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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3)

3편

by 나세진

* * *


청천벽력이었다. 가슴을 후벼 파고도 남을만한 충격적인 소식을 대학교 복학 후 듣게 되었다. 한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성추행 혐의가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다. 대문짝만한 글자에 이탤릭 효과까지 곁들인 야속한 헤드라인이었다. 한 선생님의 이름은 성추행 교사라는 오명으로 고성군이란 좁은 바닥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존경하는 은사의 이름이 오명으로 먹칠 되어 등장하자, 다리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 힘이 쏙 풀렸다.

나는 리포트 제출을 뒤로 미루고 한철민과 이현진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곧장 서울역에서 회동했다. 선생님이 추문의 주인공일 것이란 사실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긴말할 필요 없이 우리는 선생님을 만나러 고성으로 향했다. 새하얀 눈이 무서울 정도로 탁하게 몰아쳤다. 하늘을 싸리비로 휙휙 쓸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하강할수록 순백의 색을 급속도로 잃어가는, 구정물 같은 눈이었다. 간성읍으로 향하는 버스는 긴 시간 바퀴를 굴렸지만, 누구 하나 잠들지 못한 채로 창만 바라보았다.

“선생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런 추잡스러운 기사들은 다 뭐고요.”

앙상한 뼈만 남은 나무로 드리워진 마을 정자에서 선생님과 만났다. 선생님의 눈꺼풀은 피로에 축 처져 생동감을 잃었고, 주위를 둘러보며 두려움에 잠긴 사람처럼 보였다. 다짜고짜 신문에 실린 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우리는 선생님의 반응을 채근했다.

“…”

“선생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설마 정말 그러신 겁니까?”

선생님은 하려는 말을 입에 머금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눈에 어려있는 눈물로 억울함을 전하는 듯했다.

“아니다! 난 부끄러워할 일은 절대로 안 했어!”

별안간 선생님의 우레 같은 고함이 공기를 휩쓸었다. 답답하고 가려웠던 곳이 선생님의 호통에 쓸려나갔고, 우리는 비로소 얼굴의 근심을 지웠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세요.”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만 응시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또다시 답답함을 불러일으켰다.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강박적인 명제 때문에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은 계속하여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선생님! 이건 아이들이 하는 유치한 수준의 고자질이 아니라고요. 선생님의 억울함을 푸는 일이라고요!”

“…”

“선생님!”

“선생님! 꼭 이래야만 합니까? 당당하게 맞서야죠.”

한철민과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선생님을 연달아 불렀다. 따가워지는 성대 속에서도 말문을 트지 않는 선생님을 응시하며 심장은 타들어 갔다. 기어코 말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을 읽을 수 있었다.

“억울함은 언론에 소명했지만 이미 허위사실이 진실로 변해 있었어. 이젠 모든 게 내 부덕이라 느껴져. 덤덤히 받아들여야겠지.”

“그렇다고 이렇게 어정쩡하게 아무 말 없이 계실 거예요? 끝까지 싸워야죠.”

“모함하려는 세력들이 이미 증거 조작을 확실하게 해놓고 입을 맞춰서 소용없어. 아무리 억울한들 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적법한 방법으론 할 만큼 했으니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돌려 결백을 밝힐 거다. 선생님이 줄곧 했던 말 잊지는 않았겠지? 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무엇보다 선생님의 불명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토록 김동후의 만행에 물리력으로 맞서지 않을 수 있었던 기초는 선생님의 고상한 도덕성에 근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선생님의 도덕성이 여러 세력으로부터 갈기갈기 무두질 당해 너절해졌다는 사실은 마지막 남은 인내와 온화함을 뒤덮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이 직접 입을 열지 않으면 진상을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의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람들은, 일을 키워봤자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다 보니 쉬쉬하는 게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점은 한 선생님의 선한 영향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아무런 호소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멍하니 뜬구름만 바라보아야 했다. 주먹을 질끈 쥐며 이를 갈고 있을 때, 이현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속으로 우리가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 주길 바라고 계실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신경질적으로 이현진의 말을 받아쳤다. 이현진은 차분히 맞받아쳤다.

“생각해봐. 상식적인 선에서 결백하다는 걸 말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 선생님도 한 사람씩 붙잡고 사적인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크겠어? 하나 우리에게 줄곧 말씀하셨던 가르침, ‘악한 방법에 물들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아라.’라는 신념 때문에 복수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거야.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자기모순에 빠지니까.”

“어디 계속 말해봐.”

