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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Oct 28. 2019

평범한 공대생이던 나,
지금은 콜롬비아 기계 선생님?

19년 08월 15일




다 들켰다. 한국인이라는 약효도 다 떨어졌다. 이제 수업시간은 개판 오 분 전. 통제불능 상태다. 내가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어도 뒤돌아서서 떠드는 학생들도 있고 어떤 학생들은 이미 수업 시작부터 엎드려 자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온 호구라는 사실이 다 들켜버렸다. 하긴 4주라는 시간 동안 그 정도 파악하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체벌할 마음은 없고 여전히 들어주는 착한 친구들이 있으니까 애써 무시하며 수업한다. 아마도 학교 다니던 시절 나는 자도 되는 수업을 골라가며 잠자던 형편없던 학생이었기에 지금 이런 똑같은 대우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 인과응보다. 


내가 가리키는 과목. 우리 학교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나의 기계 첫 수업은 대 실망 쇼 그 이상이었다. 스페인어 5달 배웠다고 전문용어 가득한 기계를 완벽히 가르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기가 시작하자 교장선생님과 기계과 선생님이 수업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매일 점심을 얻어먹은 탓에 거절할 수도 없었고 나는 또 선생님으로 여기 온 게 아닌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평생 수업이란 것을 해보기는 커녕 논리적인 말도 잘 못하는 한국에 흔한 공대생이 아니던가. 일단 믿을 사람은 동료 기계 선생님들과 유튜브뿐이었다. 수업의 2할은 유튜브로 5할은 실습으로 나머지는 동료 기계 선생님의 도움으로 가득 찬 누가 선생님일지 모를 신개념 하이브리드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생들의 첫 수업 반응은 예상했듯 뜨거웠다. 어디 굴러들어 온 이상한 동양인이 들어보지도 못한 요상한 기계에 대해 수업을 한다니. 한국에서 어느 콜롬비아인이 우리 학교 교실로 와서 화분 가꾸기에 대한 수업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때만 해도 어린양처럼 착하기만 해 보였던 이 녀석들은 이제야 양의 탈을 벗고 본색을 드러냈다. 수업 안 듣고 핸드폰 만지기는 예사다. 여자 친구랑 꽁냥 거리기.(꽁냥 거리 기라고 표현은 극히 순화된 표현이다.) 엎드려서 침 흘리며 잠자기. 뒷사람과 떠들고 놀기. 게다가 오늘은 성교육으로 학생들한테 콘돔이 나누어졌는데 어떤 망할 녀석이 콘돔을 꺼내 풍선을 만들어 노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제발 이것이 나의 주작이길 바란다.) 보고도 못 본척하는 스킬만 늘어서 수업은 그래도 꾸역꾸역 하고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학생들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누구보다도 열심인 나랑 동명이인 산티아고는 이제 쉽고 시시해서 재미없어하는 반면 어떤 학생들은 이게 수업이 뭘 하고 있는 건지도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다. 어느 선에 맞추어서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 낙오된 학생들을 두고 가차 없이 떠나야 할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다 끌고 갈 것인가. 게다가 쉬는 날도 많아서 진도 맞추기도 빠듯한데 말이다. 선생님 교육과정을 밟고 온 것도 아닌 나, 선생님 탈을 쓴 흔한 공대생이라 잘 모르겠다. 이런 기본도 안된 선생님이기에 학생들한테 미안해진다.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줘서 고마워.




학생들의 막 나가는 행동들이 점점 심해지다 결국 오늘 사단이 나버렸다. 학교 대청소 날이었던 오늘. 다들 청소하는데 혼자 뺀질거리던 한 학생이 기계과 동료 선생님의 열심히 좀 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들고 있던 병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 소리는 꼭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 같았고 UFC보다 흥미진진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coordinador라고 하는 부장 선생님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어갔다. 한국에서의 교권과 여기서의 교권은 사뭇 다르다. 한국은 철저히 선생이 위고 학생이 아래인 분위기라면 여기는 평등한 느낌이다. 부장 선생님 앞에서 둘 다 경고를 받고 진술서를 썼다. 그리고 링에서 주먹을 주고받듯이 하나하나 서로 이야기를 주장하며 말싸움을 풀어갔다. 그렇게 격하게 말을 주고받더니 서로 오해가 풀렸는지 링에서의 싸움이 끝나듯 악수하고 안아주고 끝이 났다. 서로 안아주고 미안하다며 끝내는데 괜히 묘한 감동을 이뤘다. 한바탕 하고 돌아오는 길. 선생님들은 요즘 애들은 미쳤다고 계속 푸념이다.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신다. 꼭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콜롬비아 학교는 크게 두 종류이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공립학교는 나라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사립학교는 매달 교육비를 내야 입학할 수 있다. 사립학교도 낮은 가격인 곳부터 부자들만 다닐 수 있는 외국인 학교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공립학교는 수업의 질이 사립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질뿐더러 수업시간이 하루 6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학생수에 비해서 교사 수도 턱없이 부족해서 시간표를 보면 하루 1-2시간은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내 콜롬비아 친구가 선생님으로 있는 사립학교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업도 하루 8-10시간 진행되며 심지어 프랑스어 수업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교육부터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졸업하고 난 이후의 진로도 학교에서부터 사실상 결정된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이들은 이후 유학길에 오르거나 좋은 대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한다. 반면 우리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중 공부를 잘하는 몇몇은 등록비가 싼 좋은 국립대에 들어가고 나머지 대부분은 직업 훈련소와 전문대학으로 빠진다.


사용 가능한 기계가 반의 반도 안 되는 우리 학교 실습실




부와 지식은 대물림되고 가난과 빈곤도 대물림된다.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경제학자 피케티는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과 글로벌 부자세를 꼽았다. 하지만 요즘의 교육은 그 부를 효과적으로 전수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었다. 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워서 미국으로 유학 가는 아이들을 하루 6시간도 채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따라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공부는커녕 집안 사정으로 방과 후에 불법으로 일하는 친구들도 많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이미 세계는 점점 중세시대의 계급사회처럼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시장은 언제나 옳다며 가만히 두어야 한다는 말은 꼭 귀족의 특권은 하늘에서 내렸다고 하는 옛날 그 시대의 말을 닮은 듯하다.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부와 가난, 특권과 멸시가 아닌 오직 DNA만을 물려주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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