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잊을 수 없는 토스카나 중소도시들

* 유럽여행 16일차 20240601(토)

by 오십아재 싸묵싸묵

* 유럽여행 16일차 20240601(토) 아그리투리스모 페르체나 - 아시아노 - 아그리투리스모 바콜레노-몬테풀치아노

* 부제 : 아~! 붉게 물드는 몬테풀치아노


황홀한 페르체나의 아침

페르체나의 아침 풍경
페르체나의 아침 풍경
아듀~! 페르체나~!


아그리투리스모 페르체나의 아침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창문 밖에서 화창한 날씨가 어서 나와보라고 손짓하고 있어서 침대에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아직 아침 안개도 덜 걷힌 농가 주변은 어제저녁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제 막 올라오는 태양 빛을 받은 나무들이 완만하게 내려가는 언덕 아래로 자기 키에 다섯 배는 되는 그림자를 내리뻗치고 있었다. 마치 아폴론신이 태양 마차를 막 끌고 나와 끝도 보이지 않는 토스카나의 들판을 비추는 듯했다. 아직 형체도 뚜렷하지 않은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노래하는 새들이 고요와 은은함 속에 잠든 대지를 깨우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경이로운 풍경인가!"

태어나 처음 접하는 풍경과 분위기에 매료되어 탄복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감사했다.


아기자기한 아시아노 전원을 드라이브 하다

농장 입구에서 농가까지 느러 선 사이프레스 나무
아시아노의 감성 넘치는 길
드넓게 펼쳐진 아시아노 들판


아그리투리스모 페르체나에서 조식으로 가정식 빵과 쨈에 케이크까지 두둑이 챙겨 먹고 천천히 아시아노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사이프레스 길로 유명한 아시아노 지역을 돌아보고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중세 도시 몬테풀치아노에서 묵는 일정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여서 시간은 넉넉했다.


아침의 공기는 상쾌했고, 아시아노 길은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적했다. 창문 열고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어쩌다 뒤에 차가 따라붙으면 나는 갓길에 차를 붙여 먼저 보내고 천천히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여유롭게 달렸다. (내가 오늘 같은 드라이브를 위해 차를 렌트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본전은 뽑아야지 하는 심산이었다.)


아시아노의 지형은 어제 키안티와는 조금 달랐다. 잔잔한 바다의 물결처럼 구릉 능선이 더 낮고 몽글몽글하게,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언덕 위에 오르면 막힘이 없었다. 지형을 따라 그대로 만들어진 전원의 가늘고 긴 길은 그 자체로도 '갬성'이 넘쳤다. 커브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변화무쌍한 풍경에 몇 분을 채 달리지 못하고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언덕을 따라 깔끔하게 깎여진 푸른 풀밭, 노란색 때로는 빨간색 꽃밭, 줄지어 선 사이프레스 나무와 당근색 지붕의 저택, 가지런히 줄지어 선 포도밭 이랑들이 느릿한 능선과 구름이 깔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가며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명불허전! 내가 다녀 본 드라이빙 코스 중에 당연 일등이었다.(엄지 척!)


고풍스런 도시 아시아노

아시아노 중심거리와 성당
고풍스런 아시아노 성당


아시아노는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중심지에는 오래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크기로 과거 아시아노 공동체의 크기와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주변의 도시국가 시에나보다는 작지만, 라다 인 키안티보다는 큰 중간 규모의 도시였다. 가로로 넓게 단을 쌓은 성당 앞 잿빛 계단을 조심스럽게 한발 한 발 딛고 올라섰다.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곳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깊이 있고 경이로운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성당 정면의 파사드는 오랜 세월의 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HBO사의 최고의 인기 미국 드라마 중 하나인 '왕좌의 게임'에 등장할 법한 오래된 건물이었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 속을 걷고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두건을 깊게 뒤집어쓴 중세 수도승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람 키 두 배가 넘는 나무로 된 입구에 작은 쪽문이 열려 있었다. 쪽문을 통해 조용히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 가장 뒷줄의 장의자에 앉았다. 오랜 세월 이곳에서 미사를 드려온 아시아노 사람들의 신앙으로 축적된 경건한 공간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내부에서 바라본 건물의 골조는 생각보다 훨씬 튼튼해 보였다. 간단히 기도를 드리고 나온 뒤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바콜레노! 너의 이름을 알기까지

