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
1999년은 밀레니엄 복권과 Y2K 버그(밀레니엄 버그)라는 말들이 일상에서 오가던 시기였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공존하던 해였다. 복권처럼 삶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앨범 속 잠자고 있는 복권처럼 담담했다.
2000년 새천년의 2월 22일, 아주 우연히 “그 오두막에 여든네 살 청년이 산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짧은 설명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 그대로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작은 귀틀집에서 84세 청년과 77세 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청년이 남긴 몇 마디는, 새천년을 맞이했던 당시의 기대보다 훨씬 더 값진 지혜를 담고 있었다.
이 다큐는 그 소박한 내용으로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피버디상(Peabody Awards)이라는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피버디상 누리집에도 이 프로그램을 ‘모든 인간을 연결하는 공통분모’를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청년의 집은 통나무를 쌓아서 그 틈을 흙으로 메운 귀틀집이다. 지붕은 억새를 이었다. 주변에 억새를 모아 촘촘히 용마름을 얹으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서 땔감도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철 지난 옷은 라면박스에 담아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옷장이 따로 필요 없다. 구석구석 꼭 있어야 할 살림살이는 다 갖추고 있으니 두 내외가 살기에 그리 좁은 방도 아니다. “전 이렇게 형편에 맞는 집을 짓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평생 꿈이었지.”
형편에 맞는 집을 짓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청년의 말은 거창한 철학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과 억양처럼 소박하고 투박하다. 그런데 그 소박한 말들 속에, 우리가 오랫동안 애써 피하거나 돌려 말해 온 ‘나이 듦’의 진실이 담겨 있다.
“젊어서 마음대로 놀고,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고. 저 양반(촬영하는 사람)도 앞으로 30년이면 나처럼 돼 뭐. 틀림없다구. 안 그래요? 그래. 늙은이 종자가 따로 있나! 나이 많으면 그렇게 돼. 나도 영감들이 뭐 긁어서 먹고 하는 걸 보고, 뭐 저럴 수가 있나 했는데 잠깐이야! 뭐. 내 그거.”
“늙은이 종자가 따로 있나”라는 말은, 나이 듦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지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온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라며 거리를 두는 대신, “나도 언젠가는 저 나이에 이르겠지”라고 담담히 인정하는 마음이다.
그는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도 우리는 늘 먼 미래의 근심을 안고 산다”라는 옛말처럼, 삶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담담한 체념 속에서 건네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목개화 심불로(老木開花 心不老)”라는 말로 나이 듦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억지로 젊은 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이미 끝난 존재로 여기지 말라는 당부에 가깝다. 나이를 세어 놓고 “이제는 할 수 없다”라고 선을 긋기보다는,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멋을 내고, 하루를 꾸려 가보자는 제안이다.
고령화, 인구구조 변화, 돌봄 정책과 같은 말들은 대개 숫자와 제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 안에는 이런 목소리와 얼굴이 있다. 귀틀집에 살던 여든네 살 청년의 말은, 노년을 통계나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는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고령사회란, 여든네 살 청년의 말씀처럼 ‘늙은이 종자’를 따로 떼어 놓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언젠가 그 자리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회일 것이다. “나는 늙었거니”가 아니라 “지금도 삶을 이어 가는 중이거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정리하고 이어 갈 수 있도록, 시간과 자리,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말까지 내주는 사회 말이다.
그 오두막의 청년이 남긴 몇 마디는, 복잡한 통계나 거창한 제도가 아닌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이 들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할지를 조용히 짚어 주는, 소박하지만 값진 이정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