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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Nov 15. 2019

내일의 콜롬비아는 모두가 평화롭길.

19년 09월 12일




북적북적. 학교가 평소와 다르게 북적인다. '오늘로써 내가 일주일 연속 지각한 것을 학생들이 눈치챈 것인가? 그래서 나의 지각을 다 같이 혼내주기 위해서 이렇게 모인 것일까?' 또 늦잠 잔 탓에 일말의 양심이 작동했는지 어처구니도 없는 상상을 했다. 다행히 다들 나한테 인사 정도만 하고 큰 관심이 없었다. 커피 얻어먹으려 들어간 기계 실습장. 원래 이 시간 쯔음이면 학생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인데 모기들만 날아다닌다. 교무실에 가보니 지난주 시험으로 학생들 성적 매기느라 선생님들은 정신이 없으시다. 괜히 귀찮게 하며 오늘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Semana por la paz. 직역하자면 평화를 위한 주? 평화의 주?라고 말할 수 있겠다. 평화의 주 행사? 그게 도대체 뭐지? 중간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평화로우니 그런 걸까? 일단은 졸리니 커피 한잔부터 해야겠다.


학생 없는 실습장은 공허하다. 꼭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사라진 듯이




선생님들은 시험지를 매기고 나는 그 틈에 껴서 내가 내준 숙제들을 매겼다.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해오는 듯싶었는데 이제 죄다 베껴서 내고 있다. 숙제 낸 사람은 30명이지만 30개 전부 복사한 듯 다 똑같다. 그래도 혹시 다른 게 있을까 기대하며 매기는데 헛기대였다. "Copia복사! Copia! Copia!" 하며 내가 성질을 부리니 옆 선생님들이 다들 웃는다. 그러고서는 평화의 주 행사 구경이나 하자며 꼬드긴다. 내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지만 행사들을 보면 괜찮을까 싶어 숙제 매기던 펜을 내려놓고 따라갔다. 평화의 주이지만 한국으로 따지자면 학예제쯤 되는 행사였다. 콜롬비아 각 주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부스, 콜롬비아 역사를 소개하는 부스, 자신의 과에 대해 소개하는 부스 등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당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노래, 춤, 연극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나 콜롬비아 전통 음악을 크게 틀고 풍기 문란한 춤을 춰대기도 했다. 나는 이것들이 평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재미있었고 신났으니 그걸로 되었다. 게다가 내 수업들도 이 행사로 대체되어서 취소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학생들 과제로 심술이 났던 마음에 빨간약이 되었다.


우리 학교 Semana por la paz의 풍경. 다음에는 꼭 렌즈를 닦고 사진 찍겠습니다.




