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 휴가 기간 첫 한 달에 제일 열심히 한 것은 청소였다. 직장을 다닐 때는 휴일에는 쉬거나 내가 좋아하는 산에 가거나 템플스테이를 가거나 하는 날이 많아서 구석구석 청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래서 늘 벼르던 베란다, 냉장고, 옷장, 이불 등..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청소 했는데 정말로 너무 행복했다.!
청소를 통해 정리되고 깨끗해지는 공간을 보며 그 만족감이 너무 좋았다.. 몸은 고되나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하는 일이니 맘이 즐겁고 말끔해진 베란다. 냉장고, 옷장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었다.
또한 베란다에 작게나마 꾸민 나의 정원을 보면서 많이 힐링이 되었다. 베란다에 캠핑의자까지 갖다 놓고 하염없이 식물을 바로보고 파란 하늘을 보고만 있어도 너무나 행복한 맘이 들었다.
물 조리개로 물을 주면 식물들도 나에게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신가 하게도 한 번도 새순이 돋지 않던 산세베리아, 스투키, 금전수 등이 새순이 새로 나면서 쑥쑥 자라는 모습은 그저 경이로웠다. 식물도 사랑을 주면 더욱 쑥쑥 자란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명퇴휴가 기간 중 여러 가지 물건을 정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진작에 버려야 할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버리게 될 것을 뭐가 그리 아쉬워 이렇게 쟁여놓고 있었던 건지..
앞으로는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사지 않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총무과를 떠나면서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정리되어 퇴직 후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던 것 또한 나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명예퇴직을 하고 또 하나 좋은 점은 아이들에게 신경 써 줄 여유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방학 내내 직접 요리해서 아이들 밥을 차려주었는데 아이들 인생 중 방학동안 가장 잘 먹은 방학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이렇게 방학 내내 챙겨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며 연구해서 새로운 음식을 해줄 때마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과 남편을 보며 이게 바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무원을 명퇴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사무관 승진하면 받는 승진교육을 못 받은 것이었다. 사무관은 승진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 6주간의 교육을 너무 받고 싶었다. 거기서 30여 년간 근무했을 그분들과 대화하는 그 순간을 꿈꾸었으나 결국은 6급 팀장으로 퇴직을 하게 되었다.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퇴직대비 교육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연초인 올해 1월에 접수가 완료되었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공무원연금공단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혹시나 하고 관련 서비스를 열어보니 기 교육대상자로 확정된 자중 포기자가 있을 경우 그 인원만큼 선착순으로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서 우선 추가 신청자가 있는 기수를 확인하고 기관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신청을 부탁했다. 기관담당자가 연금시스템으로 신청해야 했기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는데 친절히 잘 처리해 주어 고마웠다.
전반기 퇴직준비교육은 2월부터 시작하여 7월 다음주가 마지막이었다. 신랑과 일정을 조정하고 나는 지난 7월에 3박 4일로 미래설계 과정 교육에 다녀올 수 있었다.
너무나 가고 싶었던 교육이었는데 기대했던 대로 너무 알찬 교육이었다. 명퇴신청서를 제출하고 공무원의 마무리를 왠지 못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무엇인가 마무리 과정을 거친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업 중에 강사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자신이며 그동안 수고해 온 자신을 위해 우리 서로 박수를 쳐주자고 하셨는데.. 그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34여 년간 정말 열심히 달려온 00야! 정말 수고했고 고생 많았어!
어느 조직이나 피라미드 구조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사무관을 승진하지는 못한다. 명예퇴직을 신청해서 보니 명퇴자이건.. 정년퇴직자이건.. 사무관을 승진하지 못하고 퇴직하는 6급 팀장급들을 위한 자체 교육을 지자체별로 마련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2주일도 좋고 1주일도 좋고.. 조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던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미래 대비를 위한 교육도 지자체 나름대로 실시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게 이번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주관하는 퇴직준비교육을 들었으나 이 마저도 듣지 못 듣고 떠나는 공무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는 퇴직준비교육은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개최되었다. 천안아산역으로 오면 공단에서 제공해 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천안상록리조트로 올 수 있다. (셔틀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교육신청 후 공단에서 안내해 준다)
상록호텔 1층 로비에 도착하니 교육등록을 회차별로 등록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2 기수가 함께 진행을 하여 교육인원만 160명이 넘었다. 도착하면 먼저 명찰을 받고 방을 우선 배정해 준다. 1실에 2~3명씩 방을 배정하였는데 나는 3층 2인실로 배정을 받았다. 점심 먹기 전 먼저 짐을 풀러 숙소로 갔는데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아주 맘에 들었다. 점심을 먹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장 뒤에 붙어 있는 명단을 보니 교사분들도 있었고 교육(지원) 청에서 오신 분들이 가장 많았다. 나같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거의 없었다. 컵, 우산, 수건 등을 기념품으로 주셨고 교육책자도 받았다.
