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팥빙수 먹고 싶어. 이소 팥빙수 있잖아. 그 이모한테 물어봐줘. 해줄 수 있는지."
쿠키랑 커피 마시러 간다고 말도 못 하고 민폐를 무릅쓰고 전화를 했다. 겨울에 팥빙수 해줄 수 있냐고. 당연히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전화했는데괜히 미안했다.
아들이 먹고 싶다고 먼저 얘기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라. 먹고 싶다고 할 때 바로 사주고 싶었다. 원래 사람의 욕구 충족이 제일 강한 게 먹을거리 아닌가. 나 또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친구가 선뜻 같이 나서준 날 제일 행복했다.
무더운 여름도 아니고 머리가 띵하게 춥디 추운 겨울. 팥빙수라니.
몸에 열이 많은 토양체질이라 시원한 음료, 과일, 아이스크림을 많이 찾는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수박은 여름에 먹는 거야!!"
단칼에 딱 잘라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저 큰 덩어리를 사면 보관하기도 힘들고 (갑자기 냉장고 걱정) 랩으로 씌워 보관하자니 세균이 득실댈 것만 같고. 얼른 먹어 치우자니 매 끼니마다 수박을 먹여야 할 것만 같아 사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을 때 딱 먹는 기쁨이란 엄청 큰 행복일 텐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즐거움.
팥빙수 먹으러 백화점에 간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팥빙수가 왜 좋아?"
"우유맛이 상큼하고 부드러워서 맛있어. 입안에서 시원한 게 느껴지면서 사르르 녹아. 꼭 눈 먹는 것 같아."
"그래. 다시 보니까 눈 오고 나면 소복하게 쌓여있는 뽀얀 눈밭 같다."
"응. 여름에 먹었던 팥빙수가 너무 맛있어서 겨울에도 다른 팥빙수를 먹어보고 싶었어."
우유빙수 팥 따로따로 본연의 맛을 즐기는 아이
팥 한번 떠먹고 얼음 따로 먹는 스타일. 팥이 달콤해서 차가운 얼음이랑 잘 어울린다고. 말없던 아이가 이렇게 팥빙수에 대해 할 말이 많을까. 신이 난 게 느껴져 이럴 때 참 뿌듯하다. 이게 뭐라고.
집안일이 많아 아이의 욕구가 성가시고 귀찮을 때가 많다. 너의 욕구는 알겠으나 내 생각을 들어볼래?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의 대화방식. 내 부탁만 늘여놨던 것이 생각나 살짝 부끄러웠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긴 겨울방학. 이번 방학엔 아이에게 집중해서 먹는 욕구를 채워줘야겠다.
바로 그래! 좋아! 할 수 있는 여유.
팥빙수가 반쯤 남았을까. 오들오들 떨면서 몸을 움츠리고 먹는데 뽀뽀해 달라고 입을 쭉 내민다.
집 밖이라 그런지 시선이 마구 느껴져서 남사시러웠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음)
사춘기가 시작되면 이것마저 그립겠지. 하며 뽀뽀를 했더니.
"엄마, 짱 행복하다." 말한다.
나중에 가족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것들을 제쳐두고 열심히 살았지만.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가족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