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에게.
오늘 오후에 네 전화받구서 계속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어.
네 걱정이 돼서 말야. 다친데는 괜찮어? 괜히 내가 그런 말 해서 네가 다친 거 같아 미안해서 어쩌지?
많이 아프지는 않어? 깁스할 정도면 많이 다쳤겠다. 어쩌다 그랬어. 조심 좀 하지. 미안해 나 땜에. 어떡하니 너한테 도움도 못 되고, 걱정돼서 한단 말이 그런 결과나 불러오고. 진짜 미안하다.
무리하지 말고 관리 잘해. 거기서 좀 더 다치면 부러질 정도라며. 거봐. 나한테 전화한답시구 그랬다가 또 넘어졌잖어. 난 진짜 너한테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그러게 그런 와중에 뭐 하러 또 전화는 하구 그랬어. 얌전히 주사나 맞구 있지. 담부턴 누가 심부를 시켜도 나가고 그러지 마. 운동도 좋다지만 계속 무리하면 빨리 나을 수 없잖어. 혹시 그럴 린 없겠지만은 전화하러 나오지도 말고. 너한테서 전화 없어두 너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깐. 알았지?
나 얼마나 놀랬는지 알어? 너 다쳤다는 말에.
'얘가 전화 한 번 더 하면서 할 얘기 없으니깐 핑계 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첨엔... 장난인 줄 알고 웃어서 미안해. 감기두 걸렸다며 게다가 다리까지 그래서 정말 어쩌니? 좌우지간 너는 내가 걱정할 일들만 골라서 하는구나. 못된 것. 은경이 걱정하지 않게 빨리 나아라. 항상 조심하구. 거봐. 이런 잔소리 듣기 싫으면 잘해. 알았지?
그래두 하루면 '오늘은 혹시 너한테 전화가 올까?' 하는 희망으로 살았는데, 앞으로 며칠 아니 몇 주가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그런 희망조차 없는 시간이겠다. (내겐) 너 아픈데 내가 곁에 있어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씁쓸하다.
내가 하는 말 행여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인데...
다쳤는데도 훈련에 참여해야 한댔지? 조심해...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너 힘들 때 나를 생각하면 네 입가에 미소만이라도 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 줄 수 있겠어?
1999. 2. 8.
P. S. 설에 너 면회 안 갈래.
다리 다쳐서 목발 짚고 오는 모습 보기도 그렇고. 그냥 푹 쉬어.
괜히 이러저리 걸어봤자. 다리만 더 아플 테니깐.
대신 약속한 대로 3월 첫째 주 토요일날 갈게.
너 섭섭해두 할 수 없어. 알았지?
몸 조심해.
비행단의 전체 외곽은 2중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깥쪽에는 광망이라는 광케이블 그물에 둘러 쌓여 있어 이것의 관리 또한 헌병소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사다리를 타고 약 3M 높이의 펜스에 올라가야 했다. 올라서 보니 두 벽사이에는 풀이 자라 있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풀들이 충격 또한 흡수해 줄 것이라 생각해 일을 마치고 그냥 뛰어내렸다. 그런데 하필 내가 발을 디딘 곳은 풀이 없어 왼쪽 발목뼈에 금이 가고 말았다.
무릎 아래에 통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다.
당시에 크게 통증이 없고 걷기에 불편하지도 않아 심하게 다친 줄도 몰랐었다. 쫄따구가 다치기까지 해 짠하기 이를 데 없으나 나는 솔직히 더 편했다. 다수의 작업 열외였고 상대적으로 편안한 근무와 가벼운 훈련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전이 더뎌 최초에 예정한 기간의 2배가량 깁스와 한 몸이었기에 완쾌되고 깁스를 제거할 때에는 시원했지만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쫄따구가 아니라 상전이라고 갈구는 고참도 있었지만 환자를 어떻게 하겠는가?
나의 곤궁한(?) 처지를 십분 이용해 열심히 그들에게 덤비기도 했다. 강인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석고붕대를 제거할 날을 기다리던 고참도 있었으나 별다른 보복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어떤 말을 했기에 마치 자신이 내 다리를 부러뜨린 것처럼 자책을 하는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