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작전상 후퇴, 이탈리아로

* 유럽여행 9일차 20240525(토) 그린델발트-밀라노

'아이거북벽 카페'에서 모닝 커피 한 잔!

캠핑장에서 아이거북벽 바라보며 아침 커피 한 잔


스위스의 첫 아침, 8시경에 텐트 안에서 눈을 떴다. 텐트 지퍼를 열고 나와 보니 사방이 구름 세상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설산과 구름의 황홀한 풍경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흐린 날이 아니었지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그린델발트는 구름에 갇혀 있었다. 밤사이 굳은 몸을 녹이기 위해 일단 코펠과 버너를 꺼내 커피 물을 끌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일회용 이*야커피를 밥그릇에 타서 아이거북벽을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들이켰다. 이야~! 이보다 더 넓고 멋진 카페가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이게 다 공짜라니!


아이거산은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딜 감히 올려다보느냐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겨우 치맛자락만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큰 산이 마치 거대한 자이언트(거인)가 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는 것만 같아 금방이라도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떨며 일어설 것만 같았다. 로마신화의 거인족과 올림퍼스가 저 설산 구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전상 후퇴, 밀라노로

구룸에 갇힌 아이거북벽

오전 10시가 넘어서도 구름은 걷힐 기미가 없었다. 융프라우산에 오르기를 고대하며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한국 날씨처럼 아침에 안개가 좀 끼어도 점차 화장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건 이곳 융프라우 산악지역의 기후를 잘 모르는 나의 오판이었다. 캠핑장 안내소를 찾아서 언제쯤 구름이 걷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융프라우는 6월부터 성수기로 적어도 2주는 지나야 정상이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마음만 앞섰지, 자세한 사전 조사가 미흡했던 탓이다.


5월의 평지 날씨가 아무리 맑아도 3,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역의 날씨는 변화무쌍한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융프라우에서 버킷리스트를 지우려 여기까지 날라 왔는데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었다. 고심 끝에 오늘은 일단 '작전상 후퇴'하고 이탈리아를 먼저 여행한 후 다시 스위스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구름에 갇힌 아이거북벽을 뒤로 한 채 밀라노를 향해 출발했다.


도전! 에어비앤비


스위스의 여러 호수와 고개를 돌고 돌아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을 지나 이탈리아 북부의 휴양지 코모를 지나 밀라노까지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부지런히 달렸다. 북에서 남으로, 높은 고산지대에서 평지로 내려오는 동안 기온이 3~4도 정도 상승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밀라노에 접어드니 온화한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당장 오늘 묵을 숙소부터 구해야 했다. 밀라노 시내 호텔들은 비싸고 주차가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처음으로 에어비앤비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시 외곽이라 가격도 합리적이었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상도 엿볼 기회라 생각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가격 20만 원 이하에서 별점과 후기 위주로 빠르게 검색하여 밀라노 감바라 전철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Jacopo Palma 아파트로 예약했다.


앱 하나로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면서 처음 가는 도시의 숙소를 바로 골라서 예약할 수 있다니 참 편리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바일 혁명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여행자라는 것을 몸소 확인했다. 에어비앤비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밀라노 감바라역 근처 에어비앤비 숙소
Jacopo Palma 아파트


Jacopo Palma 아파트 앞에서 조금 기다리니 호스트 지오반니가 나타났다. 참 이탈리아스러운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오반니는 이 일이 익숙한 듯 이탈이아식 영어로 빠르게 안내를 시작했다. 본인 집은 근처에 따로 있고 이 아파트는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을 하고 있었다.


지오반니를 따라 들어간 숙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건물은 오래 됐지만 한가족이 묵어도 될 정도로 넓은 방과 편리한 욕실 전실과 햇빛 가득 드는 널찍한 욕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높은 층고에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신선한 공기로 쾌적했고 벽을 둘러싼 그림들은 평안함 마저 주었다.


방의 그림들이 멋지다고 칭찬을 했더니 반색을 하며 그림 몇 점을 소개하는데 하나는 할아버지로 부터 물러 받은 오래된 그림이고 또 하나는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화가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젊었을 때 그림을 배워서 지금은 취미로 한다고 한다. '확실히 한국보다는 예술이 이탈리아인들에게 보편화되어 있지 않나?' 하는 '근거없는' 추측을 해보았다.


열쇠 노이로제

3개 열쇠
아파트 집 현관

지오반니의 아파트는 방 3개로 되어 있는 넓은 집이었는데 안방은 내가 사용하고 거실과 주방은 공유하는 형태였다. 다른 방에도 게스트들이 숙박하는데 외출 중이었다. 지오반니는 쓰레기 처리 방법 등 주방 이용 시 주의 사항과 지하철, 마트 등 주변 길 안내까지 친절하게 일사천리로 마쳤다. 끝으로 아파트 현관문, 집 현관문 그리고 안방 문을 여는 3개의 열쇠에 관해 설명하면서 집을 나갈 때도 반드시 열쇠를 잠그고 나갈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묵직한 열쇠뭉치를 인계하고 호스트는 떠났다.


먼저 차에 가서 짐을 옮겨와야 했다. 안방 문과 집 현관문을 잠그고 나오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일단 어떤 열쇠가 짝인지 식별이 어려워서 이것저것 끼워 봐야 했다. 끼워져도 돌아가질 않아서 잘 달래가며 이빨을 맞춰야 돌아갔다. 그리고 2바퀴를 돌려야 열리고 잠기는 것이었다. 열쇠 돌리는 방향도 생소했다. 시계방향이 열리는 방향이고 반대 방향이 잠기는 방향이었다. 가방과 식료품들을 나르느라 2번을 왕복하는데 열쇠를 열고 잠그는 데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았다.


헐~! 이제 장 보러 마트에 가야 하는데 벌써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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