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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Sep 26. 2021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나를 위한 결심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에 의한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고 바로 화를 내거나 감정을 표출하면 뒤끝이 없지만,


그 순간에는 참고 뒤에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띵-했던 순간들.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 가슴을 차갑게 만든다.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겉으로는 강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특정 인간관계에서는 착하고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다. 여자들 중에서 특히 더 많은 것은, 일반적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람을 느끼는 성향, 의존하는(그래서 쓸데없이 잘해주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성향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지나고 보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끌어 왔던 것 같다.


마음의 여린 부분을 캐치해서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사람들, 친해지고 난 뒤에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서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 움이 되지 않았던 모든 관계들.


여자들은 보통 질투심에서 내가 잘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본색을 드러냈고, 남자들은 솔직하고 직선적인 내 성격을 파악한 뒤, 처음과는 달리 만만하게 대하고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자들의 우정은 너와 내가 비슷하다는 어떤 공통의 감각에서 유지되고(말끝마다 '우리'를 붙이며 신세한탄하는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받아줄 도구로 우정을 유지), 남자들의 호의는 본인들이 가진 판타지나 욕구가 사라지거나 목표를 달성하빛보다 빨리 식는다.(이하 생략. 그냥 본능이.)


인간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사람들에게 베푼 호의와 진심은 기대 없이 베풀더라도, 일정 이상 넘어가면 맞호의가 아니라 오히려 비수로 돌아온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유명한 대사.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악의를 가진 적이 없었다. 1번 받으면 기억했다가 2번은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계속 반복되는 패턴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만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천성을
솔직하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나는 천성이 솔직하고 (겉으론) 밝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남들 앞에서는 항상 웃고 좋은 말로 내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고 남들을 먼저 위로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독이었음을, 인복이 없게 만드는 결정타였음을 이제는 안다.


내가 내 기분을 먼저 챙기지 않으니 남들에게는 마치 <무료 급식소>처럼 보이지 않았겠는가? 힘든 사람이 주변에 들끓으면 나도 기분이 다운되며 그들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밝은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려면, 나도 내 마음 속의 아픔을 내던지고 변해야 하며 '어둡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끌리는 관성이나 편안함'을 버려야한다. 사람에게는 행복해지려는 성질만큼이나 불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고집도 있다.


출처: 연합뉴스 / 남의 불행에 지나치게 공감하거나, 어울리는 것은, 나도 역시 불행했던 것이다.


나는 자원봉사자도 전문상담가도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기꺼이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지만, 이제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생하거나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우울한 사람들은 최대한 피할 것이다.


일방적인 무료상담은 끝났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그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착하면 배신당하고 점점 박복해지는> 인간 계의 단순명료한 본질을 간파하고 크게 예외가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믿지 않기에 나를 지킬 수 있다.

내가 있어야 타인도 있고, 세상이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 인생의 안정과 재미를 추구하며 

살짝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며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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