“김동후를 굴복시킨 일을 생각해봐. 결국 선생님은 학생부를 통해 김동후의 본성을 억눌렀지. 그런데 지금은 학생부와 같은 어떠한 최후의 적법한 수단도 없어. 그럼 이 상황에서 선이 악에 승리한다는 걸, 선생님의 방식이 옳다는 걸 누가 나서서 보여줘야겠어? 선생님으로서는 자신의 결백함이 언젠가는 음모를 이길 거란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 누구도 손 놓고 있다면 그 정의는 이루어질 수 없어.”

왜 이다지도 미련하게 자신의 신념을 적용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현진의 말이 맞다면 선생님 스스로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지지해줄 제자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셈이다. 그건 괜찮다는 말인가. 이토록 야속하고, 답답하여 억장이 무너지는 감정은 김동후를 참아가면서도 없었다.

더욱 강하게 이현진을 밀어붙였다. 미련한 자가 자기 손으로 해결하는 걸 꺼리는 꼴이라서 절대로 돕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야멸차게 말하며 나는 서울로 가는 열차를 예매했다. 둘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 뒤, 우연히 비보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억울함에 자결하셨다는 소식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장례식이 치러진 뒤였다.


살 껍질을 뜯어낼 정도로 세찬 바람살을 맞으며 우리 셋은 가진항 방파제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셋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거센 바람과 파도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무심히 혀를 차올렸다. 선생님의 회초리가 바람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것처럼, 우리는 말 없이 바람을 맞고 또 맞았다.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떨림과 망설임이 섞인 기묘한 바람이 적당한 빠르기로 나를 위로하는 듯 다가왔다.

“가자.”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가자’의 의미는 우리 셋의 머릿속에서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비록 수는 셋밖에 안 되었지만, 우리는 어깨를 걸어 결연히 스크럼을 짰다. 인간성의 상실까지 각오하며 진실을 캐내자는 다짐을 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스크럼을 짜서 한 걸음씩 디디며 간 곳은 선생님이 있던 교장실이었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한 선생님의 제자인 우리를 기꺼워하지 않는 티를 드러냈지만, 최소한의 예의 때문인지 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식적인 위로의 말만 전했다.

선생님의 흔적을 찾으려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교장실 안은 그 흔하디흔한 화분 하나 없이 책상과 컴퓨터, 내빈 맞이용 소파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한 선생님과 얽힌 사건에 대하여 교장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들려 달라 요구했으나, 그는 고인에 대한 언급은 더는 하는 것이 아니라며 함구했다. 양심에 호소해보았으나 우린 선생님의 신원을 회복할만한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일에 양심은 그저 국어사전에서만 빛나는 단어일 뿐이었다.

물 없이 고구마를 한가득 몸속으로 욱여넣은 듯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바라보았다. 교장실 내부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선명한 잎맥을 펼친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느티나무는 교장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지만, 청테이프로 입이 봉인된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잠깐만, 뒤뜰에 가보자.”

이현진, 한철민은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내 얼굴에 묻어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고서는 말없이 뚜벅뚜벅 따랐다. 우리는 교장실 창문 앞, 시야를 가리고 있는 느티나무 쪽으로 갔다. 창가의 느티나무는 우리를 가르치기 전부터 한 선생님이 아끼던 나무였다. 선생님은 ‘나무 의사’라 불리는 수목치료기술자 자격증까지 따며 이 나무를 가꾸었다. 이 느티나무야말로 살아 있다면 선생님의 죽음을 진정 아파할 생명체가 아닐까. 손을 조심스레 수피에 댔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해? 당장 손 떼지 못해?”

오랫동안 우리 학교에서 소사 일을 해오던 아저씨였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나무와 나 사이로 재빨리 들어섰다. 빨간 모자에 푸른색 계통의 작업복만 입고 학교 곳곳을 누비던 아저씨는 맥가이버란 별칭으로 통했다. 학창 시절, 아저씨는 제 손자 대하듯이 우리를 귀엽게 여겼다. 소사 아저씨는 위아래로 미끄러지듯 시선을 옮기며 우리 쪽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 이 학교 졸업생입니다. 고3 때, 한지상 선생님이 담임이셨어요.”

“뭐, 한 선생? 여긴 왜 왔어?”

“뭘 좀 알아보려고 무작정 왔는데, 별 소득이 없네요.”

“일단 나무에서 떨어져. 내가 어떻게 애써 살린 나문데.”