1일 차 교육은 "퇴직준비의 필요성", "여가설계"에 대한 교육이었다. 모두 유익한 교육이었다. 공무원으로 34년을 보냈는데도 우리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을 거라서 퇴직 후에도 40년도 넘는 세월이 우리에게 남아있다고 하셨다.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공감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퇴직 후에 보내는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오후 5시 30분경에 교육이 끝났고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는 자유시간이었다. 집을 떠나 나 혼자에 집중하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인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고슬고슬하게 아주 느낌이 좋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 있노라니 그야말로 힐링이 되었다.
2일 차는" 연금제도, 공단사업안내" 교육을 오전에 받고 오후는 점심을 먹고 현장교육으로 홍대용과학관과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오전 수업인 "연금제도, 공단사업 안내"는 아주 유익한 교육이었고 강의를 해주셨던 공단 직원분도 너무 친절하시고 자세하게 안내해 주셔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오후 현장학습은 오전보다 비가 더 많이 와서 이동에는 불편하였으나 나름 좋았다. 홍대용이라는 분은 조선시대의 아주 유명한 실학자였고 거기에는 천체투영관도 있었는데 거기서 오로라 체험을 하였다. 오로라가 태양에서 폭발한 흑점이 우리 지구로 와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오로라 체험은 너무 아름다웠고 정말 생생한 체험이었다. (누워서 체험하는 거라서 일부 분들은 코까지 골면서 열심히 주무시는 분들도 계셨다.. ^^)
현장체험까지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5시 정도였는데 저녁식사는 5시 30분부터라고 하였다. 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거보다 숙소에서 혼자 먹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같이 방을 쓰시던 분이 일행이 있어 다른 방으로 가셨기 때문에 2일 차부터는 나 홀로 방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야호~) 숙소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한 식사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밥을 먹는데 너무 행복했다.! 나이 들면서 좋은 것은 신랑과 둘 또는이렇게 홀로 즐기는 게훨씬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TV를 좀 보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3일 차 교육은 "관계와 소통", "재무설계" 교육이었다. 3일 차 교육이 제일 인상에 깊었다. 특히 오전 강의를 해주셨던 "관계와 소통"교육은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셨던 강사님이 제일 기억에 남고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영상은 강사님 아버님에 관한 영상이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오후 교육은 모두의 최대 관심사인 재무설계 교육이었는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건강보험료에 관련된 부분은 아주 꿀팁이었다.
이어진 강의는 "건강관리" 교육이었는데 강사분은 70이 넘으셨는데 아주 유쾌하신 분이었다. 옆지기에게 가장 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건강관리를 위해 세 가지 운동을 알려주셨는데 까치발운동, 스쾃, 런지 이 세 가지 운동은 하루 100개 정도 꼭 해야 한다고 하셨다.
3일 차 저녁이 되어 이제 슬슬 집에 갈 생각이 들어 너무 아쉬운 맘이 들었다.
4일 차는 오전교육만 있었다. "일의 의미"라는 강의였고 공무원 출신이신 분이 강사셨다. 재취업을 위한 면접 팁도 알려주셨고 나름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을 받기 전에는 34년간 일했으니 앞으로는 그냥 푹 쉴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앞으로 남은 나의 퇴직 이후 인생을 위해 조금 더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리라 맘을 먹었다.
아주 알차고 좋았던 교육이었다. 공단에서 아주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고 음식도 너무 맛있었다.
퇴직을 준비하고 있는 공무원이 있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미래설계교육은 퇴직예정일로부터 5년 이내는 신청가능하므로 퇴직임박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1~2년 전에미리미리 교육을 받아 놓는 것이 퇴직 후의 삶을 계획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