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09월 20일
오늘도 내 앞에는 구운 닭고기 살 하나가 엎어져있다. 매일 점심을 교장선생님과 교무처장쯤 되는 도밍고 씨, 학교 남바원 남바투와 먹는다. 점심을 매번 그 두 명과 먹는다고 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제 이 불편한 식사자리를 네 달째 이어가고 있으니 별 생각이 없다. 처음에는 한국식 예의에 따라서 음료수 양손으로 따르고 식기류 세팅을 했지만 이제는 그냥 음료수만 따르고 저 너머 티브이를 본다. 내가 티브이 보는 동안, 이 쉬는 시간에도 교장선생님 호아킨 씨와 사무처장 도밍고 씨는 학교 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주 가끔은 내가 알아들어서 끼는 날이 있지만. 여태 네 달 동안에 두세 번 정도 있었던 아주 드문 일이었다. 매일 점심을 먹는 이 식당은 네 달째 같은 메뉴이다. 사실 정말 특별한 식당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 콜롬비아는 어딜 가나 대부분 비슷한 음식을 판다. 콜롬비아식 정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당연해져 버린 생과일주스로 콜롬비아 정식은 시작된다. 그다음으로는 뜨뜻하고 짭짤한 게 콧물 맛과 묘하게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잘 안 먹게 되는 수프가 나온다. 수프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메인 음식이 나오는데 메인 음식은 거의 셋 중 하나다. 닭가슴살 스테이크, 돼지고기 스테이크, 소고기 스테이크. 이제는 보기만 해도 무슨 맛인지 입으로 4D처럼 느껴지는 지경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어느 식당을 가나 이것만 판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밥, 찌개, 고기, 돈가스, 규동, 우동, 라면, 닭갈비... 이것저것 정말 다양하게 먹었는데 여기는 어딜 가나 닭 구운 거, 돼지 구운 거, 소 구운 거 그리고 끝이다.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세계적으로 맛없는 음식 하면 다들 영국 음식을 떠올리지만, 콜롬비아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놀랍도록 맛없고 색깔 없는 요리들. 하지만 남미 구석에 있는 나라기 때문에 아직 그 위력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아마 세계 맛없는 음식 월드컵이 열린다면 콜롬비아는 대회 전부터 다크호스로 꼽힐 것이다. 그리고 연전연승을 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결승전으로 영국을 만날 것이고 엄청난 접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콜롬비아 음식이 세계에서 제일 맛없다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다. 그리고 이 월드컵은 영국과 콜롬비아 둘이서 양분하는 월드컵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콜롬비아 전통음식이 뭐야?'라고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당연히 '아레빠Arepa'라고 할 것이다. 이 것을 한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전통음식이 뭐냐 물었을 때 흰쌀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레빠는 옥수수가루를 뭉쳐서 만든 넙적한 빵인데 별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고 오로지 옥수수가루를 뭉쳐서 구운 것이기 때문에 옥수수의 향 살짝 빼고는 별 맛도 특별한 향도 없다. 말 그대로 무미이다. 식사시간에 꼭 나오는 이 무미 무취의 옥수수빵은 콜롬비아 사람들도 안 먹고 남긴다. 그러면서 왜 나보고 아레빠 먹어봤냐고 그렇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아레빠가 맛있다고 추천하는 것부터 콜롬비아 사람들이 얼마나 맛없는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레빠는 어느 지역을 가나 그 지역마다의 아레빠스타일이 있다. 한국 어딜 가나 지역 특색을 가진 김치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먹어봤지만 그 차이점을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다 옥수수 맛의 딱딱한 빵이다. 다 맛이 없다. 생선 없이 간장 없이 초밥의 밥만 먹는 느낌이다. 그나마 맛있게 먹었던 아레빠는 '아레빠 초클로Arepa Choclo'라고 하는 시골에서 파는 아레빠였다. (알고보니 이것도 베네수엘라에서 즐겨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역시 그렇지.) 