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이가.
오늘이 음력으로 7월 7일인 거 알고 있었어? 이날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 날이잖아. 내 생각엔(기억엔)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비가 내렸던 거 같은데 비는커녕 오늘은 하늘만 맑더라. 너무 오래들 되어서 눈물이 다들 말라버렸나 봐. 서양에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있다지만 우리나라는 칠월칠석이 있는데. 우리나라 풍습(?) 이잖어. 근데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구.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오히려 오늘 같은 날 챙겨주고 진정한 선물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오래 전서부터 우리들은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우리의 문화를 뒷전으로 하는구나.
오늘도 여전히 너의 일도 열심히 하라는 말을 뒷전으로 한채 농땡이 쳤어.
오전에는 공문 발송하느라고 내내 책상에서 열심히 봉투 붙이고 있었고 오후에는 한 군데만 갔다가 또 한강을 바라보고 왔어. 저번보다 더 맑아졌어. 그래두 여전히 더럽지만. 영등포에서 63빌딩 가는 버스가 없어서 여의나루역에서 한참을(30분 정도) 걸어서 갔지. 근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그리 따갑지 않은 햇볕을 받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긋하게 걸어가니까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두 생각나지 않구 좋았구. 한강을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지. 그래서 63빌딩 들렀다가 다시 걸어서 한강으로 갔어. 그냥 또 멍하니 앉아서 음악을 듣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어.
……
내일이 토요일이라 맘이 편해. 늦게 자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돼서 좋구. 또 집에 있으니깐 것두 좋구. 근데 요즘은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일곱 시만 되면 눈이 그냥 떠져. 너 특박 나왔을 때 일요일에두 내가 일찍 일어났다구 했잖아. 그날두 일곱 시경 눈을 떴는데 왠지 잠이 와야지 말야. 그래서 그냥 아침부터 부지런한척하구 다닌 건데 일어나서 우유두 마시구 음악두 듣구 책도 읽으면서 말야. 근데 내일은 그냥 푹 좀 잤으면 좋겠어. 요즘 피도 좀 뽑고 그래서 그런지 컨디션도 안 좋고 감기두 덜 나았구. 덜 나았다기 보단 점점 더 심해지구 있어. 미열에 약간의 기침기만 있었는데, 이전 편도도 붓고 머리두 아프고 그렇네. 이래저래 몸이 엉망이야. 건강한 애가 엄살 피울려니 것두 힘들군… 히히.
너두 감기 달고 들어갔잖아. 아니지 달고 나온 거지. 암튼. 다 나았어? 그땐 좀 골골해 보이던데, 그런데 가서 아프면 안 되지. 친한 친구도 가족도 없는데 그런 데서 아프면 서글프잖아. 이마 한번 짚어줄 사람두 없을 테고 그냥 엄살도 못 피울 거 아냐. 그러니까 아프지 말어. 괜히 부모님들도 걱정하실 거야. 만약 아픈 게 좀 더 편하다면 생각해 볼만도 하지만… 그렇다구 아프란 얘기는 아니다. 오해 말기를…
아까 신문을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몇 개 오려서 붙여봤어.
네가 부탁한 건 거의 안 실리던데. 그리구 정치 얘기는 어떤 게 중요하고 또 불필요한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아서 괜히 보내서 욕먹느니 차라리 안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더라. 그리구 일주일 후면 자대 받을 거 아냐. 그동안에 뭐 별일 있겠어. 우리나라가 그렇지 뭐. 그래서 생각 끝에 쉽게 읽을 기사거리라두 보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몇 개 오려서 붙여 봤어. 별루 기사가 달갑지 않더라두 그냥 읽어라. 그래두 내가 네 생각을 하고 보냈다는 게 가장하잖아. 네가 특박 나왔을 때 몇 가지 물어보길래 그것들에 관해서 보내는 거야. 보내면서두 걱정된다. 별루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은 기분에 말야.
가을이라서 그런지 결혼하는 사람이 많더라. 내가 좋아하는 한석규도 결혼하고. 정말 어디 그런 남자 없나? 있으면 연락처 좀 가르쳐줘 봐. 없을 거야. 그치? ‘접속’ 봤어? 거기서 한석규 배역두 맘에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했구 몇 년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말야. 그러보 보면 누군가를 잊는다는 거보다 내가 누군가한테 잊힌다는 게 참 싫은 거 같아. 나는 잊으면서 남들은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게 이기적이지. 나도 그렇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짝사랑. 첫사랑에게 잊힌다는 게 왠지 서글프고 두렵기까지 해. 나란 존재가 그렇게 하찮을 수밖에 없다는데 화가 나고. 옛날에 김희애가 불렀던 노래 생각나? 나를 잊지 말아요…
그때 내가 얘기했었지?
콜라 바르고 벌 달려드는 바람에 그냥 물속으로 뛰워 들어갔다고. 그 바람에 선탠오일 바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돌아다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됐지 뭐냐. 내 목 위에 얹힌 게(얼굴 위에) 머리가 아니고 차돌박이인가 싶다. 나 건망증도 대단하거덩. 얼굴은 20대구 머리는 50대 인가 부다 울 엄마가 뭐 사 오라고 심부를 시키면 꼭 한 가지씩 빼먹고 사 오거든. 것두 중요한 것만. 예를 들어 고기엔 상추가 필수인데 고기는 사 오고 상추는 잊어버려서 다시 사러 가고. 그래서 심부름할 때는 몇 개 안 되더라도 메모를 해 가지고 가지. 나 완전 아줌마지… 슬프다.
그래두 너한테 편지 쓰는 거는 안 잊어버리는 거 보면 기특하지?
그럼 그럼, 나같이 착한 누나가 어디 있다고…
벌써 시간이 아니 밤이 깊었네. 자야지 나두 인제.
안녕
1998. 8. 29.
* 아나운서 최은경도 11월에 결혼한대. 가수 박남정두
MC 허수경은 이혼했구. 이승연이 운전면허 사건땜에
당분간 방송활동 중단한단다.
애석하게두 네가 좋아하는 윤손하 기사가 없더라.
있으면 사진이라도 보낼려구 했는데.
참, 그리구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합당한다고
오늘 청와대 박지원 대변인이 발표했다.
저녁에 발표해서 아직 기사는 나지 않았어.
담에 보내줄께.
(가수 이선희도 이혼했더라.)
박찬호 기사 보낸 거는(이유는) 특박 나왔을 때 물어
보길래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가요계도 엄정화의 새 노래가 나온 거 빼곤 별 변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