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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Apr 23. 2024

선거와 세월호 10주기를 뒤로하며...

다솜짓_다섯

언론보도를 통해 연일 가슴 아픈 장면들을 접할 때마다 울고 울었습니다.

밥 먹다가도 울고 책 읽다가도 울고 양치하다가도 울고 아내와 함께 울었습니다. 마음 아파 울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그해 태어난 제 아이가 10살, 벌써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네요.


이태원 참사를 보고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동시에 표출되어 또 울었습니다.


사내자식이 이렇게 연일 울었던 경험은 또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분노한 마음이 눈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때는 자취방에서 혼자 그저 울었습니다.


모 국회의원이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당시 국회에 배석한 세월호 유족들에게 고성과 함께 삿대질하는 장면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10주기 직전 대한민국을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한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총선이 10주기 이후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보수·진보, 여당·야당 어느 한쪽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길 바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사람 같은 사람을 뽑았으면 해서입니다.


아무 죄 없는 304명의 어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귀하디 귀한 생명을 그 차가운 바닷물에 가둬 영원히 잠들게 한 사건,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아플 이 일에 어느 한 사람 또는 어느 한 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식 잃은 부모에게 막말을 하는 국회의원 이런 사람 같지 않은 정치인이 또 나오지 않기를,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적게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자신, 자기가 속한 정당 그리고 정치이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죄 없이 희생된 생명들과 유가족에게,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할 법적·제도적 위로를 건네는 것조차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또 나오지 않기를,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적게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그 수많은 생명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으니 모두 슬퍼하고 가능한 위로를 해 주면 될 것을 거기에 이념을 갖다 대고 진영으로 끌고 들어오니 본질을 간데없고, 슬픔이 매도되어 위로는커녕 유가족들에게 고통만 주고 있습니다. 차마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분들께 말입니다.


이번 총선에 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하셨나요?

저는 대선, 총선, 지방의회 어느 선거에서든 가장 좋은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너무도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은 다음에는 꼭 이 기준을 한 번 적용해 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할 수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지를 만류했습니다. 생각보다 조기에 너무도 확실하게 실패한 정권이 되어서 제 예언이 민망할 정도로 맞자, 자리를 깔라는 분들도 다수 계셨습니다.

솔직히 최근 대선에서도 똑같이 했습니다. 물론 실패했지만요.


제 기준은 간단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사람 같은 사람을 찍으라는 것입니다.


그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이지요 그런데 사람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 같은 사람은 바로 여러분과 저 같은 그저 평범한 장삼이사, 필부필부 그리고 동급부 사람들입니다.


정치는 국민을 잘 살게 하는 행위입니다. 국민이 잘 살아야 나라가 강해지고 그래야 국제무대에서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을 잘 살게 하려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의 삶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보고를 받고 책을 많이 읽고 동영상을 여러 편 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그 삶을 살아봐야 느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못 입는 서러움도 느껴보고 배도 고파봐야 합니다. 그걸 해 주지 못해 더 미안해하시는 부모님도 슬쩍 봅니다. 입시지옥에서 밤새서 공부하고 학교 가고 학원 다니며 힘들었던 시절, 뒷바라지해 주시는 부모님의 고마움도 알고 훨씬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를 부러워하면 지난날을 후회해 보기도 합니다. 등록금에 보태고 용돈 벌겠다고 호기롭게 아르바이트해 보지만 남의돈 먹기 정말 쉽지 않다는 것도 체득합니다.  남자라면 군대에 가서 정말 가장 낮은 쫄따구에서 제일 높은 고참까지 가 보는 경험도 해보고 수년 또는 수개월 부모 가족과 다른 세상을 살며 그들의 소중함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대만 하면 세상이 다 내 것일 줄 알았는데 복학해 보니 이제 취업이 걱정입니다. 토익학원 다니면서 생각처럼 올라가지 않는 남의 나라 말 점수에 일희일비도 해 보지요. 알몸으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 두려워 졸업을 미루기도 하고 수십 군데 서류를 내서 떨어져도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꽉 쥔 두 주먹 무릎 위에 올리고 면접도 봐 보아야 합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 만원 버스 지하철 타고 서서 졸면서 출근 운 좋게 앉으면 어깨에 침 흘리면서 퇴근하 받은 첫 월급, 대기업 취직한 친구는 억이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는데 소득세, 4대 보험 등등 떼고 나니 생각보다 내 월급은 쥐꼬리라는 것, 이 마저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고 다른 것 다 오른 이후에 겨우 조금 오르고 승진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비용의 마련을 위해 결혼도 미뤘지만 이세를 생각하니 더 미룰 수는 없기에 결혼해 보려고 알아보니 집 장만은 택도 없고 전세자금도 턱없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결혼식 자체도 예식장 비용, 사진 촬영, 예복, 피로연 등등 돈이 만만치 않게 듭니다. 부모님 도움 받고 여차저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2년 지나면 어김없이 전세금 올려달라고 집주인은 독촉하는데 여력이 없어 꼬박꼬박 이사를 다녀야 합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회사와는 점점 멀어지네요.

