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과를 떠나 기초생활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이 힘들었었다. 가장 큰 것은 사람들이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를 좋아해서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나 또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총무과를 떠나면서 사람들이 멀어져 갔다. 그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인해 나에게 왔었구나.. 우리는 퇴직을 해도 만날 거라는 둥 했던 사람들, 맘을 나누었다고 생각한 사람들까지 멀어지니 그 상실감은 엄청났다.
인사팀장으로 있다가 온 나는 구 세력이었고 나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 혹 불이익(?)이 발생될 수도 있으므로 나도 굳이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고.. 미리 이렇게 사람들의 본심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잘된 거라고 생각해보려 했다. 내가 실제로 겪어보니 이런 일을 겪으신 예전 팀, 과장님들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지 알 거 같았다.
새 술은 새 부대로 담으란 말이 있듯이 새로 오신 단체장님이 본인이 쓰고 싶은 사람을 요직에 배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인사권은 단체장의 당연하고 고유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괴로운 맘을 달래려 점심시간에 청사 뒤편에 00 산을 올랐다. 구내식당에 가서 직원들과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나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들뿐만 아니라 왠지 고소하게 (지극히 나만의 생각..)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원래부터 등산을 좋아하기도 했고 자연을 접하고 있노라면 맘에 큰 위안이 되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산에 올라 싸 온 도시락을 먹기도 하며 산 위에서 산아래 도시를 바라보며 세상살이 별거 아니고 나만 괴로운 거 아니고 그래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되뇌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더욱더 고립되어 갔으며 조직 내에서 필요 없는 인간이 된 거 같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잉여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이전까지는 학교에서도 조직에서도 항상어느 정도의 몫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더 이상 노력해도 나아질 거 같아 보이지 않는 환경에 절망감을 느꼈다.
계속 이 직장을 다녀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특히 만 33년이 지난 2023년 2월부터는 더욱더 심도 있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3년이 지나면 (나 같은 경우에는 이전 연금법 적용대상/현재는 35년 이상임) 기여금을 공제하지 않아 오래 근무한다 해도 퇴직금이 별로 변동이 없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들이 청사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에 있어 아침마다 둘째와 같이 등교를 같이 하였기에 둘째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견뎌보자 맘을 먹었다. 그리고 혹시나 열심히 일하면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서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그만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한 지 33년이나 되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기회만 준다면.. 나는 실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찾아가서 열심히 일하겠으니 믿어 달라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오만일지 모르지만 내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견디던 나는 2024년 1월 초 더욱더 한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2024년 1월 2일 자로 도서관으로 발령 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작년 12월 말에 나는 1주일간 특별휴가 기간 중이었다.조금이나마 품었던 희망이 모두 사라진 기분이었다.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다. 특별휴가 중인 것이 얼마나 다행 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에서 인사발령을 들었다면 표정관리하기 너무 어려웠을 거고 또 바보같이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특별휴가 중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번 기회에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하였으나 그래도 일단 도서관에 출근하고 나서 마무리를 해도 해야겠다는 맘을 먹고 일단 출근을 하였다. 도서관은 한 번도 근무해 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너무나 낯설었고 출근하는 첫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서관으로 첫 출근했을 때 학생시절 신학기 시작할 때처럼 낯섦과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는 사람도 없는 도서관은 정말 너무 가기 힘들었다. 공무원 생활 34년여 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 정도로 도서관으로 발령받을 당시의 나는 심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그래도 첫날 어찌어찌 마치니.. 지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외청이라서 서로 간섭(?)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좋아하는 책도 실컷 볼 수 있으니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서관 주무팀장은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일복은 날 따라왔다. 공약사항 추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000 건립건이었는데 이미 예산까지 확보된 상태였다. 일을 할 의욕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바로 업무를 챙겨야 했다. 대충대충이 안되었던 나는 업무를 분석했다. 건립부지로 선택한 장소를 분석을 해보니 사실 건립이 어려운 장소이고 운영주체에 대한 부분도 불명확해서 위치를 다시 도서관으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분석보고를 하여 건립위치를 도서관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던 2월 말옆에 있던 도서관 팀장님께서 도서관장님으로 승진을 하셨고 3월에 사무관 승진 교육을 가셨다. 