약간의 망설임 끝에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의 불명예로 얼룩진 죽음을 깨끗이 씻어내고자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힘겹게 했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이현진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느티나무를 동지 대하듯이 살포시 매만졌다.

“선생님은 정말로 아무 잘못이 없어….”

떨리는 음성 하나하나가 선생님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저씨로부터 모든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마음을 터놓은 누군가를 남겼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한지상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만 해도, 체벌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진정 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회초리를 드는 분도 계셨지만, 본인에게 쥐어진 회초리를 개인적인 화풀이로 휘두르는 교사도 있었다. 온갖 악행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자에게 정의의 일격을 맛보여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너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물리적으로 적나라하게 알려준 회초리는, 기게스의 반지와 같은 논쟁거리였다. 참스승다운 인품을 갖추지 못한 어른에게 그것이 쥐어진다면, 나무 막대가 잘 다듬어진 구타의 도구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어쨌거나 그런 시대에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묵묵히 빛을 발하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다. 한편으론 그런 분들의 훈훈함도 미담으로 전해지는 시대였다. 한지상 선생님은 그런 존재였다. 그는 교육계에 변혁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였다.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되자마자, ‘새교육운동’이라는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서머힐 학교를 모티브 삼아, 학생에게 자율성과 학교 운영에 대한 부분적인 결정권을 주려고 했다.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는 한 선생님의 행보에, 평소 한 선생님의 승진을 아니꼽게 여기던 무리는 혀를 내둘렀다. 이는 한지상 선생님을 성추행범으로 내몰아 세울 음모로 이어졌다.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마따나, 여러 교사의 거짓 증언이 시장에 나타난 호랑이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사건을 만들었다.

결백을 증명해줄 CCTV도, 녹음된 기록도 없었다고 한다. 짜인 각본대로 때맞춰 등장한 목격자의 진술과 피해자의 증언으로 영락없이 한지상이란 인물은 성추행범이 된 것이다. 한 선생님의 파격적인 교장 승진은 몽고점처럼 살갗을 시퍼레지게 만드는 맹독 의자였다.

“그 악당 놈들은 그렇게 선생님을 쫓아내고도 성에 안 찼는지, 이 느티나무마저 베려고 했어. 나는 이 나무가 베어지는 것만큼은 목숨 걸고 막았어. 이 나무는 선생님의 결백을 유일하게 증언할 존재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말도 못 하는 나무를 벨 명분을 자기네들끼리 수군덕거리더라. 새로 부임한 학교장은 나무를 베라는 지시를 내렸고, 난 지금까지 지시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 올해 재계약 되지 않아 내가 떠나면, 이 나무는 베어질 거야. 느티나무 아래서 한 선생과 차 한잔 마시며 형, 아우 부를 때가 참 그리워.”

그의 오열 섞인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모든 걸 들은 우리는 후에 성추행 사건 관련자들과 만났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그 사건을 꺼내지 않았다. 진실은 심해 속 어딘가에 깊숙이 묻혀있었다.

누가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이야기를 계속 듣더라도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와 같이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만 확인한 채로, 나 역시 한 선생님의 명예를 위하여 맹목적으로 그를 두둔하진 않을까. 결국에는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바로 믿음의 영역이었다.

선생님이 무고한 사람이길 바라며, 웃자란 내면의 잔가지를 날카롭게 깎았다.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어 진실을 규명할 일명 ‘오픈 더 마우스’란 계획을 촘촘하게 짜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구하는 이 일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놈들의 아가리를 잡아 억지로 벌리게 할 도리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완강한 저항에 부딪힐 게 뻔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적 영역을 넘어 인간관계에서도 끈덕지게 나를 따라다녔다.

거미가 여러 나뭇가지를 한 데 엮어 집을 조직하듯이 우리 역시 계획의 한 점, 한 점을 적당한 시기에 지정하여 이어갔다. 상당 시간을 애면글면 들였고, 짜인 계획을 머릿속으로 수백, 수천 번 실행에 옮겼다. 계획의 목적은 진실 확인이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선생님의 신원 회복과 복수의 시나리오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김미현 교사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악에는 악으로 갚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 잡은 마음속 불문율은 어딘가 석연찮게 깊이 움츠리려 했다. 계획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맥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계획은 여우비처럼 잠깐 빛을 발하다 사그라졌다. 벌써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났던가. 희망을 잠식하는 벌레가 머릿속에서 사부작대는 느낌이 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늙은 한의사를 찾았다. 한의사는 평소처럼 태연히 맥을 짚으며 고개를 위로 향했다.

