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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15. 2020

여자는 자유다

결혼병 벗어나기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아찔하고 앙큼한 매력으로 리처드 기어를 사로잡았던 '줄리아 로버츠'에 감탄하여, 찾아본 그녀의 또 다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처음 봤을 때는 사뭇 다른 그녀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흘러버린 세월로 성숙해진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귀여운 여인>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던 그녀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서른한 살의 리즈. 소위 우리가 말하는 스펙, 잘생긴 남편, 아름다운 미모까지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다. 그런데 그녀는 행복하지 않아서 돌연 '자아 찾기'를 선언하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난다. 무려 이탈리아를 거쳐 인도로 떠나는 긴 여행에서 관광부터 요가 및 명상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쉽지는 않다 - 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흔한 레퍼토리인 잘 나가는 젊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느껴 '자아를 찾는다'는 소재를 다 영화 같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바로 그녀의 불안정한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내 주변의 여자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이 이러한 나의 감정에 크게 공감할 거라 굳게 믿는다. 


리즈의 모습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은 바로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된다고 믿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는 그저 아무런 욕망 없이 해맑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리고 결국엔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완벽해지길 바라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으며, 대학교에 가서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또다시 '적당한 나이'에 출산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  끝이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굴레에 나 자신을 꽁꽁 싸매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잣대를 나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더 유능하고, 더 예쁘고, 더 완벽해지도록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항상 공허하고 '이 삶이 내가 바라던 삶인가?', '내가 원하는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진짜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쉬지 못하는 나의 성실한 모습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알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무의식적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의 70-80%가 아닐까? 내가 살면서 듣고 보고 접한 많은 여자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다르지만 이러한 가치관을 다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고 '여자는 이래야 해, 저래야 해'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도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자존감을 존중받으며 자라지 못한 가정환경의 영향이 가장 큰듯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완벽주의를 위한 자기 검열이 결국 여자들의 삶을 '전시용'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닌, '좋은 인생'이라고 평가받는 인생,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소외시켜버리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할 것 같은 것', '잘했으면 하는 것'에 둘러싸인 가짜 인생, SNS용 보여주기 인생. 그 속에는 자존감이 극히 낮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 여성들의 자기 검열적 사고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주제가 '결혼'이다.


올해만 해도 '결혼병(결혼을 하지 못할까 봐 몹시 두려움에 시달리는 병)'에 시달리는 30대 초반 여성들의 넋두리와 푸념을 많이 들었다. 이런 푸념을 들은 것은 이번이 당연히 처음이 아니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부터 30대 초반의 언니들은 나에게 푸념을 했다. 심지어 내가 24살이었을 때도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결혼'에 대해 불안하다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니 경악스럽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삶의 한 형태가 아닌 '통과의례', 즉 일종의 스펙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못하면 '선택받지 못했다'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이 말은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가 인생에 자신감이 없고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상태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몇 번 반복되니 결혼에 대해 조급해하는 여성들의 심리기제에는 결국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물건'으로 여기고 있는 수동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의 인생을 세상의 시선으로 검열하는 사고방식.  결혼이라도 하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은 것이다. 지금이 몹시 불편하기에.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 리처드 기어

 그러나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생활 방식'의 선택이다. 세상에는 혼자서 사는 사람도 있고 둘이서 사는 사람도, 셋이서 사는 사람도, 고양이와 사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결혼은 생활 방식의 선택이며 내가 필요할 때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특히나 남녀가 똑같이 동등한 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현대의 여성들은 예전의 여성들처럼 결혼을 '생존을 위해'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결혼에 대해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현실이다. '배우자'가 있어야 완벽해지는 인생을 꿈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성들. '결혼'이라는 제도가 내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지금 '불완전한'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도구이다. '나는 불완전해, 그래서 결혼이 필요해'.라는 거짓된 환상이다.



 이러한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이러한 자기 검열적 사고관을 가진 여성들은 자신이 자기 검열을 계속하도록 만들어주는 영혼의 단짝을 찾는다. 바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는 남자'이다. 결혼뿐만이 아니라, 그냥 연애에서도 지나치게 남자 친구에게 헌신하거나, 집착하거나, 아니면 자신보다 많이 부족한 남자들과 연애하는 여성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이라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연애의 일면이다. 그러나 나는 연애에서도 여자들의 '자기 검열'하는 마음이 작동된다고 느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온전히 사랑을 주는 성실한 남자는 왠지 꺼려지고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정성과 시간을 쏟지 않는 남자, 남녀평등을 운운하며 자신의 여자 친구시녀처럼 대접하고 까내리는 미성숙한 인격의 비정상적인 남자, 내가 좋아서가 아닌 나를 이용하는 남자들에게 이끌린다. 내가 생각하는 '부족한' 내 모습을 유지시키면서 연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도구화시키는 자기 검열적 사고관의 종착지에는 결국에는 나쁜 남자들이 있다. (자연의 원리인지, 남자들은 자기 검열이 아닌 자기 합리화의 동물이다. 자존감이 낮은 남자들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 있는 자존감 낮은 여성과 연애를 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가 자존감이 낮으면 연애와 결혼은 항상 비정상적이다.


영화에서 리즈가 잘못된 결혼을 한 것도, 결혼 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연하남과 소모적인 연애를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진짜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 검열적 사고'를 없애고 진정한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있고 건전한 관계도 있다. 세상의 인정을 얻기 위해 완벽해지려는 것보다, 나 자신의 내면을 바꾸면 또 다른 '완벽'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내 인생'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현대 여성들의 과제이다. 일도 열심히, 연애도 열심히 하여 '증명받으려 하지 말고', '내가 어떤 사람 인지 알아가는 것'이 21세기의 진정한 사치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더 완벽할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인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와코는 자기 재산에 대해 말하지 않듯, 자신이 끊임없이 몸에 신경을 쓰고 가꾼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는다. 건강한 이를 가졌지만 이에다 돈을 투자하고, 사우나와 마사지 숍에도 자주 들러 몸을 가꾼다 나이에 걸맞게 늙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와코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늘 산뜻하게 몸을 단장한다..... <중략>.... 이와코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갖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꿈을 품지 않게 되자, 머리에 구멍이 뚫린 듯이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지 않는다. 

                                                                                                             <눈이 내릴 때까지 中>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리아 로버츠

 위의 구절은 46세의 독신 여성인 '이와코'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구절이 참 좋았고, 읽은 후에도 계속해서 생각났다. 이와 코가 비혼 주의를 선언해서가 아니고, 결혼보다 미혼이 자유롭다는 그런 의미도 아니고, 뭐랄까. 이런 여자가 진정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꿈, 환상'을 가지고 자유롭지 않게 살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서 더더욱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여자의 인생은 꿈이 아니고 환상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정의하고 새로 쓰는 책 한 권이다.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는 한, 세상이 어떻게 보든, 삶을 즐기며 즐겁게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여자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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