관장 부재 시 주무팀장이었던 내가 업무를 대리해야 했으므로 명예퇴직에 대한 고민은 잠시 미뤄야만 했다. 도서관장님으로 승진하신 분은 사서직으로 나이는 나보다 많았으나 경력은 나보다 짧았다. (6급 팀장을 통틀어도 총경력이 나를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분이 사무관 교육을 떠나신 지 2주 차에 인사발령이 났다. 그때 우리 팀에 시설관리직으로 있던 직원분이 다른 과로 발령 나시고 시설관리직 분이 새로 오셨다. 그런데 새로 오시는 분은 펌프장에서만 거의 4년간을 근무하셨던 분이었다. 펌프장에만 근무하셨으면 실무를 그동안은 안 보셨을 거 같고.. 도서관 시설관리는 엄청나게 많은 업무를 봐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도서관은 올해 건립 20년 만에 엘리베이터 교체, 5년여 만에 옥상 방수공사 등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 오신 분은 발령장을 받자마자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은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거 같아서 팀장님께 미리 말씀드리는 거고 인사팀에 가서 전보요청을 할 거라고 하셨다. 그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도 각종 요금납부 등 매월 정기적으로 업무만큼은 처리해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인사팀에 다녀오신 직원은 인사팀에서 바로 인사를 낼 수는 없으니 한 달 정도는 기다리라고 얘기했다고 하였는데..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과연 전보 인사를 내줄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러면서.. 맘 속에 잠시 접어 두었던 명퇴에 대한 고민을 더욱 심도 있게 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경우 1970년생이므로 정년퇴직은 2030년으로 약 6년 정도가 남았었다. 명예퇴직금과 받게 될 월 연금액과 정년퇴직 시에 받을 금액을 비교해 보았다. 33년이 지났기에 연금액이 별로 상승하지 않기에 명예퇴직을 해도 그리 손해 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명예퇴직을 하면 연금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주어서 재직자보다도 더욱더 연금액이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무원연금과 지방공제회 분할급여까지 합치면 직장을 다닐 때보다 조금은 못하지만 생활은 가능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을 하지 않고도 월 연금액을 받는 연금 생활자가 되면 더 이상 자존심을 굽히지 않아도 되었다. 34여 년이 넘도록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그만두어도 될 거 같았다. 제일 맘에 걸렸던 것은 아이들에게 내가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아이들에게 나름 엄마의 상황을 얘기했는데 애들이 잘 이해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날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많이 애썼다고.. 이 글을.. 기록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그 당시 4월부터 몸이 더욱더 아파졌다. 체력 하나는 자신했던 나인데 감기도 떨어지지 않고 맘이 힘들어서인지 몸도 힘들어지고.. 당당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패배감에 젖은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설관리직원분이 병가를 내시고 도서관장님께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신 4월 말 이제 더 이상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진작에 그만두고 싶은 맘을 도서관장님의 사무관 승진교육까지 참았던 것이다.
도서관으로 오면서 사람들과는 더욱더 멀어졌고 거의 퇴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에 가장 큰 상실감이 사람들과의 멀어짐이라는 데 나는 이미 2년 동안 충분히 겪었기에 퇴직하고서도 외로움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맘을 굳히고 있던 중이었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관장님께 5월 중순에 장기재직휴가 20일을 먼저 쓰고 이후 남은 연가를 소진하고 명예퇴직특별휴가 3개월(지자체별로 다르다)에 들어가서 9월 말에 퇴직하겠노라 말씀드렸다. 관장님께서는 장기재직휴가 20일만 쓰고 쉬고 나서 명퇴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지만... 이미 내 생각은 확고했다. 휴가 들어가기 전에 당장 시급했던 시설 관련 계획서, 공사계획서 등도 작성하고 결재까지 맡았고 새로 오실 팀장님께서 참고하실 각종 자료와 일정 등도 정리해서 남겼다.
총무과로 장기재직휴가 공문을 보내고 인사팀장에게도 쪽지를 보냈다. 9월 말일자로 명퇴하겠다고.. 공문도 보냈고 원본도 사송 편으로 보내겠다고..
그러니 조속히 시설관리직원을 충원배치해 달라고.. 시설관리직원 없으면 여기는 돌아가지 않으니 남은 직원들마저도 병나기 전에 어서 직원을 충원 배치해 달라고 부탁하는 쪽지를 보냈다.
쪽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인사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팀장님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팀장님처럼 능력 있는 사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일단 장기재직 휴가 20일만 보내고 오라고.. 기다리겠다고 얘기해 줬다.
그 맘이 너무 고마웠다. 사직서를 내자마자 바로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잡아주는 그 맘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렇지만 너무 힘들게 결정을 내린 것이기에 다시 한번 그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절망의 구렁텅이에 날 두고 싶지 않았다. 희망도 보이지 않고 존재의 이유조차 없는 곳에서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둬도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남은 삶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맘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친했던 분들에게는 메신저 쪽지로 인사를 전했다. 답장이 오는 사람도 있었고 또 없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는 분들도 있었으나 나는 맘에 여유가 없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화 통화를 하면 내가 울음을 터트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에 들어간다는 편지를 보내고 나는 2024.5월 중순 명예퇴직신청서를 제출하고 약 4개월간의 명예퇴직 휴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