“아리송하구먼, 마음은 많이 안정된 것 같은데… 혹시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 기운이 약해졌어. 신체 내부가 순환이 안 돼.”

“그래도 영감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죠. 꾸준한 성과도 있었고요. 다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에이, 됐어요. 그냥 답답한 일이 좀 있어서요. 그나저나 영감님은 무슨 산신령 같네요. 기분 나쁠 정도로 사람을 잘 꿰뚫어 보신단 말씀이죠.”

“마음의 상태는 몸으로 드러나지. 몸의 상태 또한 마음에 투영되는 거고. 그에 따라 몸 상태는 악순환이 되는 거야. 둘은 마치 서로를 마주 보게 설치된 거울과 같아. 내가 이 생활을 몇 년을 한 지 알아? 자넨 신장이 좋지 않아. 정기가 부족하다는 말이지. 어쨌든 그러다 병세가 더 안 좋아질 걸세.”

“거울이라… 한의학엔 제가 문외한이라 설명하셔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영감님, 혹시 최면 같은 건 걸 수 있나요? 왜, 그 드라마 보면 최면술사들이 최면을 걸잖아요. 최면을 걸어서 상대방의 속마음을 내뱉게 하는 거죠…. 영감님이라면 혹시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내가 하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본심을 드러내게 돼 있어. 약을 잘 먹고, 꿈을 꾼다면 무의식 속에 층층이 매듭지어진 것들이 한 솔기씩 풀어질 수 있지. 그 전에 맥을 짚어봐야 알겠지만.”

“저기, 선생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줄 수 없네. 악에 받친 사람의 부탁은 들어주는 게 아니거든. 약 먹고 쉬기나 해.”

본인의 생각을 어떤 조상들의 격언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회한 한의사는 평소와 달리 내 부탁을 거절하면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달갑지 않은 한의사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한 건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군요. 영감님께서 못 도와주신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길 포기해야겠네요.”


김미현의 입술은 긴장감으로 파르르 떨렸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오직 청각으로만 파악해야 하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폐축사를 채웠다. 버둥거리는 그녀는 어두운 숲속을 걷다가, 식별되지 않는 거미줄을 그대로 얼굴에 들이받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리라. 그녀가 소리 하나하나에 선뜩한 느낌을 오롯이 받도록 음향 효과에도 신경을 썼다. 나는 음향 감독을 자처했다. 내 신호와 함께 우리는 일제히 귀마개를 끼고 쇠젓가락으로 무자비하게 쇠그릇을 긁어대었다. 손발이 의자에 묶여 있던 그녀는 사정없이 들려오는 쇳소리에 한 시간 동안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명을 질렀다.

“살려… 주세요….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감정이 메말라버린 눈으로 나는 그녀의 비명을 읽었다. 내 옆에는 굳어버린 초병의 모습으로 한철민과 이현진이 떡하니 서 있었다.

처음에는 적당히 을러대며, 겁만 주려 했으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수록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싶었다. 우리 셋은 어느덧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부정의 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양심에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을 계획의 수립과 실현성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의 잔영이 인간 본연의 양심을 자극하여 힘들었지만, 그녀의 뻔뻔한 목소리에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양심은 암묵적으로 우리의 행위를 허용하듯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너, 잘못한 것 없냐?”

“무슨 말이에요?”

“한지상 선생님 사건에 대해서.”

“한지상 선생님요? 그 사람은 얼마 전에 죽었잖아요. 피해자는 저인데 왜 그걸 물어요?”

그녀는 버르적거리는 와중에 한 선생님의 이름을 듣고 움찔거렸다.

“피해자라고?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냈으면서, 피해자? 인간적인 대화는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네.”

“갑자기 왜 이래요? 뭐 하시게요?”

“미리 알면 더 무서울 텐데.”

외진 폐축사 안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를 부각했다. 그녀는 복면으로 얼굴을 덮은 우리의 모습과 마주하자 더욱 겁을 집어먹은 듯 보였다. 실상 우리의 복면보다 더욱 역겨운 건 그녀가 쓴 인두겁일 텐데 말이다. 이현진과 한철민은 눈앞에 일어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굳건히 마주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나는 군더더기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다 말해. 네놈들이 벌였던 일들의 전모를.”