아이 둘을 낳고 싶었는데 하나만 낳기로 했고 그마저 사정이 어려워 미루고 미뤘는데 덜컥 가 생겨 마음은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지만 어깨는 무겁습니다. 이런저런 아기 용품 준비에 비용도 만만치 않고 입덧하는 아내 음식도 챙기고 수시로 쥐가 나는 부은 다리를 눈도 못 뜬 채 주무르기도 합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쓰면서 잘못도 없는데 회사에 눈치 보이고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도 적지 않습니다. 긴 시간 산통 겪고 그 옆에서 나도 같이 아프다가 아이 울음소리에 잠깐 정신이 드나 싶었는데 탯줄을 어떻게 잘랐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에는 안기도 겁나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도 보고 분유도 먹이고  가끔은 아이가 열이나 속옷바람으로 응급실을 뛰쳐 가기도 합니다. 친정어머니, 시어미니께 아쉬운 부탁 하며 아이를 맡기며 죄송한 마음도 큽니다. 좀 자라서 유치원을 보내는데 누구는 영어유치원, 사립유치원 간다는데 나는 가까운 교회 유치원 보내면서 괜히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아이가 잘 못을 하면 혼도 내고 때로는 회초리도 듭니다. 그러고 나서 잠든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때리지는 말걸…


좀 자라서 학교 갈 때가 되면 학원도 함께 보내야 하고 누구는 뭘 배운다 어딜 다닌다 하면 다는 못해줘도 내 아이 하나 정도는 보냅니다. 방학이 되어 어떤 친구는 유럽을 가고 어떤 친구는 동남아를 간다고 합니다. 내 새끼 짠해서 제주도라고 다녀와야지요.

애 하나만 키우더라도 사교육 비용은 물론이고 다른 부수비용이 만만찮게 듭니다.

그리고 다시 입시… 나와 같은 삶의 되풀이를 묵도하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음에도 그저 자식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습니다.

 

사실 한도 끝도 없지만... 지금까지 나열한 우리가 살아오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과 마음들, 이 진정(眞情)들이 정책이 되고 법이 되고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국민의 대변인, 대표자가 되어서 그것들을 구체화하고 구현해 내야 합니다.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왕 부럽지 않은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공주로 자랐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 서거 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으며 아버지마저 총탄에 이별을 하지요. 잘났고 못났고를 떠나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니 국민들의 마음을 알리 없지요.

지금의 대통령과 영부인 또한 우리와 같은 삶을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않고는 진정성 있게 행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보수와 진보가 철저하게 갈라져서 한쪽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역사가 준 그들의 기득권, 이의 보호를 위해 이제 대놓고 발목을 잡는 이 나라 정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께서 “민주주의는 진정성을 따지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맞지요.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는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다수결에 진정성이 설자리도 설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국민들에게 긴요한 정책이 개발되기 위해서, 그것이 다수결의 장으로 나오게 되기까지의 무수한 시도와 노력 그리고 이것이 구체화되는 과정에는 진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을 가진 진정성 있는 장삼이사, 필부필부, 초동급부들이 그 일을 해야만 합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정치인을 생각해 보실까요. 단연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진정성 있게 국민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미국 부시, 중국 후진타오, 일본 천왕과 아베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동네 이웃들, 장애인 분들, 학생과 어린이들에게 먼저 고개 숙이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이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노란 물결이, 너무도 쉽게 그 죽음을 인정해 버린 그 슬픔들이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서울대 못 나온 사람도 판사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이나라 흑수저들의 기준이자 표상, 최고·최종·유일의 살아있는 희망이 우리의 희망을 배신하고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선출된 대통령들의 통치에서, 수회의 선거들에서 그분은 항상 제일 먼저 생각나 제일 먼저 비교해 보는 표본, 제일 먼저 그리워지는 단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흑수저들의 기준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마지막 선택으로 이나라 대통령 그리고 정치의 기준으로 설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금번 22대 총선에서 그리고 현 윤석열 정부에서 너무도 완벽하게 이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님도 민주주의를 위한 진정성 있는 헌신 나라를 위한 진정성 있는 희생으로 우리는 그리워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 또한 서민들을 위한 진정성을 느꼈기에 역시 우리는 그리워합니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배스까지 수입해 와 국민들 먹게 하는 가난 극복을 위한 진정성, 경제발전을 위한 진정성이 있었습니다.(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이 배스가 묘하게 상징처럼 연상됩니다.) 물론 그 수단의 당·부당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을 그리워합니다.  


반면에 이승만, 전두환, 이명박 등 이런 전 대통령들은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향한, 사익을 위한 진정성은 누구보다 강했으나 국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한 그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히틀러도 진정성은 있었던 것처럼요...



선거와 세월호 10주기를 뒤로하며 죄 없이 희생된 생명들과 유가족에게, 늦었지만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할 법적·제도적 한 줌 위로가 현실화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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