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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Jan 25. 2021

뜨개질이 준 선물

역행하려는 에너지

뜨개질을 시작하기에 앞서 꼭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다.


1. 언제든  다시 풀고 다시 뜰 수 있다는 다짐.

다시 시작할 때는 좀더 차분히 꼼꼼히 차곡차곡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쌓아간다.


2.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 바로 풀 수 있는 용기.

두고두고 보는 내내 마음 불편하지 않도록,

'그 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쌓아온 수많은 정성이 아까울지라도 과감하게 풀어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망했다. 딱 봐도 망했다.




처음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차곡차곡,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 없이 완성시키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잘못을 해봐야, 그래야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 했는지를 생각해보고 깨달을 수 있다.

뜨개질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코 두 코 엮어갈 때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만 있을 뿐, 정확히 어느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도안과 같은 문양이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해도 조금 더 해봐야, 그리고나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연구해보고 다시 떠보고,

그래도 틀렸으면 또 풀어내고 다시 살펴보고 연구하고 올바르게 읽는 방법을 터득해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번에 찾아온 기회에서는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처음 보는 기호와 기법도 쉽게 따라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내가 원하는대로 응용까지 할 수 있게 된다.




틀린 길인 줄 알면서도 어디가 잘못됐는지 짚어보기 위해서 조금 더 틀린 방향으로 가보는 것.

그리고 언제든 마음 먹은 순간에 역행하여 다시 풀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올바른 길로 가는 것.

그 과정 속에 필요한 수고로움과 에너지, 굳이 또 공들여야 하는 시간.

그 모든 것을 결정해내는 결심. 역행하려는 에너지.


이 모든 것이 인간관계, 인생사에도 적용된다.







모자의 증발. 저 아래 스파게티 같은 것이 모두 방금 풀어낸 실이다.



풀어낸 실은 다시 잘 감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면 엉켜버린 실로 인해 뜨개질 내내 분노가 치밀 수도 있다.





완성! 코바늘 여름 모자!


새 모자인데 실을 계속 풀었다 떴다 해서 벌써 한 해는 묵은 모자인 것 같지만, 그만큼 더 소중한 나만의 모자.





떴다 풀었다 다시 떴다를 반복하여 얻어낸 결과물들. 언제 보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되짚어 올라가서 얽힌 감정을 풀어내고 다시 차곡차곡 좋은 감정과 관계를 쌓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곁에 두고있는 모든 관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내 인생을 두고두고 돌아보는 내내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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