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통화

by 초동급부

삼철에게...

안녕. 그동안 잘 지냈지? 나두 잘 지냈어.
방금 너 하구 통화 끝나고 편지 쓰는 거야. 밤에, 것두 너 군에 있을 때 전화한 건 처음이잖아. 기분이 이상해. 오래 통화하진 못 했지만. 그래두 오랜만에 밤에 너랑 통화하니까 바로 옆에 있는 거 같은 걸? 너두 그랬니? 이렇게 전화 끊고 내일이면 우리 만나는 거 같았다.

나 착각도 잘하지? 너랑 조금이라도 연관된 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서강대교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저기가 바로 너네 집인데... 했어. 고개를 몇 번이나 돌려서 쳐다봤는지 몰라. 그래두 너네 동네 지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너랑 같이 있는 거 같아서 기분 참 좋았는데. 나 이사 갈까? 창전동으로? 아님 네가 이사올래? 영등포로. 그래 그러면 되겠다. 하하. 장난이야.

오늘 3. 1. 절인데 나 출근했다 그랬잖아.
근데 출근은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 일이 많으니깐 그저 마음만 바뻐서 허둥지둥했어. 그리구 남들 다 쉬는데 출근해서 일할려니 일두 손에 안 잡히고. 게다가 너랑 통화까지 하고 나니까 네 생각나서 도저히 일 못하겠드라. 그래서 일찍 정리하구 친구들 만났어. 내 친구들은 1박 2일로 놀러 갔다 오는 길이었거든. 오늘 출근만 안 했더라면 아마 나두 같이 갔을 거야. 하지만 아쉽게두... 바다두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왔나 봐. 나 보고 저녁사라길래 우리 회사 앞으로 오랬지. 그래서 영등포 가서 저녁 먹고 헤졌어.

그러니까 나두 바다 가고 싶다.
아니 보고 싶어. 남해든 동해든, 것두 안 된다면 서해라도. 바다 못 본지 오래됐어. 정말 언제인지 기억두 안 난다. 아마 부산 태종대가, 광안리가 마지막이었을 거야. 나두 바다 좋아하니? 아마 바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치? 내 친구들은 영덕 갔다 왔데. 영덕에서 동해로 쭉 올라와서 충주 쪽으로 왔나 봐... 아니도, 오늘 일 안 했으면 너 면회나 갈걸. 정말 그럴걸. 그래두 다행인 걸. 난 3월에 너 못 보러 가면 4월에나 갈려구 했는데... 네 생일 때...

근데 정말 좋다.
같이 오래 있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멀리서가 아닌 가까운 곳에서 널 볼 수 있으니깐. 어쩜 25일 날 맞춰서 나와도 (피해서) 너 못 만날지 몰라. 아니 만날 수 있긴 해도 야근하고 만나면 몇 분 안 되겠지. 그때까지 일이 안 끝나면. 차라리 4월 초에 나오지. 그러면 좋은데. 아무리 바쁘고 야근해도 3월 31일이면 끝나 거든. 왜 나면 3월 31일에 신고 들어가거든.

하지만, 나 열심히 일할게. 잘 될런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너 외출 나올 때까지는 끝내고 있을게. (믿지는 마.) 근데 불안해. 솔직히 나도 언제쯤 끝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거든. 만약 내가 계속 바쁘다면 다른 사람들 만나서 놀아. 이김에 이쁘고 착하고 정말 여자다운 여자 소개받아서 좋은 사이로 발전하든지. 정말 그럴려면 내가 일을 천천히 해야겠네...
좋은 꿈 꾸고 잘 자. 내꿈 꾸면 더 좋고.

1999. 3. 1.


헌병은 문지기 역할도 한다.

갈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당했지만, 전대미문의 파격적 상황병 발탁으로 나는 게이트근무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몇 기수 고참의 심각한 부상으로 임시 문지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인 것 같다. 그곳에는 외부전화가 있었다.


늦은 시간 처음 한 통화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좋아해서 귀여운 그녀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도 다르진 않다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말이다. 이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바람대로 난 먼 훗날 영등포로 이사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지들끼리 1박 2일 놀러 갔다 오면서 함께 가지 못한 데다 휴일에 출근까지 한 친구에게 밥을 사라는 건 무슨 경우인가? 얘는 또 회사 앞으로 오라고 해서 밥을 사줬다. 참으로 눈물겨운 우정이 아닐 수 없다. 이날의 경우 없는 친구들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연말이 되면 남편들까지 합세한다. 일당은 한 달에 1번 정도 만나는 것 같다.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커피까지 오래 마시고 늦게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징징징... 종일 수다를 떨다가 "못 다한 얘기는 집 가면서 가톡으로 하자~" 딱 요짝이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고 훈련이 일찍 끝났는지 외출을 나올 수 있다는 소식에 편지 속 그녀가 밝게 느껴진다.

회사가 바쁘고 개인적으로 시간이 없어도 언제나 그녀는 나의 외출에 최대의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많은 시간을 내게 주는 아내이다.



P. S. 편지 봉투에는 쪽지 한 장이 붙어 있다.

보고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래서 추억은 좋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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