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남친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네가 이 편지를 받아 볼 즈음엔 아마도 구정연휴가 시작될 무렵이 되겠지.
난 두렵다. 나흘씩이나 쉬는 연휴 동안 대체 뭘 하며 지내야 할까 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심란하구 아무런 설레임이나 기대조차 없는 내 삶이 그런 날이면 유독 더 날 외롭게 만들거든. 뭐 하면 좋을까? 네가 좀 말해봐 봐. 비디오나 실컷 볼까? 아니면 책을 읽을까? 왜 있잖어. 그런 때가 되면 TV도 더 재미없는 것만 하고.

넌 이런 날 예전에 뭐 하며 지냈어?
남들 모두 그저 그렇게 지내는 거겠지?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위안이 좀 되는 걸. 암튼 난 놀부심보인가 봐. 다른 사람 잘 되는 것도 못 보고, 재미있어하는 것도 배 아파하고. 근데 이런 내가 지극히 정상 아니니? 다른 사람 잘 되면 같이 기뻐하고 슬프면 같이 슬프고 이렇게 착한 사람들은 부처님 반토막 아냐? 그치? 너두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 몇 밤을 더 자야 우리 삼철이 얼굴 볼 수 있을까?
아직두 많이 남았지... 보고 싶어. 많이 그립구. 또 생각나구. 힘이 들 때면 너 있는 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항상 행동에는 못 옮기는구나. 다리두 다쳐서 걱겅두 되고. 감기 걸렸었잖아. 의무실에 약두 없다며, 감기약은 챙겨 먹었는지 것두 궁금하고. 거봐, 네가 그렇게 사고를 치니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마냥 너 거기에 있어도 마음도 안 놓이고 불안해 죽겠다. 항상 어린애 같애. 다치려면 확실히 다쳐서 이 김에 제대를 하던가. (농담인 거 알지?)

1999. 2. 10.

P. S.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설에 안 간다고 섭섭해하지 마. 약속하는 거야.
알았지? 나두 너 많이 보고 싶어. 빨리 봤으면 좋겠다.


26년 전의 설날 연휴에 관한 얘기를 읽다 보니 나의 2주 전의 휴일들이 그리워진다.

하루의 연차휴가의 사용으로 유래없는 열흘의 긴 휴식을 취했것만 내게는 그 240시간이 어찌 그리도 짧게 느껴졌던가!!! 출근을 목전에 둔 마지막 밤에 돌이켜 보니 언제 쉬었나 싶었다... 240시간이 아닌 2,400시간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나는 태어나서 그녀가 하는 이런 류의 걱정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할 게 얼마나 많고 재미있는 게 또 얼마나 많은데... 내일모레면 정말 나이 50인데... 뽀로로도 아니고... 노는 게 제일 좋다. ^^


이전 '부상'편에서 그녀는 나의 왼쪽 발을 마치 자신이 다치게 한 것인 양 미안해했었다.

걱정이 돼서 한 어떤 말이 - 말이 씨가 되어 - 내가 다치는 결과를 불러온 것만 같다는 것이다. 편지에 문제의 발언 자체는 적혀있지 않아 자못 궁금하던 차였는데 오늘 편지에 그 답이 적혀있다.


'다치려면 확실히 다쳐서 이 김에 제대를 하던가.' 생각해 보니 종종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른바 '의병제대'를 일컫는 것인데 이는 부상이나 질병의 정도가 중하여 병역을 감당할 수 없거나 장애등급에 준하는 수준의 신체상태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의가사 제대'라고 잘못 알고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이는 말 그대로 생계유지나 부양 등 현역군인이 가정의 일을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상횡으로 전역하는 것을 말한다. 말이 나온 김에, 제대와 전역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기도 한다. 제대는 제외한다, 제거한다는 뜻을 가진 除(제) 자를 써서 군대·군인에서 벗어다는 말이지만 사실은 현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兵役(병역)의 의무 안에서의 개인의 역할 役이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전환된다는 의미가 전역으로, 차이는 있다.


이병시절 온 소대의 갈굼을 한 몸으로 흡수할 때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고의로 그런 상태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우연히 그런 상황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미필적고의 정도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군 복무를 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생활은 길어도 2년이 안되지만 우리는 100년을 살지 않는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발이지만...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와 같이 그녀를 걱정시켰던 나...



글을 쓰다 보니 자꾸자꾸 하나의 캐릭터가 그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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