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 정말 싫다. 아무 할 일없이 집에만 있는 날.
아무런 약속도 없고 뚜렷이 해야 할 일도 없고. 참 재미없는 날.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할까? 아마두 난 너 제대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무의미하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야겠지. 근데 아냐, 나름대로 괜찮은 거 같기두 하고. 이런 데서도 삶의 소중한 의미를 찾아야겠지.
배고프다. 항상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부르단 얘기만 썼던 거 같은데. 첨인가? 배고프단 말이?
내가 그랬잖아 목이 좀 아프다고. 그런 것도 유전인가 봐. 예전에 우리 엄마가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을 기색이 들면 항상 목부터 아프셨데. 편도선이라고 하지? 근데 내가 그래. 감기가 오려고 한다거나 아님 조금 피곤할 때도 항상 목이 많이 아파. 그래서 밥두 잘 못 먹기도 하구. 편도선 수술을 할까 하다가 무섭다길래. 그리고 아프데. 그래서 못 했거든.
좌우지간 그래서 밥을 못 먹겠더라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죽 하고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솔직히 죽이 밥이 되나? 말 그대로 죽이지. 그래서 그런지 배 무지 고프다. 그래도 그 덕분에 목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 이 시간에 뭘 먹으면 살찔까 봐 먹지도 못하겠고. 고민이야. 뭘 먹어야 살 안 찌고 배부를 수 있을까? 아냐, 그냥 굶는 게 나을 거 같애. 근데 자꾸 머릿속에 먹을게 떠 올라서 죽겠다. 나두 엄살 꽤나 부리지? 좀 아픈 거 참고 밥이나 먹을 걸. 괜히 그것 갖고 핑계 대서 죽이나 먹고 말야. 이 얘긴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자꾸 생각나잖어. 우쒸.
오늘 일요일인데 너 뭐 했어? 요즘도 교회 다녀? 근데 너 종교가 있긴 한 거야? 아니 아무래도 그런 데서 종교라도 있으면 좀 낫지 않겠어?
잘 지내구. 항상 몸 건강해라. 어디 아프지 말구. 아플땐 참지 말구 약 이래도 먹어. 너 보니까 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항상 괜찮다구(아퍼도) 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래봤자 너만 힘들잖아. 그러니까 아프면 약 같은 거 꼭 챙겨먹구 그래. 내가 네 옆에 없어서 신경도 못 써주잖아.
아니면 부대에서 아프지 말고 휴가 나오면 아퍼라.
내가 약두 사주고 "호"도 해줄게. 히히.
안 아픈 게 제일이지.
그럼 다음에 보자. 안녕.
1999. 2. 7.
사랑
나 그대 앞에 떨리는 모습 이대로 나아가오니 그대의 가슴으로 나를 덮으소서.
내 모든 외로움 그대에게 맡기오니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붙잡으소서.
나 그대 앞에 눈물 흘리며 나아가오니 그대의 눈물로 나를 덮으소서.
내 모든 슬픔 그대에게 맡기오니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기쁘게 하소서.
나 그대 앞에 상처 난 모습 이대로 나아가오니 그대의 부드러운 손으로 나를 덮으소서.
내 모든 아픔 그대에게 맡기오니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낫게 하소서.
나 그대 앞에 고통의 모습 이대로 나아가오니 그대의 평화로 나를 덮으소서.
내 무거운 짐 그대에게 맡기오니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가볍게 하소서.
나는 대한민국 3대 종교에 두루 귀의했다.
아버지의 불교 숭상으로 인해 간혹 절을 찾았다. 이러한 연으로 등산이라도 가게 되어 부처님을 영접할 기회가 생기면 인사 정도 드린다. 아버지의 현재 종교생활은 불교와 샤머니즘이 결합된 기이하고 모호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나의 중·고등학교는 이른바 미션스쿨이었다. 월요일 첫 시간이 성경시간이었고 수요일 5교시는 어김없이 예배를 드렸다. 나에게 예배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많이 빼먹기도 했고 빼먹으려다 걸려서 얻어맞기도 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선생님께 대들었다가 더 맞았다. 온몸으로 거부했지만 장장 6년 동안의 강제적 크리스천 생활로 주기도문을 술술 외우고 막힘없이 부를 수 있는 찬송가와 복음성가도 다수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는 근처 여학교의 학생이 너무 맘에 들어 어럽게 말을 걸었는데 주말에 성당에 나오라고 해 그곳에 가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기여한 것인지 군생활 중 초코파이와 코카콜라의 다소 또는 점심메뉴의 양질을 기준으로 세 종교를 섭렵했다.
그야말로 참 종교인이 아닐 수 없다.
군대에서는 간혹 아침엔 교회를 가고 점심엔 절에 가는 병사들도 있다. 나는 적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커먼센스가 있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감히 종교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종교 생활을 권유하다니... 어허~ 무엄이다!!!
내 오늘 너의 이 물음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리라.
나의 종교는 가족이고
나의 영성은 너와 쭈니에 대한 사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