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휴식

by 초동급부
잘 있었어?
어제, 오늘 전화했었는데 너 교육 갔다더라.
통화하고 싶었는데, 단 일분 아니 10초라도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너랑 통화하구 나면 기운이 막 솟아서 일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아쉽다. 전화해두 된다고 해 놓구선 무슨 교육이야? 것두 7시 넘어서 했는데 3시간 이후에 전화하라드라. 근데 그냥 안 했어. 너무 늦게 하면 너 눈치 보일까 봐. 무슨 교육을 밤늦게까지 받았어? 것두 아픈 다리를 하고서... 다니기 힘들잖아. 꼭 받아야 하는 거였니? 그렇다면 모를까.

삼철아! 나 속상해. 자꾸 울고 싶어. 네가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구... 기분이 엉망이야. 우울하고.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정말 네 목소리라도 들으면 나 한결 나아질 거 같아서 그래서 계속 전화했는데 통화도 못하고, 나만 혼자 버려진 느낌이야. 어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했는지도 모르지... 네가 내 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네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근데 결국은 그러지 못했잖아. 실망했지... 역시 난 혼자구나라고. 정말 절실히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아무도 없구나...

내일 토요일이다. 우리 휴무인 토요일인데 나 출근해.
쉬었더라면 아마 내일은 널 보러 갔을 텐데... 그래두 그래두 조금만 있으면 볼 수 있으니깐 괜찮아. 실은 7일인 일요일은 우리 쉰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일 끝나기 전까지는) 쉬지도 못해. 일요일두 나와야 하고 또 토요일도 나와야 하고.

네가 3월에 외출 못 나오면 낼모레 갈려구 했는데 분명히 나온다고 했지?
그럼 나 7일 날은 집에서 쉬어도 되지? 섭섭하게 생각지 말구. 간다고 해 놓구선 못 가게 돼서 정말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2월에 갔다 오는 건데... 나 너 면회 안 가두 삐치지 않기다. 알았지?

많이 보구 싶어. 아프지말고 몸 건강히 잘 지내.

1999. 3. 5.


연이은 출근으로 몹시 지친 그녀에게 오랜만에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꼭 필요한 시간이고 당연한 권리이건만 나에게 했던 면회의 약속으로 인해 이조차도 미안하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못한 나는, 그녀를 더욱 실망하고 상심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니 군대라는 제한적 환경에 있는 내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었다면 적어도 절실하고 지당한 모처럼의 휴식이 죄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입대 후 약 7개월, 이와 유사한 남은 아픔들이 훨씬 더 많았을 시기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견뎠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을까?


물론이다.

술이나 취미활동, 사교 등으로 집 밖에서 시간과 돈을 쓰지 않는다.

항상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되도록 가능한 것들을 함께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귀찮아 도망칠 때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가족이다.

일터를 사랑하고 남부럽지 않은 금액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착실히 일해서 가사에 기여하고 있다. 살가운 성격의 사위는 아니지만 내 부모보다 장인, 장모님 생각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이만하면 우리 은경이의 견딤에 대한 보람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 글을 그녀가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으나 전면부정은 못 할 것이다. 물론 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어쩌다 이런 글이 되었을까? 나 아무래도 초심을 잃은 것 같다.


자꾸 글의 제목을 '반전'으로 바꾸고 싶어 지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