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삼철이에게...
오늘 거기두 눈 왔어?
여긴 아침부터 날씨가 꼭 뭐라도 올 것처럼 우중충하더니 급기야는 오후 다섯 시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금세 온 세상을 다 덮을 만큼 하얗게 내렸어. 고작해야 십오 분 정도 내렸을까? 근데도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어. 우리 회사가 전망이 좋았더라면 더 멋졌을 텐데...
눈이 어떻게 내렸는지 아니?
소리 없이 밤새 내리는 함박눈도 아니고 바람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아주 힘차고 시원스럽게 내리더라. 글쎄... 그렇게 내리는 눈은 처음인 거 같아. 그런 걸 보고 눈보라라고 한. 왜 우리나라 영화 보면 날은 어둡고 눈은 무릎까지 쌓여 있는데 주인공이 그 산속길을 걷고 있는 중에도 눈말은 계속해서 날리고... 거와 비슷한 거 같애. (내 설명, 아니 표현이 이해가 잘 됐는지 모르겠다.)
근데 눈이 그렇게 오는데 가슴 한켠이 시리면서 누군가가 생각나는 거 있지. 눈 오는 걸 같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그저 같이 있는 시간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내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던... 그 사람... 누군지 알겠어? 바로 너라는 거... 내리는 그 눈을 보면서 너와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랑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면 우린 무슨 얘기를 하며 눈 오는 걸 봤을까... 하지만, 제대하기 전까진 눈이 오는 걸 같이 보긴 힘들겠지...
훈련은 잘 끝났어? 잠도 제대로 못 잤지?
피곤하겠다. 다리는 좀 괜찮어? 아프지 않어? 집에서 아시기라도 하면 걱정 많이 하시겠네. 얘기 안 하면 모르시겠지만 설에 면회 가면 알게 되실 텐데... 나두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식구들은 오죽할까...
아까 눈이 와서 네 생각이 났다고 그랬잖아.
보고 싶더라. 면회가야 너를 볼 수 있을 텐데. 내가 가기로 한 날은 너무 많이 남았구. 어쩌니... 나 너 보고 싶은데... 너는 내 생각 하나두 안 나지? 더군다나 훈련기간이라 겨를이 없지. 나두 알어. 그래 항상 바쁘게 생활해.
좋은 꿈꾸고. 너도 잘 자. 나두 지금 자야겠다.
그럼 낼 보자. 안녕.
1999. 2. 11.
정말 이때까지 그녀와 내가 눈 오는 걸 함께 본 적은 없었다.
6월 말에 처음만나 7월 중순에 입대를 했고 편지는 이듬해 2월이니 당연하다. 어찌보면 너무도 평범하고 하찮은 시간의 일부 계절의 단편조차도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였다.
내리는 눈을 보며 느낀 가슴 한켠의 시림과 함께 나를 생각한 그녀... 그저 같이 있는 시간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내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만 했던 그녀와 나였기에 내가 유사한 광경을 목격했더라도 같았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내가 군대에 있던 중에 함께 눈을 본 기억은 없다. 제대한 그리고 부부가 된 이후에는 있어도 특별히 기억 나지는 않는다. 그저 너무도 평범하고 하찮은 시간의 일부 그리고 계절의 단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급격한 계절의 점프를 겪으며 겨울의 문턱에 선 지금이기에 머지않아 내릴 눈이 기다려 진다. 아내와 함께인 오늘 같은 휴일에 하얀 그것이 와 준다면, 이때처럼 대단히 많은 양이 아니더라도 편지를 기억하며 오래 전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없는 겨울이 오히려 이례적인 차가운 자연현상을 겪으며 가슴 한켠이 시리지 않고 따뜻해질 수도 있다. 곁에 있는 아내가 더 사랑스럽고 그 순간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의미부여가 대게는 좋지 않다.
가볍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곱씹어 후회하여 상심에 이르기 쉽다. 반면에 가치를 높이고 기쁨을 주는 그것도 가능하다. 무엇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일진데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스스로 어쩔 수 없으니 조력자가 필요하다.
데려와 주기만 한다면 흔쾌히 기대이상의 도움을 주는 그는 추억이다.
조금은 남다른 아내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이기에, 나에게 아내는 좀 더 소중한 사람으로 부부인 우리가 보다 행복한 관계로 느껴지는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