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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Oct 11. 2019

쳇바퀴 굴리는 햄스터는
분명히 따분할꺼야.

19년 07월 24일




하루가 짧다. 눈뜨고 밥 먹고 수업하고 수업 듣고 웹툰 서너 개, 유튜브 서너 개 보면 하늘은 새까맣게 창 밖 도로는 오렌지색 가로등으로 물든다. 가만히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오늘 하루 뭐했나 돌아보지만 그다지 한 게 없다. 점심에 뭐 먹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하루하루 꾸역꾸역 지나가는 느낌. 매일매일이 무기력하고 짜증 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 느낌. 낯설지 않다. 딱 직감했다. 이제 여기서도 새로운 쳇바퀴가 만들어졌구나.


콜롬비아 독립기념일은 맞아 친구와 함께 간 Panachi라고 하는 공원. 춤추는건 안보이고 저 알바생들의 썸 타는 모습만 보였다.




습관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3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3주 이상 꾸준히 하면 해야지라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행동한다고 한다. 습관은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반면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3주면 익숙해진다. 다 뻔해진다. 감흥이 없어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쳇바퀴가 만들어지는 것도 딱 3주면 된다는 것이다. 먼저 일상이 자리 잡히면 시간이 참 빨라진다. 사람의 뇌는 비슷비슷한 기억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3박 4일 동안의 여행은 어디를 갔었는지 속속히 기억나지만 일상 속 일주일은 내내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압축해서 짧게 하루처럼 기억해 버린다. 이렇게 압축해서 기억해 버리니 일상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이 없다. 그냥 눈뜨고 밥 먹고 학교 가고 그랬어라는 말로 일주일이 압축된다. 그래서 일상이지 않았을 적 하루, 첫 이삼주의 하루는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매일 특별하던 하루는 반복되면서 서서히 그저 그런 날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하루가 빠르면 마음도 따라서 조급해진다는 것이다. 한 거 하나 없이 2019년의 절반이 흘렀다는 조급한 마음이 든다. 붙잡으려 해도 하루는 또 어딘가 쉽게 흘러가 버리니 답답할 노릇이다. 올해 하고자 했던 계획들이 벽에 붙어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은지 2주가 흘렀다.




일상은 감사를 쫓아버리고 당연함을 불러온다. 그래서 처음 먹었을 때의 음식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사라지며 짜다는 불평이 생긴다. 신기한 가게, 이쁜 가게들이 즐비한 길이 그저 그런 아침 등굣길로 바뀐다. 다 따분해지고 안 좋은 것들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대신 당연함은 권태로움과 무례함이라는 건방진 녀석들을 데리고 온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부당거래의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호의가 일상이 되고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마운 줄 모르고 무례해지고 더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어이가 없네"라는 말을 들어서야 정신을 차린다. 일상이라는 쳇바퀴의 또 다른 문제는 감사를 잊으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거다. 주변 사람이 부러워진다. 나의 것은 초라해 보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도 딱 저만큼만 더 가지면 행복해질 것 같다. 직접 듣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블랙넛의 빈지노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지노의 찬양을 넘어서 혐오스러울 정도로 빈지노가 되고자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빈지노만 된다면 다 이룰 듯 말한다. 참 안타깝다. 왜냐하면 먼저, 블랙넛도 충분히 재능 많은 래퍼라는 거다. 찐따의 아이콘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래퍼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다들 블랙넛의 실력만큼은 인정한다. 쇼미 더 머니 4에서 송민호와 함께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가. 블랙넛은 이미 수많은 선망을 얻고 있는 우상이다. 다만 그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해야 할 위치에 행복하지 못한다.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빈지노라고 해서 어떻게 마냥 행복하겠는가이다. 빈지노도 그 만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빈지노도 군대를 갔다 와야 하듯이 말이다. 군대를 갔다 온 뒤 첫 인터뷰에서 빈지노는 전역 이후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군대에 말뚝 박을까 생각도 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빈지노의 1집 수록곡인 Break에서는 자신의 꿈, 되고 싶은 미래,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고 싶다고 한다. 재벌이 돼버리고 싶다고도 한다. Break 뮤비에서는 거대한 벽을 부수려고 이마를 벽에 비트에 맞춰 콩콩 박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벽이 깨질 리 있나. 먼저 머리가 깨져버릴 거다. 빈지노도 다 이루지 못하고 다 갖지 못한다. 벽에 끊임없이 부딪치지만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깨기다. 빈지노가 된다면 잠시 "여대 앞을 지날 때 빈지노의 기분"을 느껴보겠지만 그 이후는 또 빈지노의 일상에 갇혀버릴 거다. 깨버리고 싶은 벽이 다시 생길 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다들 우러러보는 재벌이 된다면 행복하고 다 좋을까? 재벌이 된다면 뭐 잠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겠지. 여행도 원 없이 다녀보고 소고기도 사 묵겠지. 요플레 뚜껑도 안 핥고 버리고 소보루빵도 위에 쿠키만 긁어먹고 버릴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재벌도 재벌들의 쳇바퀴에 갇힌다. 감사를 잃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무료해지고 권태로워질 거다. 안 봐도 비디오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재벌이 된다면 더 이상 새로울 자극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 3세들의 마약문제가 심심찮게 뉴스에 들려오는 걸 보면 마지막으로 찾는 권태의 탈출구는 마약 같은 비 정상적인 자극들 뿐일 것이다.




콜롬비아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모든 일이 따분해져 버렸다. 어떻게 하면 쳇바퀴에서 빠져나와서 다시 처음의 감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권태를 이기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무기는 감사 아닐까 생각한다. 매일의 감동이 당연함으로 퇴색되지 않도록,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에도 감사하는 것이다. 이 쳇바퀴 넘어서기 위해 오늘도 이 주문은 날마다 외운다. 그라시아스Gracias. 그라시아스 아 디오스Gracias a Dios.


이 녀석의 이름은 디에고, 같이 온 친구의 이름이다. 디에고 닮았다고 디에고라 부르며 놀렸는데 그에 지지 않은 디에고는 옆에 있는 거위를 산티아고라고 불렀다. 그리고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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