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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Nov 30. 2021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거창한 꿈도 포부도 없었다.

그냥저냥 평안한 삶을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더 많은 음식을 함께 먹고 싶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깔깔거리며 함께 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두 아이가 생겼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거창한 기대도 바람도 없었다.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필요한 것이 많아졌다.

쾌적한 집, 건강한 음식, 다양한 경험,

피할 수 없는 노동시간, 스트레스를 감추는 힘.


애를 쓰면 쓸수록 건강을 잃어갔다.

건강을 잃어갈수록 말을 잃어갔다.

말을 잃어간다고 사랑이 사라지겠는가.


단단히 버티고 서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본다.

두 손에는 한 가정이 무겁게도 들려있다.

어느새 다른 두 손이 슬며시 다가와 힘을 보탠다.


두 손을 맞잡고 시작한 두 명의 삶이

이제는 네 손으로 한 가정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다 맨 처음에 잡았던 두 손을 살며시 포개어본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시간.

그래도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


행복하고자 애를 써보았다.

행복한 가정을 선물하고자 애를 써보았다.

애를 쓰면 쓸수록 도리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그 속에 그래도 네가 있으니 괜찮다.

맞잡았던 손을 그저 포개어놓기만 하더라도 괜찮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저, 너와 내가 손을 잡고서 건강하게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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