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들.
아 망했다.
반가운 친구의 전화. 자식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선언했는데 둘째 임신을 했다니 모두 의아했나 보다.
둘째 아이의 태몽을 꿨다고 전화가 왔다. 둘째 임신도 심난한데 태몽이라니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내심 궁금했다. 딸 꿈인지 아들 꿈인지.
넓은 들판에 실한 바나나와 예쁘진 않은데 크지는 않은 그저 그런 복숭아가 있었다. 친구가 예쁜 바나나를 제쳐두고 큰 복숭아를 먹었다고 했다. 예쁘진 않던 복숭아가 기똥차게 맛있었다 이야기한다. 딸인 것 같다고.
복숭아를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에 찾아보기 시작했다. 복스럽고 예쁜 복숭아면 딸. 아주 큰 복숭아면 아들.
‘앗, 그런데 바나나랑 복숭아 두 개가 있었으면 쌍둥이인가?’ 쌍둥이는 유전이 많다는데 친척 언니 둘이나 쌍둥이라는 게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점점 여러 가지로 불안했지만 그냥 믿고 싶은 것만 믿기로 했다.
쌍둥이만 피하자.
딸. 그래, 딸이 좋았다.
‘예쁜 딸인가 봐...’ 그때부터다. 새벽 양재 꽃시장에서 꽃을 사기 시작했다. 예쁜 꽃만 보면 이쁘둥이가 나오리라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지나가는 꽃만 보면 "아니 왜 저기에 꽃이 있고 그래, 나 보라고 있는 건가." 이 꽃 저 꽃 모두 나를 위해 있는 것처럼 꽃에게 감정이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오빠 나 진짜 딸인가 봐. 고기는 안 당기고, 과일이 많이 당기네? 뭐지?”하며 상상 속에 딸이랑 만나는 꿈까지 꾼다.
그리고 몇 달 후,
산부인과에서 성별 확인하는 시간. 우리 신랑 연차까지 내고 한아름 달려왔다. 대학교 인기 있는 강좌 신청하는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초음파를 보고 의사 선생님이 “아, 정말 안보여주네. 다음에 알려 줄게요” 차라리 거절 해주길 바라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멋진 아이네.”
“네? 아들이요? 딸이요?”
“잘생긴 아이야. 어, 여기 봐봐 나 아들이라고 쓰여있네.”
하, 신이시여.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이 물어보면 나 아들이야.라고 백번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카톡 프로필 사진에 고추 사진 떡하니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묻지도 못하게.
“혹시 셋째 딸 가능성 없으니 딸 낳을라고 준비도 하지 마. 아들일 테니까. 또 보지 말자. “
“아~네. 아들 뭐 형제고 좋습니다. 좋아요.”
산부인과에 나와서 신랑을 보는 순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떡하냐고.
아들 사람 셋을 데리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니. 둘째를 만나기도 전에 큰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결국 팔자에도 없는 딸 때문에 우리 둘은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앞으로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