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자명종 시계는 분해했고, 호기심은 조립됐다

호기심의 시작

by 먼소리뚜버기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으로 둘러싸인 곳, 100 가구가 넘는 마을이지만 전화기는 마을 이장님 집에 딱 한 대 있었다. 전화가 오면 누구 어머니, 누구 아버지, 전화받으러 오라는 방송을 확성기로 알렸던 시절이다.

초등학생에게 정보접근성이라는 것은 학교 선생님, 이웃, 그리고 가족이 전부였다. ‘정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 의미조차도 몰랐었던 것 같다. 사실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 시절 가장 어려운 것은 단어의 뜻을 찾아오라는 숙제였다. 생각해 보면 분명히 그 시절에도 국어사전이 있었을 텐데, 우리 집에는 사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단어의 뜻은 오롯이 아버지와 외삼촌의 설명에 의존했다. 그래도 늘 문제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닿을 수 있었던 ‘정보’의 세계는 그렇게 좁고도 충분해 보이던 작은 동네와 사람들뿐이었다.

변화가 더딘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내가 갑자기 ‘과학의 날’이라고 상을 받았다. 상장과 함께 ‘과학 백과사전’과 자명종 시계를 받았다. 정말 두툼하고 컬러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찬 책.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책이었다. 세상에 이런 것들이 다 있나 싶을 만큼, 책은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알려줬다. 어쩌면 그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호기심 때문에 상으로 받은 자명종 시계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집에는 태엽을 감아 쓰는 큰 벽걸이 시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자명종 시계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밥 주는 것(태엽을 감는 것)을 잊어버려 멈춰있는 시간이 많아 하루에 두 번만 시간이 맞는 시계였다. 하루에 두 번은 맞고, 나머지 시간에는 틀린 채 멈춰있는 시계는 제 할 일을 않는다고 누가 타박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시계를 분해해서 조립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으로 받은 것이니까 소유권은 내 것이고, 우리 가족 중에 이 자명종에 큰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다. ‘분해하면 다시 조립할 수 있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지만, 결국 분해된 채로 버림받았다.

그 자명종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라기보다 내가 처음으로 손에 쥐어 본 ‘과학 실험 키트’에 가까웠다. 국어사전 대신 아버지와 외삼촌의 설명에 기대 살던 내가, 과학 백과사전을 만나고, 결국 집에 있던 가장 복잡해 보이는 물건을 뜯어보며 세상을 이해해 보려 했던 것일 거라는 망상을 해본다. 지금처럼 정보에 닿는 길이 화면 하나로 끝나지 않던 시절,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정보 접근 방식은 그렇게 무모하게 분해해 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망가진 시계는 버려졌지만, 그때 생긴 호기심만큼은 아직도 내 안에서 똑딱똑딱, 시간을 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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