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두 답답하다.
일요일은 그냥 나가기 싫어. 내일 회사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 지거든. 이런 나를 보고 너 아까 뭐라고 그랬지?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구? 야! 너랑 나랑 무슨 사이길래 내가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는 거까지 신경 쓰는 거야? 바보야. 우린 그냥 친구잖아. 하지만(설마) 네가 그런 식으로 내 걱정을 한다면...
솔직히 나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내가 다른 누굴 만날 수 있겠어. 머리도 복잡하구. 감정도 정리가 잘 안 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런 내가 연인이 아니라 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 아직은 그래. 앞으로도 결코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될 수 있는 한은 만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랬잖아 독신주의라고. 그럼 너는 왜 만나느냐구? 그래 너 좋아하지만 내가 끝까지 널 친구라고 하는 이유는 분명 우리가 연인이 된다면 언젠가는 헤어질 텐데 이건 무엇보다도 확실한 일인데... 그런 거 이젠 싫어. 다신 감당하기 힘들 거 같애. 그러니깐 나는 좋아해두 너는 나 좋아하지 마. 알았지? 이 약속은 우리 처음 만난 날 내가 했었던 얘기지. 아니 처음뿐만이 아니고 꽤 많이 들은 얘기일 거야. 이기적인 건진 모르지만 상처받기 싫거든 그냥 이대로 편하게 살고 싶어. 그래 이젠 이런 얘기 그만하자. 괜히 묻지도 않은 얘길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말야.
네가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구 그래서 그렇잖아. 근데 너는 바람피워도 돼. 아니지 명백히 따지자면 바람이 아니지. 그래 어쨌건 다른 여자 만나두 된다고. 그래 설마 네가 나 때문에 다른 여자 못 만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많이 만나. 다른 사람들 보니깐 휴가 나와서도 많이 만나드라. 꼭 소개팅이 아니더라두 그냥 재미 삼아 솔직히 너 같이 여자 좋아하는 애가 여자 구경도 제대로 못하는 부대에 있다가 휴가 나왔는데 별 보잘것도 없는 나 만나느라고 시간낭비 해서는 안되지. 근데 꼭 좋은 여자 생기면 이 누나 꼭 소개시켜 줘야 해. 너한테 어울리는 짝인지 내가 한번 봐줄게. 근데 내가 보기엔 너 여복이 좀 있는 거 같애. 틀림없이 좋은 여자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군 생활 열심히 해. 요번엔 너 쫌 바쁘겠다. 그치. 그럼 그럼 바쁜 게 좋은 거지 근데 군바리 좋아할 여자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게 여자애들한테 잘 좀 대해주지 너 좋아한다고 하는 애들한테 그렇게 튕기냐. 좌우지간 눈만 높아서리. 나중에 얼마나 이쁘고 똑똑한 여자 만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너 속으로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고 생각하면 너 죽는다. 너 나 터프한 거 알지? 잘해. 응?) 너한테는 이상하게 누나 노릇이 하고 싶으지 모르겠다. 너 같은 남동생 하나 있는 게 소원이어서 그런가 봐.
아까부터 계속 머리도 아프고 몸도 쑤시는 게 아무래도 또 감기가 오는가 봐. 너두 조심해. 이젠 좀 수그러든 거 같긴 한데 그래두 겨울이잖아. 그리구 혼자 있을 때일수록 자기 몸관리는 철저하게 해야지. 그래서 다음 특박 때 건강한 네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중에 또 편지 쓸게. 안녕.
1998. 12. 13.
P. S. 일병으로 진급한 거 축하해.
참 세월 빠르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깐 조금만 더 고생해.
지금두 잘하구 있잖아.
언행일치... 자고로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분처럼 언행이 불일치 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우린 그냥 친구라는 그녀... 그러나 아내와 나는 내 기억으로 두 번째 만난 날 첫 키스를 나눴다.
평일 낮 한적한 커피숍의 구석자리였다.
나란히 앉아 있는 중에 그녀가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대 왔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본 그 잔인한 각도에서는 기대 있는 얼굴 아래 입술이 가장 또렷이 보였다. 빠알간 그것은 정말 너무도 예뻤다. 입을 맞추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의 뻘건 밀물이 정맥을 통해 밀려드는 듯 내 심장은 대책 없이 혼자 날뛰기 시작했다. 심장의 과부하와 함께 침 삼키는 것도 잊은 내 몸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진정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나는 절실했으나 지나치게 솔직한 살기 위한 날숨 한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너 그렇게 계속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뽀뽀한다???”
이런, 유치원생 소꿉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멘트 하고는... -_-
살짝 고개 돌리며 눈을 들어 스윽 한 번 나를 올려볼 뿐 그녀는 이내 같은 자세로 돌아간다.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심장의 쿵덕과 목의 꿀떡의 화음은 이제 휘모리장단을 이루어 내 몸속에서는 한바탕 사물놀이판이 벌어졌다. 그런 나와 달리 사방은 고요했고 그녀는 역시 미동조차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오로지 문제의 그 입술 만을 살포시 움직여 그녀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폐부를 저미는 한마디...
“바보”
난 참지 않았다.
아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아내와 내가 처음 나눈 입맞춤이었다.
- 은경이 삼철이 1 / 05화 두 글자 中
인정은 할 수는 없으나 그녀의 말대로 나처럼 여자 좋아하는 애가, 여자 구경도 제대로 못하는 군대에 있으니 특박의 많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 했던 것은 물론이고, 그 시간들 중에서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내내 그녀의 입술을 가만두지 않았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입술뿐이었던 기나긴 인고의 세월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친구사이에 그래도 되나???
그녀가 피노키오라면 못해도 코가 1M 이상은 자랐을 것이다. 거짓말은 언행불일치의 다른 말이다.
그녀는 나를 좋아해도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겠다?
그것을 약속했다면 나도 피노키오다.
다만, 바보 피노키오 코는 10Cm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