멀리 보이는 사이프레스 나무
Agriturismo Baccoleno
병사들처럼 서 있는 사이프레스 나무들


오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스크린 보호 화면에서 한 번쯤은 봤을 스파게티 가닥처럼 S자로 휘어진 길에 사이프레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구글에서 아시아노를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멋진 사진의 그곳을 찾아 출발했다. 만약 못 찾으면 아시아노 지방의 길을 다 훑어서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다. 일단 구글맵에서 그곳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다행히 몬테풀치아노와 같은 방향이었다.


아시아노의 멋진 풍경이 또다시 시작됐다.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사이프레스 나무가 수백 미터나 이어진 언덕길이 눈에 들어왔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사이프레스 나무들이 늘어 서 있었다. 차를 계속해서 몰아 시계방향으로 크게 돌아 언덕을 오르는데 갑자기 여러 대의 차량들이 길가에 정차해 있었다. 직감적으로 속도를 줄여 조심스럽게 한 차 뒤에 세웠다. 그곳은 한 농장의 입구인 철제 창살 대문 앞이었다.


철제문 안으로 그 멋있는 사이프레스 나뭇길이 뻗어 있었다. '햐~ 바로 여기로구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아래에서 봤을 때 직선이던 길이 올라와서 보니 곡선으로 보였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문기둥 옆으로 담장이 없어서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이프레스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길은 배수 때문인지 언덕 능선 정상 부분을 닦아 비스듬히 오르내리며 크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양옆으로 내 키에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늘씬한 나무들이 곡선 길을 따라 줄지어서 농가 저택으로 나를 에스코트 했다. 도열한 사이프래스 나무들이 마치 로마 궁전으로 향하는 황제를 맞이하는 장수들처럼 미동도 없이 우뚝 서 있다. 금방이라도 나를 가로막고 설 듯했다.


마지막 커브를 앞두고 발길을 돌려 되돌아왔다. 사유지 침범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입구에 다다라서 오른쪽 언덕 위로 사람들을 따라 올라갔다. 거기에는 'B A C C O L E N O' 라는 글자를 이용해 감각적으로 만든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 여기가 아그리투리스모 바콜레노였구나!' 알베르토가 유튜브에서 추천했으나 매진이어서 예약할 수가 없었던 바로 그 아그리투리스모였다. 비로소 멋진 사진 속 풍경의 주인공 이름이 '바콜레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스크린 보호 사진과 똑같은 앵글로 프레임을 잡을 수 있는 인생샷 스팟이였다. 아그리투리스모 바콜레노와 그 농가를 휘감은 리본 끈 같은 커브 길과 사이프레스 그리고 연녹색 바탕의 아시아노 들판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가는 구름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명당이었다. 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들판 위에 열정적인 이탈리아인들이 감각적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바콜레노 농장! 내 너를 잊지 못하리라.


몬테풀치아노 입성하기 쉽지 않네!

멀리 보이는 몬테풀치아노
성벽과 출입구

바콜레노에서 여러 장의 인생샷을 찍고 나서야 몬테풀치아노로 향할 수 있었다. 40분 정도 달려가는데 멀리 뿌연하게 산성이 나타났다. 산성이 가까워져 오자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갑자기 7시 방향 좌회전이 나오더니 다시 5시 방향 우회전이 나온다. 처음 보는 교통체계에 신경을 바짝 세워야 했다.