어쩌면 노쇠함으로 인한 자연사 앞에 태연자약하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뼛속까지 전해지는 공포는 차라리 살기를 갈구하게 한다. ‘살려주세요’를 연신 외치며, 얼른 내 말을 받아 진실을 풀어갔다. 그녀의 진술은 아저씨의 진술과는 약간 달랐지만 대체로 맥락을 같이 했다. 다만 새롭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모든 게 사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욕심과 시기심에 비롯된 계획이었다. 사람들의 추한 본성에서 끝까지 고매한 정신을 지키려던 선생님은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나방의 신세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강조한 삶의 방침에 크나큰 방점을 찍기 위해 나는 그녀를 때리고 싶었다.

“그건 안 돼. 이쯤 해.”

한철민이 끼어들었다. 나는 주먹을 쥔 채로 한철민을 바라봤다. 그 사이에 이현진이 말없이 주먹 쥔 손을 잡으며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원하시지 않아. 진실을 알았으니 이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보자.”

“미안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을 인용했다. 이현진은 재차 고개를 저었다. 한철민은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때였다.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너희들, 딱 봐도 한지상 선생님 제자구나. 나한테 이러는 게 한지상 선생님의 가르침을 져버리는 행동이란 걸 몰라? 역시 그 위선자는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제자들을 폭력으로 떠밀었구나. 너희들이 이럴수록 한 선생님 얼굴에 먹칠만 하는 거야. 잘 판단해!”

나는 이성의 끈을 놓은 채로 이현진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주먹을 다시 들어 올렸다.

약 기운이 빠졌다. 얄궂게도 꿈이었다. 몽마의 농간일지도 모를 야릇한 꿈. 계획만 세워두고 실행하지 않았던 우리의 행동들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 * *

한의원의 고졸한 담장 앞 느티나무 한 그루는 잔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처마에 매달려 흔들리는 풍경이 은은한 소리를 자아냈고, 한갓진 분위기에 남모를 정취가 더해졌다.

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뜸은 과학적으로 따져봤을 때 좋은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가 오히려 환자에게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자네 병은 막바지에 다다랐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까지 큰 짐을 떠안고 있었구먼. 누군가와 나눠 갖지도 못한 것 같은데.”

한의사는 허리를 너부죽이 굽히며 정수리에 침을 놓았다. 함부로 놓는 자리가 아니지만, 지금은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침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 악몽을 꾸긴 하는데 이젠 줄곧 저를 괴롭혔던 상대방과 승률이 반반 정도 돼요.”

“아직 일러.”

“알아요. 그런데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하더라도 선생님 덕분이죠. 나름대로 몽마인지 뭔지에 편안해졌습니다. 두려움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요.”

“젊은이가 아직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단순한 대결 구도는 마음을 고쳐먹으면 생각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어.”

“저기, 의사 선생님. 혹시 꿈을 스스로 지배할 수도 있나요?”

“어떻게?”

“꿈이란 것도 제 의식이 만드는 건데, 왜 다른 무언가가 이걸 꾸게 해줄 때만 꿀 수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쉽게 생각해서 꿈에 대한 주권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요.”

달갑지 않았는지, 그는 푸른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소 그의 말버릇을 봐서 시원시원한 대답이 선뜻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허공은 침묵으로 점점 찰 뿐이었다. 삽으로 땅을 파듯 영감의 대답을 빨리 파내고 싶었다.

“선생님은 살면서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있나요? 가령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을 어긴 잘못요.”

“예전에 자네가 말했던, 마음 한구석에 박혀버린 율법을 말하나 보군.”

“네, 그렇다고 봐야죠.”

“자네, 마음속에는 부채 의식이 있구먼. 그것이 자네와 대치했던 ‘그 친구’라는 형상으로 드러난 것이고. 그 부채 의식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몽마는 영원히 자넬 괴롭히겠지.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니 부채 의식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자꾸, 마음이라고 하시는데 잘 이해가 가질 않아요. 조금 더 풀어서 말해주세요.”

“자네한테는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사람의 다섯 가지 정서 상태가 오로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야. 생각이 한 군데에만 몰려 있으니까, 그 한 가지 생각이 확대재생산 되어 주변의 오장을 휘돌며 난리를 치다가 결국 몽마가 나타나는 거 아냐.”

“저기….”

“아, 그리고 오늘은 약 성분을 좀 바꿨으니 군말 없이 계산하고 가져가.”

“약 달라곤 안 했는데요.”

“마(魔) 낀 놈 살려놨더니 흥정하고 자빠졌군.”

