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kim Oct 18. 2019

여기는 지구 반대편,
오늘은 한국의 날.

19년 07월 28일




유독 더운 날이었다. 하늘에는 구름들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을 잃을 듯한 시허연 하늘. 태양에서 쏟아지는 광선은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며 내 살을 꿰뚫었다. 원적외선 치킨이 이런 느낌으로 익어가겠지. 집 안에서 감상하기엔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지만 집 밖을 나가기 두려울 정도로 더운 날씨. UIS, 산탄데르공업대학교를 가면서 "한국의 날 사진만큼은 더럽게 이쁘게 찍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까라망가는 콜롬비아 내에서도 유독 한류 붐이 핫한 곳이다. 먼저 그 중심에는 부카라망가 KPOP 댄스팀이 있다. 실력도 아주 출중한 실력이지만 한두 명이 활동하는 게 아니다.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이 댄스팀은 정기적으로 공연도 하고 유튜브에 영상도 찍어 올린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인 이 아이들은 학교도 안 가고 춤 연습하면서 벌써 거진 연습생 수준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날 행사가 열리는 UIS대학교에는 한 코이카 단원 선생님께서 한국어 교육을 하고 계신다. 이 동네는 어찌나 한국어 공부에 열광적인지 처음에는 한국어 수업을 일반 학생 대상으로 먼저 진행되었지만 지역 주민의 건의가 폭발해서 지금은 지역 주민도 들을 수 있는 공개 수업도 개설하고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 다른 도시인 메데진에서는 한국어의 인기가 시들어가고 있어서 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배워두어도 어디 써먹을 수 없는 이 한국어를 왜 배우려는 건지 신기한 노릇이다. 그나마 배워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랑 "제 이름은..." 배우면 한 학기가 끝일 텐데 다들 이 수업을 들으려고 아우성이다. 그 열기는 우리 다마소 사파타, 우리 학교도 질 수 없다. 쉬는 시간, 내가 오피스 밖을 나가면 꼬맹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면 꼭 여자애들이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그때부터는 두유노 세례를 받는다. 두유노 BTS. 두유노 블랙핑크, 두유노 이민호. 연예가중계 못지않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아이돌들의 질문을 쏟아낸다. 나는 RM과 제이홉 좋아한다는 말들로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해준다. RM이 "이름이 Rap Monster가 뭐야" 하면서 웃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시위로 물든 검은 페인트 위 하트로 만든 태극기와 콜롬비아. 두 나라다 평화가 있기를




이렇게 한류가 뜨겁다 못해 지글지글 끓는 부까라망가에서 UIS대학교에서는 한국의 날 행사를 진행하셨다. 별 도움이 안 될게 뻔하지만 한국인이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도와드렸다. 한국 전통 놀이부터 한글, 연극, 춤, 노래까지 준비하신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아스팔트가 녹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더위 때문에 과연 사람들이 오긴 할까 싶었다. 다행히도 모두 기우였다. 사실 정확히는 그 반대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준비한 것들이 부족할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다. 각 부스마다 긴 줄이 이어졌고 공연장에는 사람이 너무 미어터져서 어린이날 에버랜드라도 온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체험 공간이 만들어졌고, 나랑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겼다. 아마 부까라망가 한국 사람을 검색하면 내 얼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KPOP랜덤 댄스를 했는데 유튜브에서나 보던 신기한 광경을 실제로 보았다. 정작 한국 사람인 내가 전혀 모르는 한국 노래인데 수십 명이 나와서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나 빼고 다른 구경하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누가 보면 콜롬비아 전통 노래라도 부르는 줄 알았을 테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경비실 피셜로는 약 4천 명의 사람이 왔다 갔다고 한다. 홍보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생소한 나라, 한국에 대한 행사인데 이 정도로 많이 오다니. 언제나 궁금하다. 왜 한국에 이렇게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 걸까. 한국인이라고 이런 큰 사랑을 받아도 될까. 아이 러브 케이팝, 아이 러브 BTS. 언제나 감사하고 황송하다. 이 고마움을 보답할 방법이라곤 전통놀이 공기놀이 부스에서 이때를 위해 초중학교 때 갈고닦은 공기 실력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마! 이게 한국 즌틍놀이 Gonggi라 카는 그다. 윽수 어렵제.