갈 지(之)자 모양의 길을 따라 오르니 성벽 사이로 키 높은 아치 모양의 문으로 연결됐다. 성문을 통과할 때는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건가?' 성문을 통과하니 구글 내비 상에 오늘 묵을 아파트먼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목적지를 50미터 정도를 앞두고 문화유적지 통행금지 표지판(붉은 동그라미 표지판)이 버티고 있지 않는가? 예약한 숙소가 유적지 구역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유료주차장에 일단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숙소를 찾아갔다.


아치 모양의 성 출입구를 통해 보이는 들판
몬테풀치아노 성당 파사드와 종탑
몬테풀치아노 전망대에서 바라본 드넓은 들녘


숙소는 정말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건물이었다. 아치형의 대문을 통해 어두운 통로를 지나니 아치와 기둥으로 멋을 낸 내부 회랑이 보였다. 그런데 관리사무소가 보이질 않았다. 1, 2층을 다 돌아봐도 문들은 굳게 닫혀있고 'Information Office'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인기척도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겠지' 생각하고 먼저 간단하게 산성 투어를 하기로 했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관광객들을 따라가다 보니 길 끝에는 넓은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너머로 푸른 몬테풀치아노의 들녘이 구름과 함께 펼쳐져 있었다.

"햐~ 정말 오기를 잘했다!"


고풍스런 숙소 대문(아파트먼트)
숙소건물 내부구조 / 열쇠 보관함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아고다(숙박앱)에서 보내온 메일과 숙박업체에서 보낸 메일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내용인즉슨 'WhatsApp'으로 무슨'코드'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WhatsApp(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앱)이 유럽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메일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영어는 비대면이어서 소리로만 정보를 인지해야 해서 신경을 바짝 세웠다. 여성 상담원이 연결되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헐~! 순간 느낌이 쎄~했다. '사기당한 건가?' '오늘 어디서 자야 하나?'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남성분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상황인즉슨 이 업체는 여러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었고 여직원이 확인한 숙소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고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휴~! 일단 다행이다.


WhatsApp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더니 회사 메일로 여권 사본을 보내주면 답신으로 방 이름과 코드 번호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회사 이메일을 한자 한자 불러주는데 'castello'에 'L'은 Double 'L' 이고 hotels에서 's'를 빼먹으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며 'castello@paradisehotels.it' 라는 긴 주소를 불러줬다. 정신없이 받아쓰고 나서 다시 한번 내가 쓴 것을 repeat해서 확인했다. 정말 초집중해서일까? 아니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영어가 제2외국어여서일까? 신기하게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싯적 배운 기초 회화지만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여권 사진을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고 십 분 정도 지나서 답장이 왔다.


Dear Mr. Kim,

the name of the apartment is Chiostro and you find it at first floor.

The code number is 5028 and you have to type it on the safe for enter inside the apartment.


대충 1층에 Chiostro라는 아파트먼트가 있고 코드 번호는 '5028'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1층에 Chiostro라는 방이 없었다. '아~ 여기는 2층부터 층수를 카운트한다고 그랬지.' 위층으로 올라가니 정말 Chiostro라는 문패가 있었다.


문 옆에 숫자 패드가 달린 작은 박스가 있었다. 코드 번호를 입력하고 윗부분의 십자 모양 플라스틱 나사를 돌려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잡아당기니 박스가 열렸다. 세상에~! 그 박스 안에 열쇠고리가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전자식 도어락이 낳지 않나?' 꺼낸 열쇠로 시계방향으로 두 바퀴 돌려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안내한 상담원을 생각해서 예의상 답장을 보냈다. "Thank you very much. I got in the apartment ^^"


"아이고~! 몬테풀치아노에 입성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무료주차장을 찾아 몬테풀치아노를 오르내리다

골목 너머로 보이는 들녘
고풍스런 골목 아치 너머로 보이는 들녘 / 몬테풀치아노의 가파른 골목
운치있는 몬테풀치아노 골목길 / 골목길(아침)
몬테풀치아노 광장과 시청사


고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료 주차장에 있는 차에서 짐을 숙소로 옮긴 다음 무료 주차장으로 이동 주차해야 했다. 200미터나 되는 주차장과 아파트먼트 사이를 두 번 왕복해서 내일 아침까지 사용한 짐들을 날랐다. 당장 냉장고에 넣어야 할 음식료품들이 급했다.


