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미소 Aug 03. 2023

유명 웹툰작가의 2차 입장문을 읽었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래도 지지하기가 어려운 이유


어제는 유명 웹툰작가의 2차 입장문이 인터넷에 돌았다. 찾아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작성했던 사람인데 그 작가의 입장문을 읽고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그 작가의 심정은 같은 부모로서 이해가 되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같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상황과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생각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다를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를 위하는 마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조차도 사랑하기 때문에 학대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음만은 누구 못지않은데 방법을 잘못 택하는 부모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나도 같은 부모인데 너를 이해할 수 없다라든지, 나도 장애아이를 키우지만 너를 이해할 수 없다라든지 등의 말들을 쉽게 하지만 사실 무의미한 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절대 같은 조건의 같은 상황의 부모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아이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경증 부모가 중증 부모마음 알기 어렵고, 같은 중증 부모도 넉넉한 형편의 중증 부모와 부족한 형편의 중증 부모 입장이 같을 수가 없다. 다만 자녀를 위한 마음에 대해서는 서열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절대적인 사실만 존재할 뿐이다. 그 마음의 크기에 대해 서열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부모마음은 다 같다'라고 표현을 할 뿐이지 이 말이 각 부모의 '입장'이 혹은 생각이 모두 같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작가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그 상황에 그 조건에 놓였다고 한다면 충분히 속상했을 것 같다. 나도 특교자 아이를 키우고 있고 특수반 담임선생님을 학부모로서 만난다. 그리고 나는 교사로서도 통합반의 특수반 아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했을 때 부모로서 찢어지는 마음에 공감은 된다. 여기에 공감이 안된다면 부모로서 교사로서 아직 정말 힘든 상황에 놓인 경험을 못해봤을 가능성이 크고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의 행로를 지지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육적인 판단은 단편만 보고 내릴 수 없다. 교육은 생활 그 자체에서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기에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야만한다. 메쓰의 사용이 수술실 안에서는 용인되지만 수술실 밖에서는 범죄가 되듯 그 상황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말을 다른 교실상황에서 다른 학생에게 했다면 당연히 학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한치의 잘못도 없을 만큼 아주 잘하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는 의미다. 상처를 줬을 수 있다. 조금은 비교육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을 하고 분리조치가 된 학생을 하루종일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바라보지 않은 점이 아쉽다.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여기서 말하는 조건이라 함은 장애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는 학생을 교육하는 상황,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을 교육하는 상황, 실제 피해학생이 발생한 상황, 그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 처분이 우선인 상황, 분리조치가 내려져 하루종일 특수반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 원반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결정이 내려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등교하고 있는 이 상황들이 조건인 것이다. 그 모든 조건을 고려한 상태에서 상황을 바라봤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도 그런 언행을 하셨다면 판단은 달라진다.)


둘째, 꼭 그 방법이었어야만 했을까? 에 대한 부분이다. 특수교육은 개별화 계획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에 일반교육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개별 교육적 지원을 받는다. 그렇기에 선생님과 상대적으로 쉽게 접촉할 수 있는 편이고 선생님께서도 그 부분에  대해 자발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예측이 가능하다. 그 정도의 라포가 형성된 단계임에도 아무리 그러한 정황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선생님께 먼저 의논드리지 않은 점이 아쉽다. 아무리 내 아이를 위해 선생님께서 노력을 하셨다고 해도 선생님의 반응을 부모가 들었다면 충분히 속상했을만한 상황이다. 선생님께서 고마운 분이라고 하여 내 아이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안다.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 선생님께 충분히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건너뛰고 고발조치를 한 부분이 굉장히 아쉽다. 아니 안타깝다. 사과의 기회를 빼앗긴 선생님도 안타깝고 용서할 기회를 버려버린 그 작가의 선택도 안타깝다. 사실 법정은 싸우는 장소이지 화해와 용서를 하는 공간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작가가 고발의 의미를 몰랐을 수가 없고, 처벌을 희망하지 않고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그 작가의 심경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사과받을 일은 확실하지만, 그 방법이 꼭 법정싸움이었어야 했는가? 서로를 아픔으로 더 밀어 넣는 방법이진 않은가? 법정 싸움은 누가 승리로 끝나든 아픔이 남는 것이란 걸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셋째, 입장문에서 선생님에 대한 사과가 빠진 부분이 아쉽다. 남들은 말한다. 입장문이 구구절절 길고 너무 자기변명 위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만큼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답변을 요구했던 항목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입장문이라는 것 자체가 당연히 변명을 기반으로 적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은 상대측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지도하게 된 경위를 구구절절 변명 하셨다. 양쪽 다 자기변명을 한 것이 맞다. 그리고 그 변명이란 것을 적는 것이 입장문이 아닌가?


