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에게.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3월인데 아직두 추워. 곧 봄이라지만 봄은 과연 언제 올건지...
이렇게 춥다가도 어느새 목련꽃이 피고 개나리가 피겠지. 내가 전에 얘기했었지 난 봄이 싫다구. 눈이 부시도록 좋은 날씨를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같이 떠날 사람이 없다는 거. 아니 더더욱 중요한 건 혼자서 떠날 용기도 자신감도 없다는 거야. 그래두 좋다. 겨울이 아니기에. 곧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올 거니까. 내 생일이 가을이어서 그런지 난 가을이 젤 좋아. 넌 어떤 계절이 젤 좋아? 여름? 봄? 내 생각엔 너두 가을을 좋아할 거 같애.
내 별명이 깜찍이에서 뭘로 바뀌었는지 알어?
전혀 비슷하지도 또 그만큼 이쁘지도 않은데 단지 한 가지 닮았단 이유로 나를 전도연 이래. 내가 요즘 파마머리 풀고 머리도 많이 상하고 지저분해서 하나로 묶고 다니거든. 예전의 전도연 모습이랑 비슷하다나.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여서 왜 전도연을 닮았는지 알겠데. 이마가 넓다며... 흑흑. 그걸 이제서야 알았나? 우리 직원 중 한 명이 나를 전도연 같다고 그러니까 뭐래는 줄 알어? 전도연이 사고 났느냐고. 그러더라. 우쒸. 아니면 아니지 무슨 사고까지. 그래 나 못생겼다. 억울해 죽겠다. 누가 자기들 보고 별명 지어 달랬나. 괜히 비슷한 사람 갖다 대며 지들끼리 웃고...
슬프다. 네가 와서 혼내주라. 비참해서 회사 못 다니겠어.
약속했어. 혼내주기로. 그러니까 어서 빨리 휴가를 나오던지 제대를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해. 기다리구 있을게.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일도 손에 잡히질 않구 자꾸 마음만 싱숭생숭한 게 내가 왜 이럴까?
하긴, 넌들 알겠니. 내 맘이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는데... 그래서 야근한답시구 저녁 먹고 과자 먹고 그러다가 통신 들어가서 좀 둘러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냥 집으로 왔어. 나 잘했지.
너 깁스 언제 풀어? 아직 풀을 때 안된 거야? 아니, 아프지 않고 낫기는 다 난 거니? 알 수가 있어야지 원. 감기는 다 나았는지 모르겠다. 근데 영 마음이 안 놓이는 거 있지. 감기약두 없으면서 깁스는 어떻게 했어? 그리구 그거 의사가 해준 거야? 불안해서 그러지. 순 사이비들 같애. 그러니까 아프지 말어. 혹시 알아. 널 실험용으로 생각할지. 그래서 깁스했다 풀렀다 몇 번을 반복한 건 아니겠지? 아냐, 대한민국 군대가 그것도 공군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거야.
잘 지내구. 이제 또 환절기야. 그러니까 감기두 조심하구.
괜히 감기 걸려서 면회 가는 나한테 옮기지 말구. 헤헤.
잘 있어. 안녕. 꿈속에서 보자.
1999. 2. 22.
P. S. 은경이 혼자 잘 놀지. 그러니까 혼자 노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얼른 내 곁으로 와. 정말 익숙해져서 누군가 옆에 있는 게
귀찮아지면 안 되잖아...
피울음으로 한으로 살아왔던 우리 백의민족이지만 주저하지 말고 광활한 만주벌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기개를 노래한 훌륭한 곡이 있다. 바로 고 김광석 형님의 '광야에서'이다.
아내와 나의 적절한 키 차이로 그녀를 안으면 목하 이마가 된다.
그럴 때면 난 가끔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광활하한~ 마한주 버얼ㅍ" 곡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만주벌판'을 채 외치기도 전에 파~열음이...
한 대 맞았다. 이마로 놀렸다고 꼭 지도 내 이마를 때린다. 그래도 난 꾸준히 부른다. 기개를 지닌 한민족 남편이기에...
나야 남편이니 놀리다 얻어맞기도 하지만 가뜩이나 이 곳이 콤플렉스인 우리 은경이에게 '사고 난 전도연'이 웬 말이란 말인가? 지들끼리 놀리며 웃기까지 했다니, 내가 사실 약속한 바는 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혼내 줬어야 하는 것이 맞겠다.
혼자 노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얼른 내 곁으로 오라는 그녀의 달콤한 추신의 말을 읽은 지금도 쫓아가서 그 지들이라는 것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드는데, 군대에 있던 이때는 어땠을까?
그녀 곁으로 갈 수만 있었다면 지들 다 죽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40P 클리어파일 한 페이지에 2~3장씩 꼽아둔 편지의 절반도 채 읽지 못했습니다.
일병 때의 편지가 유독 많아 30편을 쓴 오늘에는 '은경이 삼철이 3' 브런치북 소개에 알파벳 A를 더해 [일병편 A]로 수정했습니다. 녹록지만은 않던 한 주가 벌써 서른 주가 되었네요.
'은경이 삼철이 4' [일병편 B]로 계속 느린 걸음 하겠습니다.
세상이라는 광야를 홀로 걷다가 아내를 만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로 인해 마주한 아이로 가장 소중한 인연이 둘이나 되었습니다.
고독이라는 광야를 홀로 걷다가 글쓰기를 만난 것은 제 인생에 두 번째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로 인해 마주한 여러분들로 두 번째 소중한 인연도 둘이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