이제 콜롬비아 온 지 150일이 넘었다. 아직 말은 잘 못하지만 삶은 콜롬비아 사람이 다 되어가고 있다. 먼저 나는 길 건너기 고수가 되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내면에 봉인된 악마 "고스트 라이더"가 깨어난다. 도로 위의 무법자들의 목표는 오로지 빠른 속도뿐이라 과속 페달을 보통은 밟고 있다. 그래서 차사고 현장이나 앰뷸런스 소리는 어딘가 들려오는 새소리처럼 일상이 되었다. 이런 무간지옥 같은 이 곳에는 애석하게도 횡단보도가 거의 없다. 횡단보도 없이 길 건너기는 차와 나의 목숨을 건 눈치싸움이다.  멀리서 오는 차 한번 흘겨보고 지나가도 될지 안 될지 그 찰나의 순간 동안 계산해야 한다. 처음에는 길 건너는데 세월아 네월아 걸렸다. 옆에는 현지인들이 목숨이 서너 개인 듯 차 사이를 건너간다. 반면 나는 잔뜩 쫄아서 끝나지 않을 자동차 행렬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길가에서 어쩔 수 없이 1박을 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길 건너기는 우습다. 콜롬비아의 교통 흐름이 이제 몸에 익었다. 차와의 목숨을 건 눈치싸움에서 쉽게 주도권을 주지 않는다. 이제 목숨이 서너 개인 듯 걷는다. 




또 다른 면으로는 콜롬비아의 물가에도 완전히 적응했다. 처음 콜롬비아 보고타로 와서 현지 교육을 받던 때는 밥 먹는 게 행복했었다. 한국돈 만원이면 웬만한 고급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다. 과일과 고기는 한국의 반의반의 값. 고대 로마시대의 귀족이 된 듯 매일 밤 스테이크와 과일 파티였다. 비싼 카페에서 커피 마셔도 한국돈으로 2000 원도 안 한다. 세상 행복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활과는 이별했다. 지금은 한국돈 2500 원하는 점심과 200 원하는 커피와 친해졌다. 싼 곳만 찾다 보니 마트보단 시장에 다닌다. 현지 물가에 눈이 익어서 외국인한테 사기 치는 것도 이제 곧잘 알아차린다. 사는 것도 외국인이 아닌 콜롬비아 사람스러워졌다. 콜롬비아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꽤나 가난하게 사는 척 적어보았지만 사실 나는 콜롬비아 내에서는 중산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콜롬비아의 가난한 사람들은 7천 페소(2500원) 한 끼 사 먹는 걸 부담으로 느낀다. 왜냐하면 최저임금은 1시간에 5천 페소(1800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 못 받으며 일하는 사람도 많고, 그마저 못 받는 일자리마저도 부러워하는 실업자들도 많다. 학교 앞 길거리에는 1천 페소 하는 엠빠나다를 파는 노상 가게가 수어대 있고 유모차를 개조해서 과자, 담배, 사탕 거리를 들고 파는 아주머니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유통인구가 많은 사거리에는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서 300-400 페소(한국돈 100원)에 파는 아이 엄마도 여러 명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이는 붉은 전기 가로등 아래에서 수십 번은 더 읽은듯한 낡은 동화책을 읽고 있다. 15000 페소(5000원) 하는 영화관 앞에서는 불법으로 복사한 영화 CD를 3000 페소에 파는 아저씨가 있고 쇼핑몰 길가에는 노란 택시가 끝이 보이지 않게 서있다. 길가를 걸으면 오토바이 택시가 빵빵거리며 호객한다. 다른 도시로 이어지는 큰 길가에는 걸어 움직이는 입간판처럼 음료수 브랜드로 온통 범벅이 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2000 페소짜리 음료수를 판다.


한 학생이 내게 준 수박 맛 사탕. 선물이 아니었으면 먹지도 않았을 테고 선물이 아니었으면 뱉었을 맛이었다.




코이카 국내 교육 시절에 국제협력의 목표는 '빈곤의 해결'이라고 배웠다. 최소한의 사람의 권리를 가지고 살게 하는 것. 유엔 빈곤 지수에 따르면 교육, 의료 등의 권리를 못 누리는 사람들이 지구 상의 25%, 약 13억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콜롬비아의 지니계수는 0.5,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이다. 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콜롬비아에 왔지만 현실은 참 어렵다. 구할 수 없는 일자리, 낮은 교육 수준, 돈을 벌 방법이 없어서 도리여 자포자기한 사람들, 극심한 빈부격차, 공공연한 도둑질. 너무 거대한 사회 문제 앞에서 내가 하고 있는 기계교육은 보잘것없는 모래알 같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쳇바퀴 굴리는 햄스터는 분명히 따분할꺼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