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이 소다
이유 Ⅰ
이별한 순간부터
눈물이 많아지는 사람은
못다 한 사랑의 안타까움 때문이요
말이 많아지는 사람은
그만큼의 남은 미련 때문이요
많은 친구를 만나려 하는 사람은
정 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혼자만 있으려 하고
가슴이 아픈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원태연 시집 中
짐
오직 사랑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으로 치장된 다른 것에 한눈팔지 말게 하소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외려 그대에게
힘겨운 짐이 되지 말게 하소서
- 이정하 ‘너는 눈부시지만… 中
책장을 넘기다가 오래전 친구가 선물해 준 시집이 눈에 띄더라.
바로 앞에 적어준 원태연 시집, 아마 한두 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등학교 때 꽤 인기를 누렸던 시집이지. 아마 너두 알겠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 좋고, 가슴에 팍팍 와닿는 듯한 시 구절들이 그 당시 내 맘을 설레게 했던…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 들여다봐도 여전히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게 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인 거 같다.
우리가 사랑할 때 이별할 때 느끼는 감정들을 시적인 함축된 말들로 표현하지 않아 쉽게 공감할 수 있잖아. 시집 제목 생각나?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는지, 그래서 시인인가 봐.
… …
이제 곧 가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들리네.
작년에 마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내가 얘기했었나?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한 아르바이트를 간단히 말하자면 기존의 프로그램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는데 그 기존의 자료를 새 프로그램에 옮기는 작업, 그걸 내가 했어. 컴 관련 회사였거든. 암튼 거기서 아르바이트할 때 스물일곱 먹은 언니하구 또 동갑내기인 경태 씨라는 사람이 있었거든 내가 보기엔 그 경태 씨는 눈이 높아서 그 언니 쳐다도 안 보는 거 같았어. 물론 그 언니는 내가 보기에두 경태 씨 무지 좋아하는 거 같더라. 나랑 경태 씨랑 둘이서만 밥 먹으러 가면(경태 씨도 나두 피자 좋아해서 둘이 자주 피자 먹으러 갔었거든) 괜히 나하구 말두 안 하고 그래서 내가 눈치를 챘었지.
근데, 근 몇 달 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는데 글쎄 둘이 결혼한다지 뭐야. 참, 아까운 남자하나 놓쳤다. 킁~ 10월에 결혼한다구 청첩장이 왔더라구. 언니 나이가 많아서 친구들은 벌써 결혼을 하고 그래서 야외촬영 때 같이 가줄 친구가 없다고 올 수 있으면 와 달라고 하더라고, 배 아픈 데 갈까 말까?
그래서 결혼은 일찍 하는 게 좋대. 일찍 해야 친구도 많이 오고 좋다고, 늦게 하면 다른 친구들 다 결혼하고 그러면 가고 싶어두 갈 수 없을 경우가 많잖어. 그래서 결론은 일찍 하던가 아예 안 하던가. 그래야겠군…
곧 있으면 자대배치받겠네. 궁금하지? 어디로 가게 될지.
먼 곳으로 가라고 주문을 외워야지… 잔소리 듣기 싫으니깐. 그전에 얘기했었지만 제주도쯤으로 떨어지면 좋잖아. 일부러 여행두 다니는데 그럴 필요 없을 테고, 아니면 섬이나 홍도나 매물도나 그런 곳은 해군이 지키나? 헷갈리네, 오늘은 편지 쓰면서 무지 많이 헷갈리네 머릿속이 뒤죽박죽. 후한이 두려워서 안 되겠다. 이왕이면 가까운 데로 떨어져라. 맘대로 되는 거 아니겠지만은. 정말야 근무하기 편하고 웬만하면 설서 가까운 데루 안 그러면 4개월 더 긴 공군 억울하잖어.
1998. 8. 30.
P. S.
날이 선선한 거 같아. 무료하지 말라구
껌 보낸다. 동기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나눠 먹어.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구. 거봐. 시간 빠르지?
벌써 1주일 지났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