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쌍미음 Feb 19. 2021

싸움의 시발점은 어디?

관계의 깊이에 따라 싸움의 시발점에 불이 붙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몇 년 전 어느 한여름의 출근길, 지하철 안.

두 명의 여자 -화자인 여자와 어떤 다른 여자- 사이에서 시비가 붙었다.



어느 역쯤에서부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흘러온 어떤 다른 여자는 지하철이 당산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길게 줄지은 사람들이 자신을 밀치면서 탑승하는 데에서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그 전 언젠가부터 이미 짜증이 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긴 줄의 꽁무니쯤인 화자인 여자에게 짜증을 퍼부었다.



무더운 여름날 -냉방시스템이라곤 전혀 갖추어져있지 않은 듯한 승강장에서 수분 동안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있었던- 화자인 여자는 문 앞을 고수하며 서있던 어떤 다른 여자의 짜증을 이해/인내할 여유가 없었다.

짜증에 - 대꾸를 하고 - 또 다른 시비에 - 대꾸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시비에 - 무시했다.



https://m.search.daum.net/search?nil_profile=btn&w=tot&DA=SBC&q=%EC%A7%80%ED%95%98%EC%B2%A0+2%ED%98%




지하철에서의 사소하고 짧디 짧았던 이제는 잊힌 다툼.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싸움은 과연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두 명의 사람 -A와 B- 사이에 일어날 법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A가 B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ㅡ B가 참지 않고 A에게 짜증/분노 표출을 했다면

ㅡ 그것을 A가 받아주지 못하고 또다시 시비/화를 표현했다면

ㅡ 그것을 B가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엔 큰 싸움으로 번졌다면,

이 싸움의 시발점은 어디였을까?



B의 입장에서 본다면, A가 잘못을 행한 순간일 것이고

A의 입장에서 본다면, B가 이해/참아주지 못하고 잘못을 따지고 드는 순간일 것이다.


물론, 그때가 아닌 다른 순간을 꼽을 수도 있다.

B의 입장에서, 자신의 말에 A가 사과하지 않고 또 다른 시비를 걸어오는 순간일 수도 있고

A의 입장에서, B가 수그러들지 않고 또다시 싸움을 걸어오는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얻어진 나의 결론은 이렇다.

싸움의 시발점을 꼭 한 순간으로 꼽자면,

그건 바로 어느 한 사람이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상대방에게 '탓'을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시발점은 상대방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아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잊힌 지하철 일화에 등장하는 화자인 여자와 어떤 다른 여자는 '옷깃만 스쳐 지나갈'관계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해주거나 인내해줄 필요를 전혀 못 느꼈을 것이다.

싸움의 시발점은 그 옷깃의 거리만큼이나 아주 가까이에 있었고, 그래서 바로 시비가 붙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둘 다 똑같다.'



반면 소중한 관계일수록 그 감정의 교류가 두텁고 깊을수록 싸움의 시발점은 점점 더 먼 곳에 위치하게 된다.

서로의 상황이나 감정을 한 번 더 두 번 더 생각하고 헤아려가며 말하기 때문에 사과와 이해는 빨라지고 싸움은 급하게 번지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실한 무신론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