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에게.
벌써 내일이면 출근이야.
길었던 나흘간의 연휴는 어디로 가고 벌써 목요일이라니. 왜 쉬는 날은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몰라 다른 날도 이럴 때처럼 빨리 가면 참 좋을 텐데. 그치?
그래도 설에 식구들 면회 와서 외롭게 보내진 않았겠네. 근데 엄마 같이 안 가셨다고 그렀지. 너 다리 다친 거 보면 속상해하셨을 테지만 그래도 같이 가셨으면 좋았을 걸. 엄마 안 오셔서 섭섭했겠다. 맛있는 건 많이 먹었어? 얘기두 많이 했구? 그때 전화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길 꼭 해 주고 싶었는데 잊어버린 거 있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어. 그리구 올해도 항상 건강하고 웃음 잃지 않는 밝은 모습의 네가 되면 참 좋겠다.
나한테 전화는 오지 않았어도 설에 식구들이 면회 갈 거란 생각은 했어.
그래서 전화두 기다렸구. 막상 네 전화받으니깐 네가 왜 그렇게 보고 싶은지. 더군다나 네 목소리 간만에 듣는 거였잖아. 어차피 형 전화받았더라도 면회 못 갔을 테지만. 그래두 너 얼굴 보러 갔으면 좋았을걸이란 생각두 들고. 너한테 보고 싶단 말 안 했지만 나두 너 많이 보고 싶어 3월 6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그냥 아무 때나 갈까? 일요일은 다음 날 출근해야 하니까 힘들단 핑계로 쉬는 토요일만 골라서 가려는 내가 참 못됐다. 보고 싶다면서 것두 이번에 가면 겨우 2번째 면회면서 말야. 그래두 나 가면 반겨 줄거지? 내가 충주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널 보기 위해서잖아. 그러니까 면회가두 구박하면 안 된다. 알았지?
초콜릿. 받았다니 다행이야.
별루 신경두 못 써서 보냈지만 그래두 혹시나 네가 받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정말루 다행이다. 보내면서두 내심 잘 가야 하는데... 그랬어. 네 말이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맛있는 거 많았다니 나두 좋구. 근데 정말 거기 있는 사탕 챙겨서 은행아가씨 안 갔다 줬어? 하긴 화이트데이날 갖다 줘야겠지. 그치 그럼 그럼. 근데 뭐 나까지 신경 쓰고 그래. 난 괜찮으니깐 그런 신경 쓰지 마. 네가 거기서 사탕 구할 데가 어디 있다고 보내준다고 그러고. 난 아무렇지도 않고 또 섭섭하지두 않으니깐 제발 너나 신경 써 나 신경 쓰지 말고. 네가 군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런 날 안 챙겨주는 거 섭섭할지 몰라. (아냐, 혹시 그렇더라도 난 섭섭하게 생각 안 해. 정말루) 하지만 넌 군인이잖아. 남들보다 열 배는 더 힘들고 고달픈. 너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군대는 군대라는 거. 나두 알아. 그러니까 삼철 씨. 신경 쓰지 마세요.
너 삼철 씨라고 부르니깐 웃긴다 정말. 웃어서 미안.
항상 너 들어가고 나면 너 다시 나올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체크했었는데. 5월이라. 너무 멀어서 어떡해야 하는 건지. 아마 예정대로라면 너네 부대에 훈련이 없었더라면 머지않았을 텐데. 꽃피는 봄이 오는 3월이면 널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땐 너랑 손잡고 남산 산책로를 걷고 싶었어. 다음에 해야겠지. 하지만 너랑 있는 시간이 솔직히 너무도 아깝고 소중해서 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다리는 괜찮니? 좀 어때? 목발 짚고 걸어 다닐 만 해?
그래 좀만 참아. 며칠 후면 깁스 풀 거잖아. 깁스 풀더라도 며칠은 아니 몇 주는 조심해야 되겠다. 그렇지? 너 나 보구 그랬지. 내가 네 걱정 안 한다고. 그렇지 않아. 알면서 괜히 너 그러면 나 가슴만 아프단 걸 너 알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와 보지도 않는다고 그랬지. 너 같으면 안 그런다고. 그럼 바보야. 넌 정말 나 많이 아프면 나 보러 올 수 있어? 너는 더 그렇게 못 하면서,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잖어. 근데 내가 너 일부러 안 오는 거라 그러면 넌 기분 좋아? 못됐어.
물론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다음부터 또 그런 소리 해봐라. 그땐 정말....
1999. 2. 17.
편지를 읽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가 면회 오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설날 가족 면회 중에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작은 형과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었기에 사전에 형식적이라도 동행의 의사를 물을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아 서운한 그녀의 마음도 느껴진다.
초콜릿, 때마다 챙겨 보내주던 그녀였다. 그런데 은행 아가씨는 뭐지?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충주 공군기지 BX에 은행의 작은 지점이 있었다. 여성을 찾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은경의 질투심 고양 차원에서 내가 가끔 우리 대화에 초대했던 것으로 추정만 된다. 그녀와의 통화 중에 창구의 여직원이 내 시야에 들어왔던 기억이 얼핏 난다. 여자친구가 보내준 밸런타인데이 선물상자에서 사탕을 꺼내 다른 여자에게 갖다 준다니... 이것은 실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내란죄나 외환죄보다도 어마무시한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이어지는 내용 또한 놀랍지 않을 수 없다.'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와 보지 않는다' 내가 이런 말들을 했구나... 역시 관계의 초기였고 그녀의 말대로 군인이라는 특수성이 실로 큰 보호막이 돼 주었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발언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더군다나 요즘 슬슬 테토녀의 조짐이...
맞았거나 쫓겨났거나 맞고 쫓겨났거나... 셋 중에 하나다.
와~ 우리 은경이 이때는 착했네... 착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