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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Nov 27. 2019

네?
우리 학교 기계과가 없어진다구요?

19년 09월 30일




여타 평범했던 아침. 출근해서 기계과 교무실에 가니 아무도 없고 문이 잠겨있었다. 이 시간에 언제나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나 빼고 어디 다 놀러 간 걸까. 스페인어 못한다고 왕따가 된 걸까. 다른 선생님들을 기다리며 교무실 앞에서 개미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곧 기계과 선생님들이 오셨다. 놀다 온 건 아니었는지 다들 낯빛이 어두웠다. 그 원인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같이 오는 낯선 사람들을 누가 봐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장부터 이 낯선 사람들을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낯선 사람들은 날 보더니 반갑게 인사해준다. 인사하고 짧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Consejo라고 하는 시청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인사만 마치고 낼름 오피스에 들어갔다. 오늘 무슨 일이냐 선생님들께 꼬치꼬치 캐물으니 오늘 있었던 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먼저 기계과 실습장의 30프로 정도의 땅을 담장을 두고 이웃하는 UIS 대학교에 넘겨주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학교와 UIS 대학교 사이 담장을 허물어서 학교를 합칠 거란 이야기는 전부터 종종 나왔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우리 학교, 그것도 우리과 실습장을 대놓고 뺏는 것인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렇게 부족해지는 실습장은 옆 창고를 청소해서 새로 만든다고 한다. 그 창고는 속칭 '기계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먼지가 쌓이다 못해 퇴적되어서 먼지 사막, 먼지 지층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곳이었다. 그리고 기존 기계들도 그 먼지 사막으로 옮겨야 하고 새로운 기계과 교무실과 화장실도 만들어야 된다고 하셨다. '말인가 방귀인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스페인어로 표현할 줄 몰라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는 건 더 충격적이었다. 저 Consejo의 최종 목표는 기계과를 없애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시대에 뒤처진 기계교육에 계속 돈을 들일 바에 기계를 다 처분하고 돈 적게 들고 미래지향적인 타과를 지원해주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여기 와서 이제 적응 좀 할까 싶었더니 이게 웬걸 직장을 잃게 생겼다.


네.. 조용히 지나가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한국으로 치자면 공업고등학교로 네 개의 전공으로 나뉘어 있다. 시스템과, 전자과, 금속과 그리고 우리 기계과. 여기서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은 전부 시스템과랑 전자과로 빠진다. 나머지 기계과와 금속과는 공부를 못하거나 할 생각조차 없는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졸업하려고 온다. 공부할 생각이 없는 친구들만 오는 건 아니지만 공부하기 싫어하는 주류가 만드는 분위기에 수업 분위기가 금방 휩쓸린다. 가면 갈수록 공부의 열의가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이러다 보니 학교에서의 지원도 다르다. 우리과 공작 기계들의 상태는 전부 불가사의하다. 어떻게 증조할아버지뻘 되는 기계들을 아직 사용하고 있는지 놀랍다. 하지만 그 회춘의 기적은 모든 기계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30여 대 되는 선반 중 사용 가능한 건 10대도 안된다. 밀링은 8대 중 딱 3대만 쓸 수 있다. 기계과 한쪽 구석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때 만들어진 공작 기계도 있다. 이만하면 박물관이다. 한국에 없는 기계 박물관이 우리 학교에 있는 셈이다.(심지어 가동 중이다.) 그리고 그 실습에 쓰이는 자재들도 형편없다. 두께는 2-3cm도 안될 것 같은 얇은 철 환봉이랑 두께 1cm도 안 되는 철판이 전부이다. 모름지기 학생 때는 여러 형상들을 실습해봐야 하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실고추 같은 환봉과 알루미늄 호일 같은 얇은 철판으로만 실습해야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실습은 왕 기초 수준에서 맴돈다. 게다가 그 철 환봉과 철판을 잘라낼 기계도 없어서 쇠 톱으로 썰어야 한다. 자재들이 실고추 같다, 호일 같다고 그랬지만 철 환봉과 철판을 톱 하나로 썬다는 것은 플라스틱 빵칼로 냉동 고기를 써는 것과 같다. 썰리긴 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있는 톱도 성한 것이 하나 없어서 사실상 빵칼을 반대로 잡아 손잡이로 고기 써는 정도의 난이도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기 실습 재료를 만드는데만 20분 넘게 걸린다. 2시간 실습시간 중 약 20%를 겨우 재료 하나 잘라내는데, 톱질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기계와 자재가 충분하다고 해서도 좋은 기계 실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절한 실습 기자재, 액세서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있는 기자재, 액세서리들도 대부분 고장 나있고 사용이 겨우 가능한 장비가 3-4개 안팎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남들 실습할 때 다른 학생들은 구경해야 한다. 이러니 수업시간에 수업 듣는 학생은 3-4명, 나머지는 핸드폰 보며 잡담하고 있다. 뭐하냐고 물으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이러니 제대로 된 수업이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다른 과의 사정은 너무나도 다르다. 시스템과는 컴퓨터 교실만 7개를 가지고 있다. 포토샵부터 웹디자인 프로그래밍 전부 다 배운다. 우리 과는 컴퓨터실 필요하다고 3년째 교장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 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 과로 기부받은 노트북들이 있지만 교실 만들 예산이 없어서 못 만들고 있다. 수업의 질도 다르다. 시스템 과에서는 비즈니스 모델링을 가르치는 수업도 한다. 아이디어를 내서 사업화를 구상해보고 실제로 프로토타입도 만들어보는 이 수업은 한국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이다. 그래서 이 수업은 우리 학교의 자랑으로 소문이 자자하고 그만큼 지원도 엄청 받는다. 얼마 전 시스템과 졸업 작품 전시회에 초대받아서 가보니 태양열 패널로 만든 핸드폰 케이스, 걸으면서 나오는 전기에너지로 충전하는 충전기, 그리고 방범 서비스를 하는 핸드폰 앱까지 고등학생의 수준을 뛰어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기계과 학생들이 쇠톱으로 실고추 같은 철 환봉 자르는 동안 이런 걸 다 배우는 거다. 전자과도 이와 수준이 비슷하다. 로봇 팔을 핸드폰으로 조종하는 걸 한다던가 검은 레일을 따라 자동 운전하는 자동차, 여러 센서들을 이용해 손 모양을 따라 하는 손 로봇까지. 수업도 대학생들처럼 한다. 전자과 학생들은 학기 초에 한 가지 졸업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스스로 컴퓨터로 검색하고 필요한 부품들을 사서 조립해서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본다. 선생님의 역할은 그저 옆에서 도와주는 서브 정도의 역할이다. 물론 이런 걸 배울 동안에도 우리 기계과 학생들은 쇠톱으로 철 환봉을 자른다. 이렇게 수업 수준이 다르니 아웃풋도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 시청 관계자도 핸드폰으로 로봇팔 조종하고 태양열로 핸드폰 충전하는 걸 보다가 실고추 만한 쇠나 깎는 기계과를 보니, 기계과를 쓸모없는 과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쇠톱으로 쇠를 빠르게 자르는 기술보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기술과 프로그래밍 기술이 더 눈에 띄는 세상인 건 맞다.


