대하게 하고 괴롭게 만든다. 특히 타인에게서 받으려는 '인정'과 '사랑'은 때때로 사람들을 옥죄이고 질식시킨다. 나의 '감정의 추'가 타인에게 더 많이 기울어지는 순간, 내 생활이 무너질 때가 있고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인생이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고 해서 그 에너지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을 적당하게 무심히 대하는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노력한다.
늘 명심해라. 흔히 인복이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적당히 '민폐'를 끼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적당히 영악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인복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도리어 늘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눈치가 빠르고 문제해결력이 좋으며, 너무 올곧아 타인에게 희생하는 게 차라리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지나친 타인 수용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타인에 관한 것은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일수도 있다. 너무 오냐오냐하면 금쪽이로 자라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이나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무심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타인을 존중하는 일이며 자신에 대한 예의이다.
어떤 사람에게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 과연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감정인지, 스스로의 내면적인 허기를 채우는(마치 폭식을 하듯이) 행위인지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다가가고, 너무 (게을러지거나 자만하지 않을 정도만) 잘해줘야 한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안정감'이다. 다시 말하면, 완벽주의는 우리 깊은 내면의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지?',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내면의 불안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없애는 것이 아닌) 조금씩 잠재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