평화, 행복, 안전과 같은 개념들은 누리고 있을 땐 소중함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나라다. 하지만 한국에 있으면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 못한다. 하지만 해외를 나가보면 한국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안전한 지를, 그리고 그 안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금방 깨닫는다. 그래서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할 때 그 의미들이 비로소 크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의 평화에 대한 이런 큰 행사도 콜롬비아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갈급함에서 온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먼저, 콜롬비아 땅에서 평화를 해치는 가장 큰 원인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라고 하는 반군을 들 수이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은 20세기 중반에 가난한 서민들과 농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공산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토지법 개혁을 위해서 일어났던 사람들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변질되었다. 그리고 지금,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은 남미에서 가장 큰 반정부 무장단체가 되었다. 큰 규모의 반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약 농장을 보호해주거나 한때는 부자나 외국인, 유명인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이 활동하고 있다는 곳은 한국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콜롬비아 정부군 간의 오랜 내전으로 총 6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심지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2016년에 평화협정을 함으로써 지금은 서서히 그 문제가 해결되어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작년 말에 이반 두케Iván Duque가 콜롬비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반 두케는 굉장히 위험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어서 화제가 되었었다. 바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의 평화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이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반군들의 소식이 뉴스에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올해 초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는 반군으로 의심되는 경찰학교 폭탄 테러까지 있었다. 내가 있는 지역은 반군, 게릴라가 없는 지역이기에 문제가 없지만 다시 콜롬비아가 내전의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다음으로 콜롬비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마약, 그리고 마약 카르텔이다. 지금은 멕시코에 밀리지만 한때는 마약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가 콜롬비아였다. 한때 세계 마약왕이란 칭호가 붙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라는 사람도 콜롬비아 사람이었다. 나르코스라는 드라마로도 유명한 이 사람의 이야기는 20세기 후반 메데진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메데진의 빈민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폭력배는 마약 유통에 손을 데기 시작하면서 점차 세계적인 범죄 집단이 되었다. 그중 그 조직폭력배들을 통합시킨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콜롬비아 정계를 매수하거나 암살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지키고 키워나갔다. 그래서 사실상 콜롬비아 법 위에 군림했고 정부도 쉽사리 건드릴수 없었다고 한다. 재밌는 이야기는 그때 번 돈의 일부를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메데진의 공공시설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메데진 시장이기까지 했고 메데진 축구팀의 단장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착한 척하는 악인이었다. 마약 카르텔과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의해서 마약에 쓴소리를 하던 정치인과 경찰들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은 많이 죽었다. 마지막으로는 그는 미국 FBI에 의해 사살을 당하는 최후를 맞이했지만 현재도 메데진 몇몇 사람들은 그를 성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아무튼 그 이후로도 콜롬비아는 마약이 너무 만연해있다. 길거리에는 마약에 취해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고 클럽이나 어떤 장소는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그리고 마약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마약 카르텔은 자신의 힘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경찰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뉴스에 나온다. 특히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라 마약으로 번 돈이 정계에 흘러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파블로 에스코바르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콜롬비아 자체를 지배하는 날이 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다. 다들 아시다시피 베네수엘라의 경제상황은 좋지 못하다. 올해 추정 물가상승률이 800만%라고 한다. 올해 초 1000 원하던 빵이 올해 말에는 8000만 원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인구의 80%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때까지 벌써 400만 명이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고 그중 130만 명이 콜롬비아로 넘어왔다고 한다. 참고로 수원 시민이 120만이다. 한 도시의 인구가 피난을 왔으니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구걸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일 보는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생존, 안전에 위협을 당하고 있으니 강도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도 종종 접한다. 그리고 기존의 빈곤층이 하던 일들, 예를 들어 식당 서빙, 요리, 우버 운전, 배달, 집 청소 등의 일들에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많이 뛰어들었고 따라서 콜롬비아 극빈층은 일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고 벌이도 낮아졌다. 그래서 일자리를 두고서 갈등, 다툼이 있고 점차 이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그래서 초기에는 콜롬비아 사람들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딱하게 여겨서 많이 우호적이지만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국경의 폐쇄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 중 제일 큰 문제이지만 국제사회에서 돕는 것이 제한적이다. 미국의 미움을 받는 것도 한 이유일 테고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제3 국의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밌는 점은 한국에서는 나의 안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해주는데 반대로 여기서는 한국의 안전, 평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어느 날 동료 기계 선생님들과 여느 때처럼 아침을 같이 먹었다. 그때 선생님이 내게 "북한에서 미사일 시험을 한다는데 괜찮냐?"라고 물었다. 전쟁이라도 곧 날듯 걱정하며 '그러면 너는 어쩌냐? 콜롬비아에서 쭉 살아라'하는 눈빛이었다. 우리는 허 구언 날 쏴대는 미사일이라 별생각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위험한 나라도 없다.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아직 휴전 중인 국가. 게다가 그 이웃이 세계에서 제일 미친 나라이다. 여기도 똑같다. "게릴라가 일어나서 사상사고가 났다, 마약 카르텔의 전쟁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절도 사고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물어보면 그게 뭐 어째서라는 반응이다. 그냥 같은 나라이기만 딴 나라 이야기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하루빨리 평화로워 지길. 다음에는 꼭 렌즈를 닦고 사진 찍겠습니다.(2)




글 쓰던 오후. 햇볕이 너무 따사롭길래 아이패드 들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이미 나 같은 생각한 할머니 두 분이 옥상에서 수다 떠시는 중이었다. 그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서 책을 읽었다. 산과 바람과 구름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기 밑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찰차가 사이렌을 켜고 지나간다. 산 중턱에는 빈민가도 보인다. 베네수엘라에서 오늘 큰 길목에는 큰 배낭을 지고 내려오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한 무리가 보인다. 이따금 마른하늘에 번개도 친다. 나는 옥상에서 평화롭지만 또 누군가는 평화롭지 않을 하루다. 바라건대 언젠가 모두가 기본적으로 안전한 세상에서 "오늘도 평화롭다" 말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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