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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Feb 02. 2021

독실한 무신론자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서로의 종교를. ;>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종교란에 이렇게 적곤 했다. '무교'



대학을 지원할 때는 후보군에 올려두었다가 기독교학교라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은 곳도 있다.

기독교학교는 채플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고 해서.

- 싫습니다, 싫어요. 강요하지 마세요.

종교 때문에 대학 선택권을 빼앗겼다.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는 이력서 기본 양식에 혈액형과 종교를 기입해야 하는 칸도 있었다.

결혼 여부는 물론, 가족관계를 적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학생기록부도 아니고, 내 부모형제(당시는 미혼이었으니) 인적사항을 이력서에 왜 밝혀야 한담?

입사를 하는데, 회사에서 일을 하겠다는데,  내 혈액형과 종교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현재 남편과 연애 중이던 때는 -당시 남친- 남친 가족들과 함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러 가본 적도 있다.

집안이 기독교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고, 당시 남친도 본인은 모태신앙이라고 이야기는 했으나 실제로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았다. '종교에 기독교라고 기입하며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

남친 부모님께서 송구영신예배에 나를 초대하셨고, 남친이 기독교라고 하니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가보는 교회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같이 다녀왔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후 약 20년 만에 처음 가본 교회에서 다시 깨달았다.

아, 난 어쩔 수 없는 무교쟁이구나.



당시 남친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을 하고자 했을 때는 당시 남친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교회 안 다니면 우리 **이 안 준다."

나는 당연히 "싫다"라고 대답했는데 그게 모두를 섭섭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종교 때문에 남친을 빼앗길 뻔했다.



결혼 준비과정에서도 예비 시어머니께서는 "주례는 목사님께서 하셔야 하고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열어야 하니 교회에 종종 와서 미리 인사를 드려야 한다."라고 하셨지만 이 때는 당시 예비신랑이 거절하였다.

"우리는 기독교지만, ㅁㅁ이네는 아니잖아요. 그건 안돼요."

종교 때문에 결혼식도 내 마음대로 못 할 뻔했다.



결혼 이후에도 시어머니께서는 내게 계속 이야기하셨다.

"토요일마다 집에 와서 놀다가 하룻밤 자고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자. 이제 결혼했으니 교회에 가야지."

종교 때문에 나의 매주 주말의 자유를 빼앗길 뻔했다.

- 다행히 이때 잘 풀어서 그 이후로는 나에게 교회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다.




종교는 나의 일부이다. 나의 정체성이다.

나의 혈액형이 AB형인 것처럼, 나의 성별이 여성인 것처럼, 바꿀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이다.

만에 하나 종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바꾸고자 하는 나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우리 아랫집에는 교회 전도사님께서 거주하셨다.

전도사님의 권유에 의해 오빠와 나는 몇 차례 교회에 따라가 본 적이 있지만,

영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교회에서 하는 공부가 하나도 납득되지 않았다.



역시 내가 어렸을 때, 엄마께서는 한동안 성당에 다니셨다.

세례를 받기 직전까지 가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방금 전화를 드려서 여쭤보았더니 당시에 자녀를 보이스카웃에 가입시키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다나?..

지금은 절에 가시면 절하시고, 성당에 들르게 되시면 잠시 묵상하시고, 굳이 따지자면 본인은 무교라고 하신다.



오빠와 나도 엄마를 따라 가끔 성당에 가기도 했었다.

나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지만, 오빠는 한동안 열심히 다녔고 세례도 받았다.

- 방금 확인해보니 당시 친구들이 모두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친구와 놀 겸 겸사겸사 다니다가 받게 되었다고.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평생 무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교회에도 성당에도 몇 차례 발을 들여보았지만 다닐수록 신앙심이 생기기는커녕,

'신은 없다'라는 생각과 내 마음의 중심만 더욱 단단해지고 묵직해질 뿐이었다.




종교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대학을 정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결혼 준비 및 결혼생활을 할 때도,

종교로 인해서 차별받거나 선택권을 잃게 되거나 거부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서로서로의 종교를 인정해주자.

나의 종교를 강요하지 말고, 너의 종교를 부정하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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