이 아레빠는 빈대떡같은 아레빠 사이에 콘샐러드와 콘 시럽, 치즈 등을 넣은 음식이었는데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 맛이 없다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될 음식이었다. 세계 어느 지역, 어느 시대 사람이든 먹으면, 가령 소크라테스가 와서 먹어도 JMT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아레빠들은 내가 콜롬비아 사람이었다면 이런 음식의 존재 자체를 국가의 치부로 여기고 철저히 숨겼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주로 먹는 음식에는 엠빠나다Empanada가 있다. 스페인 전통음식으로 꼭 군만두처럼 생긴 음식인데 여기서는 엠빠나다를 꼭 한국에서 김밥 먹듯 간단히 한 끼 때울 때 먹는다. 문제는 아르헨티나나 다른 곳에서 먹었을 때는 먹을만한 군만두 하위 호환의 음식이었다면 콜롬비아에서는 믿고 걸러야 할 넘버원 음식이라는 것이다. 정말 매우 드물게 가뭄에 콩 나듯 먹을만한 엠빠나다를 파는 가게가 있지만 대게는 커다란 옥수수반죽에 뭔지 알지 못할 무언가가 씹히는 음식이다. 게다가 기름으로 튀겨낸 음식이라 한입 물때마다 기름이 쭉 나온다. 생각만 해도 속이 니글니글하다. 그럴 날은 없겠지만 '한국 군만두의 소중함을 느껴야 할 날'이 올 때 먹으면 아주 제격이다. 아마 올드보이 최민수한테 군만두 대신 엠빠나다를 먹였다면 탈출하고 첫 식사로 군만두를 먹었을 그런 맛이다. 이렇게 음식 맛 자체도 별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요리의 종류이다. 어딜 가나 웬만한 식당은 닭, 돼지, 소 구운 걸 주는 콜롬비아 정식만 판다. 아니면 다른 나라 음식들인데 그것도 대부분 햄버거, 피자, 스테이크 등 서양 음식들이다.(게다가 끔찍한 '콜롬비아 커스터마이징'이 되어있다.) 지금까지 먹은 콜롬비아 음식을 적어보라고 하면 10개도 채 못 적겠다. 하지만 여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식물의 축복을 받은 곳 아니던가. 부식가게에는 싱싱하고 다양한 재료들이 싼값에 널려있다. 한국 요리사들이 여기 온다면 기쁨의 탭댄스를 출 거다. 그런데 콜롬비아 사람들이 만드는 건 굽거나 찌거나 튀기거나 콧물 맛 수프를 만드는 게 다다. 이건 재료에 대한 모욕이다. 재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참 안된 곳이다. 단군할아버지는 이상한 땅에 잘못 정착했다.(이 정도면 불시착이다.) 먼저 석유는 거의 안나다 시피하는 자원빈국에다 주변 이웃들은 나사가 빠지거나 나사가 두어 개 더 달린 것 같은 나라들만 있다. 게다가 겨울은 얼마나 춥고 여름은 얼마나 더운지, 추워서 농사가 안되고 더워서도 농사가 안된다. 어느 나라는 삼모작도 한다는데 한국은 일 년에 한 번 키우고 그 마저도 태풍 한번 불거나 가뭄이 오면 그 해 농사는 쫄딱 망한다. 이런 곳인데 사람은 또 무진장 많이 산다.(한국은 OECD 국가 인구 밀도 1등, 도시국가 제외 세계 인구 밀도 3등의 나라이다.) 그러니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만 먹는 것이 꽤 많다. 도토리, 두릅, 미더덕 같은 것이 그렇다. 미더덕은 지금이야 맛있게 먹지만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것으로 도저히 볼 수 없는 모양에 먹어도 '이런걸 굳이 왜 먹지?'하는 맛이었다. 그래서 나는 된장찌개에서 미더덕을 피해 두부만 쏙쏙 골라먹는 후레자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름이 웬만한 열대지방 뺨치게 더운 곳이니 염장 음식들도 발달했다. 신기한 식재료에 이어 각종 젓갈들, 장, 김치류 덕분에 한국의 밥상은 더 풍성해졌다. 세계 요리들이 한국에 상륙하면 맛이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다양한 요리법들이 첨가되고 다양한 재료들이 첨가된다. 그래서 세계 어디서 피자를 먹어도 한국 피자 만한 곳이 없고 이미 치킨은 한국의 대표 전통음식이 되었다. (누가 KFC를 Korean fried chickien이라고 하더라.) 이렇게 한국이 다양한 맛을 가지게 된 건 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 부리 친 결과라 생각한다. 보릿고개의 혹독한 추위 덕분이었다 생각한다. 모든 것은 다 전화위복, 전복위화가 된다. 좋다가도 나빠지는 거고 나쁘다가도 좋아진다. 옆 나라 베네수엘라도 그렇다. 베네수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석유 매장량이 세계 1등으로 꼽히는 나라다. 하지만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다 보니 석유값에 큰 영향을 받는 나라가 되었고 지금은 자빠져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좋다가도 나쁜 거고 나쁘다가도 좋은 거다. 지금 떡볶이가 먹고 싶지만 못 먹어서 세상 슬픈 나의 불행 또한 언젠가 다 좋아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