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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y 03. 2020

불안정한 완벽녀, 지선우

- <부부의 세계> 리뷰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방영 첫 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어느새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서 빠지지 않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막장 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불륜’과 ‘치정’이 중심이고 다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대놓고 보기에 불편하다. 거기까지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치달아 사람을 대놓고 놀라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시청자가 주인공 ‘지선우’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그녀의 모진 인생살이를 응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해보이지만,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그녀는 어쩌면 여자들의 가슴 속에 있는 어떤 공통의 ‘감성’을 건드리는 인물이다.   

   

완벽한 여자, 지선우



 지선우를 연기하는 ‘김희애’의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 그대로 드라마 속의 ‘지선우’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흐트러짐이 없는 헤어스타일과 옷매무새, 단아하고 기품 있는 미모, 모두가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 그리고 잘생긴 남편과 잘 자란 아들까지.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녀처럼 되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잘나가는 커리어와 번듯한 가정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녀는 드라마에서 독보적으로 빛났다. 일과 사랑의 균형을 맞춘 사람만이 내뿜는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아우라가 항상 그녀를 감싸고 있어 지선우의 환자들은 그녀를 신뢰하고 존경했으며, 주변 여자들은 그녀를 질투하면서도 동경했다. 그녀 스스로도 그러한 자신의 완벽한 인생에 애착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갔다. 완벽하지만, 겸손하고, 지적이고 품위 있는 여자. 인생에도 교과서가 있다면 바로 그 교과서가 지선우다.      



완벽함은 불안하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의 코트에 붙어있는 ‘빨간’ 머리카락으로 인해 그녀의 일상은 처음으로 ‘완벽하게’ 깨진다. 남편이 오랫동안 그녀 뒤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 그 여자가 지역 유지의 어리고 예쁜 외동딸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지인들도 그 불륜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 그녀의 인생은 한 순간에 모두 가짜가 되었다. 인물 하나 반듯하고 무능력한 남편이지만, 그래도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를 지지했는데, 자신의 인생은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완벽하다고 믿었는데, 자신만 빼고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선우는 배신감과 치욕감에 몸서리치면서 지나친 ‘완벽함’은 결국 자신의 ‘불안함’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환자들을 상대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완벽한 아내로서 요리를 하고, 준영이를 돌보고,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면서도 남편이 깨끗한 부엌 선반에 음식을 흘리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그 ‘강박증’, 지선우의 완벽함 뒤에 숨겨진 것은 바로 ‘불안함’이다.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꾹꾹 누르고 포장하고 숨기는 그 ‘에너지’, 지선우를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은 바로 그 ‘인내심’이다. 겉은 평안해보였지만, 사실 그녀의 성향은 강박적이라는 것을 드라마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강박증과 자기 검열이 그녀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자신의 삶의 본질보다는 삶을 둘러싸고 있는 포장지의 색깔과 모양에만 집착하고, ‘완벽한 인생’의 ‘완벽한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모습을 열심히 연기하는 여자, 그런 여자가 지선우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한 번도 관대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부모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옥죄고 채찍질하며, 그 어린아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버렸을 것이다. 그 어린아이를 숨기기 위해 ‘완벽주의’가 필요했고 성공했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결국에는 ‘남편의 불륜’이라는 형태로 지선우의 무의식 속의 불안함은 껍질을 깨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울타리일까, 족쇄일까

지선우의 전남편인 ‘이태오’는 전형적인 다정하고 젠틀한 남자이다. 능력도, 지성도, 하다못해 의리와 책임감도 없기 때문에 반반한 외모하나로 자신 보다 능력 있는 여자가 ‘필요한’ 그런 운명의 남자이다. 여자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자신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 것이다. 그의 다정함과 젠틀함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지 그 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항상 속는다. 남자가 다정함을 ‘사랑’이라고 포장하면 나의 공허한 마음이 위로받기 때문이다. 이 남자가 무능력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니깐, 그리고 ‘착하니깐’.