이건 그나마 두꺼운 쇠 환봉. 하지만 자르는데 3박 4일쯤 걸린다.




보고타에 돌아온 그다음 날부터 기계과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기계들을 옮겨서 새로 설치하는 것도 큰일일 뿐 아니라 기존에 창고라고 쓰고 버려진 공간이라고 읽어야 할 먼지 사막을 청소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창고 청소부터 차근차근 진행했다. 한 30년 치 먼지로 가득 쌓인듯한 공간. 한때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알아주던 과가 기계과였다고 한다. 그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듯 30-40년 전만 해도 최신식 기계였을 녹슨 고철들이 창고에 어머어마하게 쌓여있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싹 다 팔아버리고 최신 기술들, 절삭 가공뿐 아니라 제어기술, 프로그래밍, 모델링을 가르쳐 줄 기계들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하나 전부 기계과 할아버지 선생님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소중한 물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뭔지 모를 괴상한 고철들이 창고에서 계속 나오는데 할아버지 선생님들은 다 어디 쓰이는 물건인지 꿰고 계신다. 심지어 학교에서 돈만 좀 지원받으면 이 기계를 싹 고쳐서 다시 가르쳐 줄 수 있다고도 말씀하신다. 그리곤 청소하다 말고 꿈에 젖은 행복한 표정으로 그 기계의 연대기도 말씀하신다.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쩌면 비슷한 처지일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늙어가고 서서히 입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인정할 수는 없는 그 마음. 그렇기에 더 포기할 수 없고 완고하게 되는 것이다. 싹 다 팔아버리고 옆동네 과 처럼 최신 기술들을 가르치고 싶지만 이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어렵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학교 창고, 먼지 사막 혹은 쓰레기 더미.


청소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온건 기계과의 부흥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상 인공호흡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능력 안에서 더 나은 기술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여건들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제는 직장을 잃을 판이기도 했다. 그래서 기계과 선생님들께 코이카에서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꼬드겼다. 현장 사업이라고 코이카에서 파견된 기관을 돕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계들 수리하는 비용, 그리고 컴퓨터실 정도를 조성할 금액은 나올 거라고 설명했다. 대신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나는 그저 도울뿐, 주체는 기계과 선생님들이라고도 설명했다. 확실히 100%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아니라는 말도 첨언했다. 그저 패잔병처럼 곧 멸망해버릴 왕국에서 무기력함으로 일하던 선생님들의 눈에 호기심이 어린 게 느껴졌다. 짓궂은 농담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던 동료 선생님 이스마엘조차도 진지해졌다. 내가 뭐 이러려고 온 거 아니던가. 아마도 가시밭길 정도가 아니라 지옥이라고 하던 현장 사업이지만. 이 선생님들의 열정이나 직장을 잃게 생긴 이 상황에서는 그 길도 꽤 도전해볼 만한 길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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