그런데 그 작가의 입장문에 전국 특수선생님들에 대한 사과, 학부모에 대한 사과 등은 포함되었는데 반해 정작 해당 선생님에 대한 사과가 없는 점이 아쉽다. 그 점이 결국은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결론은 그 특수선생님께는 미안하지 않고, 그 선생님께서 잘못한 것은 맞으나 내가 선처할 의사는 있다.라고 해석된다. 누구나 그 입장문을 읽으며 작가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는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도대체 이 작가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반성을 해야 할까? 전국의 특수 선생님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부분보다, 같은 반 학부모님들께 피해를 입힌 부분보다, 우리 아이의 제2의 보호자였고 교육공동체인 특수선생님께 일말의 상의도 없이 바로 ‘법정싸움'을 들이민 부분에 대한 사과는 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선처'를 요구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선처'를 요구한다는 것은 '당신 잘못이 있지만 내가 봐줄게'라는 의미가 강하기에 ‘선처'가 아닌 ‘사과'를 하는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정싸움'을 들이민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를 하면 된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상처가 되었다는 점을 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 부분은 아이에게도 충분한 설명을 하고 상처를 보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아이의 회복을 위해서) 그 작가도 무리하게 직위해제를 시킨 그 고발에 대해 선생님께 진심 어린 사과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특교자의 부모로서 굉장히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께도 나도 모르게 굉장히 송구해진다. 특교자를 키우는 부모가 선생님의 은혜에 얼마나 큰 감사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선생님들께 직접 보여드릴 수 없음이 서글프다. 저 상황이기에 선택하게 된 하나의 교육적 선택이었을 뿐이다. (최선이 아니었을 수는 있으나 적어도 최소기준은 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최소 기준이 있을 뿐이다. 최소기준을 넘겼다면 그 이후의 교육적 판단은 자격을 가진 교사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처방을 내리듯 그 순간 그 선생님의 교육적 처방이 그러했을 뿐인데 마치 어느 상황에서나 저렇게 지도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부모들이 쉽게 남기는 날 선 댓글에 내가 먼저 상처를 받는다. 저 사건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특수한 교육적 선택이었음을 부모님들도 선생님들도 법정에서도 그리고 그 작가님도 꼭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 저런 특수한 상황은 매번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 정말 특수하게 발생하는 일시적인 행동임을 꼭 선고려하여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 일을 모든 특수아동에게 동일시하여 생각하지 않길 바라며, 이 일이 아동학대 무혐의를 받게 된다면(그럴 거라 믿는다) 저런 언행 자체가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란 걸 알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 특수교육적 상황을 놓고 봤을 때에만 용인이 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음을 인정받는다는 뜻이란 걸 꼭 이해하길 바란다. 특수교사 자격증을 가진 선생님이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특수교육적  처치이기에 용인될 뿐 즉, 일종의 정당방위 혹은 정당행위에 대한 부분이지 상황을 배제하고 단순 그 언행만 놓고 판단할 수 없음을 반드시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는다면 특수교육의 본질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꼭 인지해주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탄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