 여자의 애정 결핍에서 비롯된 자기합리화는 항상 인생을 망치는 쪽으로 흐른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예외는 없다. 현실에서는 이태오보다 더 무능력하고 인성이 좋지 않은 남자들도 하필 지선우처럼 착하고, 완벽하고, 성실한 그런 여자들과(과연 우연일까?) 사귀고 결혼하고 천천히 그 여자의 인생을 망친다. 당사자만 모를 뿐.


 그러고 보면 지선우를 포함한 현서, 예림, 그리고 불륜녀 다경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자기 자신보다는 ‘사랑’의 손을 먼저 들어주고 남자의 말에 속고 또 속는다. ‘사랑’하나면 그것이 가짜라도 마음이 녹는 존재, 모든 여자들 안에 있는 여자의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여자들은 등장인물들을 욕하면서도 왠지 속이 찝찝하고 쓰렸을 것이다. 사랑은 여자에게 ‘달콤한 마약’이기 때문이다. 힘든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어떤 것,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과 나약함을 단 한 번에 없애줄 그것, ‘사랑’은 여자에게 ‘울타리’이다. 남들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내세우고 그 ‘사랑’안에서 보호받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여자의 허영.

 그러나 ‘울타리’는 ‘족쇄’와 같은 말이다. 내가 ‘사랑’에 의존하면, ‘남자’에 의지하면, 그 ‘울타리’는 나를 옥죈다. ‘나’가 있고 ‘사랑’이 있어야 되는데, ‘사랑’에 의존해버리면, 나의 존재가치와 인생은 ‘사랑’으로 결정된다. 남편이 나를 사랑 할 때는 완벽한 인생 같지만, 남편의 마음이 식으면, 바람이 나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돌아가 버린다. 사랑에 의지하는 여자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지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경제적으로 독립했을지라도 심적으로 혼자서 설 수 없기에 세상이 두렵다.결핍된 애정을 사랑으로 당장 막을 수는 있지만 절대 채워지진 않는다. 사랑은 그래서 울타리였다가도 족쇄가 된다. 남편의 불륜과 함께 지선우도 드디어 사랑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던 완벽한 여자였는데, 사실은 사랑이라는 족쇄에,  ‘이태오’라는 인간에 걸려버렸다.      


여자는 불안이 사라질 때 성장한다

 결국, 지선우는 조금 파격적인 방식으로 이태오의 불륜을 폭로하고, 이혼을 했다. 그 이후,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변했으며, 표정도 더 부드러워졌고, 여전히 외롭기는 하지만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이태오가 다시 고산으로 돌아와서 말도 안 되는 홈파티를 하고, 자신을 협박하고, 준영이를 뺏어가려고 했지만, 지선우는 예전의 그 지선우가 아니다. 더 이상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지도, 완벽한 여자를 연기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참지도 않고, ‘이혼녀’ 타이틀을 달고 당당하게 맞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유롭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변하는 중이다. 남편 ‘재혁’이 계속 바람을 피우는 걸 알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부모님 때문에, 사랑 때문에, 쉽사리 이혼하지 못하는 ‘예림’(나중에 이혼하려 하지만)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전남편 때문에 흔들리고 아직도 미련이 가득한 상황이지만, 이혼하기 전의 그녀의 완벽한 모습보다 지금의 모습이 덜 불안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지선우는 성장했다. 지선우는 달라졌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여자는 이혼녀보단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지선우만 참으면 모든 것이 지나가는 바람이었다고. 남자는 다 똑같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과연 그랬을까? ‘참고 살기 때문에’, ‘완벽하려하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남자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여자의 인생은 완벽함이 목적이 아니다. 사랑받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행복을 위해 주체적으로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결혼이든, 이혼이든, 또 다시 결혼이든 ‘주체적’이라면 누구도 비난할 권리가 없다.      

어쩌면, 신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여자들을 성장시키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속고 속으면서 끝내는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완벽함을 포기함으로써 완벽해지기 위해. 그래서 지선우는 불완전하고 불안하지만, 고통을 겪고 나서 더욱 완전해진 여자이다.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힘을 가진 멋진 여자이다. 드라마의 결말을 아직 모르지만, 그녀의 인생을, 지선우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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