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다문 입술과 진지한 표정, 잘 웃지 않고 매사에 자신의 기분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의젓함. 나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녀'의 모습이다.
나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유형을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개성이 있지만(모두가 본인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깐) 크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전형적인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다만 내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나이가 많아도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소피는 겉으로는 의젓하지만, 속으로는 자신감이 없다. 특히 자신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솔직하게 행동하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또래보다 지나치게 의젓한 행동을 한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사랑받는 전략을 짠 것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행동은 사랑이나 두려움에서 나오게 되어있다.소피는 사랑받고 싶을수록, 어른처럼 행동하고 자신의 깊은 욕망은 피한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이런 k장녀 스타일의 여자들이 많다. 왜 그런 것일까? 가장 주요한 원인은 어머니의 딸에 대한 감정전이이다. 가정에서 불행을 겪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행복하지 않은 여성들은 딸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킨다. (우습게도 아들에게는 더없이 사랑을 퍼붓는다)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한 수치심을 아들과 딸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부장적인 문화와 여성들 스스로의 굴레 때문에 이런 어머니상이 너무도 많다. 부모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불행에 갇혀 신세한탄으로 인생을 보내는 어린 소녀 같은 사람들. 그리고 방관하는 아버지들.
그 과정에서 특히 큰딸들은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지게 된다. 나도 아이로 사랑받고 싶은데, 어머니는 사랑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역으로 나를 의지한다. 그리고 남동생을 더 사랑한다. 아빠는 가정에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하다. 아, 그러면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지, 내 욕구를 누른 채.
하지만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받고자 하는 것은 본능이니깐. 어른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서 내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 아이같이 불행한 소녀로 남아있다. 내가 어른으로서 끝까지 엄마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사랑받지 못한 내면 아이는 보통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부모가 안 주니깐).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스타일은 제멋대로 하는, 나쁜 남자와 오히려 결이 맞다. 보통의 남성들은 성숙하고 의젓해 보이는 여자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이쪽은 이쪽대로 사랑받는 방법에 서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떨어지거나, 철이 없는 남성을 엄마처럼 보살피면서 마음을 채우고자 한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다.
그래서 현실에서 본 k장녀들은(직장에서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배려, 그러면서 남자에게는 지나치게 헌신, 가족에게 얽매여 모은 돈을 다 가족에게 투자, 나중에는 간병인 노릇까지)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거절을 못한다.
큰딸이 집안 밑천이라고 했던가.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외치고 싶었다.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제발 그만하라고.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 지나치게 남에게 헌신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너무 독립적이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가짜 독립성'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독립성. 나는 독립적이고 쿨하고 강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내 진짜 내면의 어린아이는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편리하지만,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살 수는 없다..
억누를 수는 있다. 나오지 않게,
나이가 50이, 60이 넘어서도 왠지 모를 억누른 애정결핍이 느껴지는 사람들은 삶에서 본인이 희생하고 살았다고 느끼는 여자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나이가 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자식에게 집착. (주로 딸에게는 아이처럼, 아들에게는 연인 같은 패턴은 또 반복), 딸은 어머니의 팔자를 대물림하고 아들은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채, 어머니 같은 여자를 찾는다.라는 k가정의 레퍼토리.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피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갑자기 늙은 노인이 된다. 쭈글쭈글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소피의 내면의 마음)에도 소피는 쉽게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생기가 넘치던지. 노파는 하울의 성을 청소하고, 요리도 하고, 하울과 그 식솔들을 케어하며 그야말로 활기가 뿜 뿜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피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다시 젊어졌다는'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이 밝아졌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솔직할 것. 역시나 지름길은 없다. 정도가 답이다.
소피는 자신의 거울인 하울(지나치게 제멋대로)을 만나고 변한다. 마지막에는 더 이상 자신감 없는 소녀가 아닌, 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용감한 여자가.소피가 엉엉 우는 모습조차 장족의 발전이라고 여겨졌다.하울이 별빛 같다고 표현한 소피의 흰머리가 새로운 자아를 나타내는듯하다.
K장녀는 더 이상 자신을 숨겨서도, 의젓해서도, 지나치게 친절해서도 안된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당당하게 살면 된다. 확실한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수용할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없다. 착한 딸, 착한 여자가 될수록 나에게 돌아오는것은 없고, 대신에 배신과 뒷통수는 있다.(이때의 배신은 나의 진짜 모습을 보라고, 현실이 주는 신호다. 남탓할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