무료 주차장은 성안에는 없었다. 모두 성 아래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시 복잡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 무료 주차장을 찾아갔다. 첫 번째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두 번째 주차장을 찾아갔으나 버스 종점 주차장으로 개인 차량을 댈 수는 없었다. 주차장을 찾아 몬테풀치아노 끝에서 끝까지 왕복해야 했는데 일방통행도 많고 급좌회전, 급우회전이 많아 조심스러웠다. 타지에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나머지 여행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처음 갔던 주차장에 가서 빈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다행히 끝자락에 한 자리가 나길래 얼른 주차했다. 이제 다시 숙소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주차장 바로 위에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지그재그로 나 있었다. 계단 끝에는 아담한 마당이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들판이 멋진 나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힘들게 올라온 수고를 보상해 주는 듯했다.


광장을 향해 가는 골목길들도 정말 운치 있었다. 바닥은 모두 돌이나 벽돌로 다져 있었고 오래된 집들 사이를 지나거나 아치 모양의 통로를 지나기도 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오래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AI 앱에 물어봤다.


몬테풀치아노의 역사는 기원전 9세기 에트루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고대 로마 문명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고 도시국가 간 패권 다툼으로 14세기에 피렌체 메디치가에 복속되었다. 그러고 보니 보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널찍하고 평평한 바닥 돌도 있고 아주 오래된 작고 울퉁불퉁한 벽돌들도 보였다. 건물들도 아주 고풍스러운 벽돌집도 있고 깔끔한 벽에 연노랑 칠을 한 집들도 눈에 띄었다. 마치 여러 지층의 화석들이 한꺼번에 발굴되기라도 한 듯이 수천 년 동안 이탈리아인들이 쌓아 온 문명의 화석들이 한 곳에 응축되어 전시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몬테풀치아노 골목길에서는 살아있는 인간미와 정겨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니 오래지 않아 광장의 시청사로 연결되었다. 나는 일단 저녁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노을지는 몬테풀치아노를 산책하다

몬테풀치아노에서 바라본 썬셋
저녁 노을 비취는 몬테풀치아노
그림같은 빛깔의 거리
붉게 물드는 몬테풀치아노 가옥들


아파트먼트의 장점은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급한 마음에 코펠에 밥도 안치고 송아지 스테이크도 굽기 시작했다. 고기 굽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뜸 들일 시기를 놓쳐서 밥이 좀 타버렸다. 그래도 내 형편이 탄 밥 설익은 밥 가릴 때인가? 타거나 설익은 밥과 스테이크 고기에 후식으로 탄 누룽지까지 거침없이 먹어 치웠다. 포만감에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저녁 8시가 넘어섰는데도 아직 밖은 훤했다. 주방에 딸린 창문틀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벌써 노을빛에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후기 인상파 그림에 나오는 그런 강렬한 빛깔이었다. 곧장 오후에 갔던 전망대로 향했다. 녹색, 연두색 들판 너머 주황색 빛을 발하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노을빛이 몬테풀치아노 건물들의 지붕 기와와 벽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노을에 젖은 고풍스러운 집들의 풍경이 너무도 이색적인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저녁에 더 운치 있는 몬테풀치아노 레스토랑


나는 저녁노을을 벗 삼아 몬테풀치아노 성곽을 산책하기로 했다. 아치 모양의 성곽 문을 따라 내려가 성곽 아랫길을 걸었다. 아치 모양의 높은 축대를 감고 돌며 높은 성곽 위의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중세 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거리와 골목길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거닐다 노을에 물드는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한 레스토랑에 접어들었다. 테라스 파라솔 아래로 여행자들의 떠드는 흥겨운 소리와 함께 몬테풀치아노의 검붉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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