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내일이면 벌써 3월이야.
3월이면 봄이나 마찬가지인데 날은 여전히 추워. 바람도 많이 불고, 겨울이나 다름없다.
너한테 편지 안 쓴 지는 별루 안 됐는데 한 일주일 된 거 같애. 편지 쓰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되더라. 다른 이유는 아니고... 좀 아팠거든. 감기인가 봐. 건강하다고 자만했더니...

며칠 전엔 정말 책상에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들었어. 머리 아프고 춥고 쑤시고, 그래서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왔어. 하지만 요즘 바쁜 탓에, 아픈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건데두 눈치가 보이더라. 속상하고 서글프고, 내 처지가 불쌍하구, 맘 같아선 오전에 조퇴하고 싶었지만 일이 많아 그럴 수도 없었어. 4시쯤 조퇴를 하고 병원 들러서 집에 오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그러면서 너는 또 왜 그래 보고 싶던지. 네가 그랬지. 아프니까 내가 더 생각나더라구. 그 말을, 아니 나두 그렇더라... 네게 몇 번이나 편지 쓰려했지만 책상에 앉아서 편지 쓰기가 힘이 들더라구. 내가 너한테 어리광 부리고 싶은 가봐. 아팠다는 얘기는 안 해도 모르는 걸 텐데 말야...

넌 좀 괜찮은 거야?
혹시 감기 걸려서 힘든 건 아니지?
아프지 마. 정말 건강한 게 제일인 거 같아.
깁스하면 안 아픈 거야?
안 해 봐서 모르겠어. 그래 안 아프라고 깁스하고 목발 짚고 다니는 거겠지?

저기, 삼철아!
3월에 너 면회 가기 좀 힘들 거 같애. 말로만 듣던 야근이, 요즘 계속되고 있어. 매일 11시 12시까지 야근하고 어제 토요일인데두 8시까지 일했어. 오늘은 하루 쉬고, 3. 1.도 출근해. 첫째, 셋째 휴무일 토요일도 출근해야 할 거 같애. 일요일두... 3월 한 달만 고생하면 된다지만,
난 싫은데...
너 면회 가야 하는데...
벌써 못 본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보고 싶은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대하고 있지 마.
그래,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다 가게 되면 좋은 거고, 못 가면 할 수 없는 거고. 미안하게 됐어. 간다고 했다가 못 간댔다, 이랬다 저랬다 하고.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4월이나 돼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 훈련 14일부터 랬나? 아니다 15일. 그때부터 언제까지야?
군사기밀인 거 아는데, 나한테는 꼭 가르쳐 줘야 돼. 왜냐면, 혹시 우리 회사일이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면 3월 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 괜히 갔다가 너 훈련 중이면 얼굴도 못 보고 그냥 올라와야 하잖아. 그러니까, 담에 전화할 때 내가 물어보면 꼭 대답해 줘야 돼? 알았지?

그래. 잘 지내구, 몸 건강하구. 밥 잘 먹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니 널 위해서 한다는 말들이 고작 이런 인사치레에 불과하구나...
이런 말은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말들인데...

1999. 2. 28.

P. S. 근데 너 정말 5월 전까지는 한 번도 외출 놋 나오는 거야? 진짜루?
혹시 나와서 나한테 연락하기 싫으니깐 거짓말하는 거지...


넌 좀 괜찮은 거야?

아니, 기침이 심해서 힘들어... 특히 밤에...


혹시 감기 걸려서 힘든 건 아니지?

감기에 걸렸으니까 심한 기침에 힘든 거지.


아프지 마. 정말 건강한 게 제일인 거 같아.

고마워, 맞는 말이야.


26년 전 아내의 편지 속 질문에 딱 맞는 답을 오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야근으로 힘든 회사생활 중 감기에 더 아팠던 그녀의 편지를 읽는 지금 나도 감기다. 26년 전에도 같았다. 몸은 나았지만 지나간 그 고통보다 면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픈 마음이 그녀를 더 지치게 하는 것만 같다.



깁스하면 안 아픈 거야?

깁스하면 아픈 걸 모르지만 깁스를 하지는 않았어.


안 해 봐서 모르겠어. 그래 안 아프라고 깁스하고 목발 짚고 다니는 거겠지?

평생 안 해보는 게 좋지. 물론 그렇지만 난 차라리 깁스를 했으면 좋겠어.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던 이 시기의 나와 유사하게 현재 다리가 몹시 불편하다.

골절과 족저근막염이라는 근본적인 차이는 있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진다. 만성이 된 발 병의 악화로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던 중 심한 감기까지 겹친 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편지 속 그녀와 나 그리고 현실의 내가 많이 닮아 있다.

힘들었던 과거의 두 사람과 또 고통스러운 지금의 나이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있다.



그것은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 면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