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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Nov 22. 2019

보고타와 비행기를 무조건적으로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19년 09월 28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있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 비 오는 날 젖은 신발과 양말, 겨울에 하는 냉수 샤워, 설탕을 넣은 아메리카노, 미국 입국 심사관, 치과 치료, 유튜브 15초짜리 광고, 야스오 등등. 다 말하자면 세네 시간을 써도 부족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절대 무조건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민트 초코, 초콜릿의 함량을 ppm으로 표기해야 할 만큼 초코가 없는 초코칩, 수원역 지하상가, 생 굴, 길거리에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콜롬비아 사람들이 만든 대부분의 음식 등등이 이 리스트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이 리스트에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었다. 바로 '보고타'와 '비행기'이다. 나는 이제 보고타는 물론 그 관련된 모든 것을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미움의 시작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있었던 하반기 안전 집합교육에서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비행기는 어퍼컷을 몇 대 얻어맞은 듯 비틀비틀 흔들거리며 날아갔다. 이미 이 불안한 출발에서부터 모든 불행은 예견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별일 없이 잘 가줄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부까라망가와 보고타 사이의 항로는 부산 택시기사 경력 15년에 빛나는 우리 아버지의 개차반 운전실력만큼이나 불안한 항로이다. (내가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리스트에는 우리 아버지의 운전도 들어있다.) 왜냐하면 두 도시 모두 제멋대로 솟아있는 안데스 산맥 중턱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이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기압은 요동치고 따라서 비행기도 요동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행시간이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10시간은 넘게 탄 것 같은 이 비행기는 보고타 엘도라도 공항에 철퍼덕 패대기를 치며 착륙했다. 비행기를 나오자마자 "아.. 부까라망가 가고 싶다."는 말이 입에 붙어 버렸다. 이미 비행기 연착으로 예정보다 늦은 도착 시간. 마음은 급하고 점심도 못 먹어서 배는 너무 고팠다. 빨리 택시를 잡아타서 호텔로 이동하려 했건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제 공항 택시 기사들이 사기 치려고 수작을 부렸다. 어떻게 남미 공항 택시 기사들은 하나같이 다 이렇게 글러먹은 것인지. 게다가 "공항 택시 사기 무작정 따라 하기, 왕초보 공항 택시 사기 패턴 100"같은 책이라도 함께 돌려보는지 수법도 다 똑같다. 고생 끝에 겨우 괜찮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넘어가는데 이번에는 보고타 교통체증이 문제다. 초속 10cm는 움직이는 걸까. 배는 고프고 시간은 없고 화는 나고 멀미도 나고 미터기는 바쁘게 올라가고 고산증 증세도 서서히 올라오고,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이제 무조건적으로 보고타를 싫어하기로 말이다.


보고타 물가는 너무 비싸지만 맛있으니 다 괜찮았다.




이번 하반기 안전 교육은 특별하게 하루 동안 보고타 근교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아침 일찍 몸을 버스에 짐짝처럼 실었다. 인사성 밝은 초등학생 저학년 마냥 꾸벅꾸벅 인사하듯 졸다가 문득 올라오는 멀미 기운에 일어났다. 길은 점점 좁아져서 버스가 지나간다는 게 기적처럼 보였다. 저 멀리는 비현실적인 폭포도 보인다. 아직 내가 잠을 덜 깬 걸까? 아니면 나는 이미 비행기에서 죽었지만 그 사실도 모른 채 이승을 떠돌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 모두 외국인 노동자로 팔려가는 건 아닐까? 1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길은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내가 무슨 아침을 먹었는지 지저분한 방법으로 알려줄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기회를 아쉽게도 놓쳐버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Ecoparque에코빠르께, 에코 공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저 멀리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말 한 마리가 풀을 뜯어먹는 것이 보였다. 주변은 영험에 보이는 산과 안개로 둘러 쌓여있었다. 혹시 지금 천국에 도착한걸가? 


말들이 뛰어노는 대 자연에서 화재 진압 훈련까지. 오늘 도대체 뭐지.


에코 공원에서의 일정은 빡빡했다. 분명히 뭔가 많이 했다. 하지만 보고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자 여기서 뭘 했는지 머릿속은 다 비워져 버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이라고는 소화기를 이용해서 불을 끈 것, 풀밭을 뒹굴며 쯔쯔가무시병을 걱정한 것 정도가 기억에 남았다. 그 외에도 명문 모를 팔과 엉덩이의 통증과 한껏 더러워진 옷들만 남았다. 아마 기억을 못 할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천국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 후 꿀맛이었던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서 머리에 베개가 닿자마자 잠들었다. 




다음날. 하반기 안전 집합교육 일정 중 하루는 한 학교에서 국제개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날도 똑같이 새벽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캠페인 시작 전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으나 결국 우리의 역할은 살아있는 등신대였다. 캠페인 부스에서 웃으며 아이들과 인사하고 사진 찍을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척 활짝 웃기 그리고 세미나에 참가해서 머릿수 채우기가 우리의 역할이었다.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느낌이었다.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또 막상 무언갈 시켰으면 부담스러워하고 화냈을게 분명하다. 우리가 이런 자리를 위해서 콜롬비아에 온 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의미가 없었다. 남는 게 사진이라던데 정말 사진만 남기기 위한 시간이었다. 공공기관 놈들의 보여주기 식 행정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사진만 정말 많이 남은 날.




보고타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빠른 듯 느리다. "보고타 싫다"는 말과 "부까라망가 가고 싶다"는 칭얼거림이 자진모리장단처럼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 타는 시간이 되었다. 공항에서 앉아서 뉘엿뉘엿 져가는 일몰을 보았다. 보고타의 일몰은 언제나 아름답다. 높은 고도 때문인지 아니면 평평한 평지라서 그런지 아니면 곧 집에 갈 거라는 설렘 때문인지 붉고도 자주색인 노을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 손에 꼽히게 흔들리는 비행기였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돼서 창문 밖은 번쩍번쩍거렸고 구름은 시커맷다. 그리고 기장이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하는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번개, 천둥, 기상악화, 전자기기 모두 꺼주세요, 신께 기도하세요 뭐 이런 것들이었다. 마실 물을 나눠주던 승무원들도 급히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맨다. 그리고 수 초간 수직 낙하하는 느낌이 들었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건너편 좌석의 손님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 낙하의 순간, 나의 과거가 눈앞에 자동 재생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후회스러운 것들, 하지 못해 아쉬운 것들이 떠올랐다. 결혼, 연애, 가족, 친구 여러 가지 생각이 휩쓸렸지만 나는 이 순간마저도 빌어먹게 착해 빠진 호구였는지 결국 착하게 살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좀 더 사랑하며 살걸, 좀 더 베풀며 살걸, 좀 더 섬기며 살걸, 그때 돈 아끼지 말고 분홍 히말라야 소금을 살껄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부까라망가 공항에 또 패대기 쳐졌다. 무사히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길은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웠다. 죽음의 문턱에서 들었던 생각들은 다 까먹어 버렸다. 하지만 그 마음의 감정 찌꺼기 정도는 마음 깊숙이에 남아있었다. 내가 코이카라는 이 길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저승으로 가기 전까지 더 섬기고 더 사랑하고 더 베풀면서 살련다. 난 빌어먹게 착하게 살 운명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절대적으로 싫어할 리스트에 "비행기"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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