떨떠름한 그의 말투에 억지웃음을 떨며 한옥마당으로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담장 앞의 느티나무 잎사귀를 스치며 소리를 낼 법했지만, 조심조심 지나쳐가는 듯 흔들림만 계속하여 이어졌다. 느티나무를 보면 교장실 앞 느티나무가 떠올랐다. 허리춤이 뎅겅 베어질 위기를 소사 아저씨 덕분에 모면한 느티나무, 소사 아저씨가 학교를 그만둔 뒤로 기어코 허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그 나무말이다.

“영감님, 나무가 멋지네요.”

“내가 애지중지 키운 거야. 느티나무는 저거 한 그루밖에 없어.”

“왜 하필 느티나무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느티나무만 보면 은사님이 떠오르거든요.”

“어떤 과학 잡지에서 읽은 건데, 느티나무는 사람에게 말도 걸 수 있대. 정말 사람이랑 소통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서 일부러 마당에 심은 거야.”

“꽤 감상적인 면도 있군요. 과학 잡지가 아니라 동화책 읽으신 거죠? 아니면‘나무의 노래’ 같은 창작 동요를 들으신 게 아닌지… 그래서 나무랑 대화해 보셨어요?”

“대화는 무슨! 다만 애지중지 가꿨지. 아, 한 가지 더! 우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 서로 편지를 주고받듯이, 느티나무도 한 동네 사는 나무끼린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더라.”

“에이, 무슨!”

“사람이 보내는 편지처럼, 나무도 나무껍질에서 편지 역할을 하는 물질을 공중으로 흘려보낸대. 나무도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야.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면, 친구들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질을 생성할 수도 있잖아.”


몽마를 만나서 따지기 위해, 잠자리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한가운데는 몸이 파묻힌 채로 삐져나온 얼굴들이 나를 보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다 지루해지면, 깊숙이 땅을 파고 들어가 얼굴만 내놓아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래사장이 아닌 천장에서 튀어나온 얼굴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래로 피가 쏠려 괴로운 표정을 짓는 얼굴들은 지금껏 나를 지나쳐 온 지인들이었다.

눈을 감았다. 천장의 얼굴들을 더욱 세밀하게 흑색 스케치북 위에 그려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더욱 사실처럼 그렸다. 천장에 박혀 고통을 호소하는 여러 얼굴 중에서 김동후의 얼굴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내 김동후의 얼굴은 윤곽이 흐려지며 서서히 천장 안으로 들어갔다.

호랑이와 함께 자란 진돗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같은 울타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종(種)이 다른 두 동물은 서로를 먹잇감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어린 진돗개가 삵처럼 생긴 어린 호랑이를 발로 툭툭 건드리고 때리며, 괴롭혔다. 호랑이는 맞으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돗개의 발길질에 길들었고, 그걸 거부할수록 거센 발길질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호랑이는 의식적으로 지배당하여 강아지의 하수인이 되었다.

동물의 주인은 두 동물의 몸집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자, 진돗개가 걱정된 나머지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축사로 가본 주인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덩치가 제법 큰 시베리아 호랑이가 여전히 진돗개의 발길질에, 으르렁거림에 주눅 들어 구석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걸 보았다.

김동후를 다시 떠올리며 모든 윤곽을 지워나갔다. 김동후를 만나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그토록 나를 괴롭혀 온 몽마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우고 또 지웠다. 차장의 성에를 제거하면 몇 분 있다가 또다시 성에가 끼는 것처럼, 반복하여 지워도 김동후의 윤곽 주변에는 다른 얼굴들이 저승꽃 피듯 피어올랐다.

하지만 김동후를 그리려 할 때마다 김미현의 얼굴이 그의 얼굴 위로 겹쳐지면서 서서히 대체되었다. 몽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만나지 못했다는 허탈감을 내게 안겨준 일에 힘입어, 나와의 심리적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자만감을 뽐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몽마와의 대면은 저 먼 산을 드리우고 있는 구름처럼 요원하게만 느껴졌고, 몽마를 소환하려고 마음먹을수록 김미현을 때리려 했던, 꿈속의 일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녀를 꿈에서 볼 때마다, 전신이 떨렸다. 몽중몽(夢中夢)처럼 의식 속에서 또 다른 의식을 마음에 불어넣으려 시도하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폭력적 계획이었다. 한철민과 이현진은 말없이 모든 주사위를 내게 내던진 채로 방관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꿈의 말미는 어김없이 정해졌다. 주먹이 그녀의 정수리에 아슬아슬하게 닿으려는 순간, 꿈은 와장창 깨지고 패배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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