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10월 10일
비가 또 잔뜩 쏟아져 내렸다. 하루에 한 번꼴로 내리는 이 비는 한번 쏟아지면 세상을 빗소리로 가득 채운다. 이 비는 집, 나, 쓴 커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한 따발총 같은 빗소리, 그리고 어두운 하늘이 세상 전부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 사나운 도깨비 같은 소나기는 곧 그친다. 하늘은 금방 개고 어둡던 하늘이 군데군데 하얗게 파랗게 얼룩진다. 멀리 비구름은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내린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방안을 훑고 지나간다.
내가 사는 부까라망가는 계절이 없는 곳이다. 사시사철 비슷비슷한 날씨를 보인다. 그나마 계절이 있다면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고 한다. 하지만 건기라고 해도 비는 하루에 한 번쯤은 내리고 우기라고 해서 마냥 비만 오는 것도 아니다. 누가 언질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이 건기인지 우기 인지도 모를 곳이다. 동료 선생님들께 우기가 언제인지 물으니 의견이 분분하다. 어쩌면 상상 속의 우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이지만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꼬박꼬박 일기예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기예보는 매일매일 비슷하다. 기온의 뒷 숫자가 1, 2 달라지는 정도. 거기다 가끔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음'이라고 하면 일기예보는 끝이다. 아마도 부까라망가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부까라망가 기상청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계절이 지나 태풍도 몇 번 지나가고 벌써 추석을 넘어 가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뉴스는 요즘 안 봐서 소식은 다 친구들 인스타로 접한다. 인스타에서 벚꽃 보고, 무더운 여름의 시원한 밀면을 봤었는데 이제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 올라온다. 이제 곧 있으면 내가 콜롬비아로 떠날 때 보던 롱 패딩을 볼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계절이 없는 곳에 있으니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어떻게 10월에 당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벌써 10일이다. 시간은 참 빨리 지나 가는데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날 가는걸 Octubre10월이라고 적힌 달력과 학기의 절반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이번 주 방학 덕분에 알게 되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방학이 아니었다. 학생들한테는 방학이지만 교사들은 출근해야 했다. 수업을 듣기만 하는 학생보다 정작 쉬어야 할 건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의견 따위는 콜롬비아 교육정책에 먹혀들 리가 없었다. 하여간 이 방학인지 방학 아닌지 모를 주에 대해서 교장선생님께 동료 기계 선생님들에게도 물어 보았다. 뭐 어쩌고 저쩌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쓰셔서 하나도 알아들은 것은 없다. (구글 번역기를 써서 알려주셨는데 '내가 전에 나가면 학습'이라고 번역 되었다. 더 깊은 미궁에 빠졌다.) 그저 알아들은 것은 언제 어디로 몇 시까지 나오라는 거 정도와 하여간 방학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마도 그 못 알아들을 단어의 뜻은 교사 연수회였던 것 같다.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니 학생들은 당연히 없고 다만 예비군을 보는 듯 의욕 없는 선생님들만 있었다. 강당에서 연수회가 시작되었고 학교의 방학 이후 일정에 대한 설명하고 장애 아동 교육, 성교육 등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유익해보이는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선생님이라고 해서 꼭 교육을 열심히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은 정 반대였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랑 똑같이 말도 안 듣고 교육을 듣지도 않았다. 학생들과 다른 점은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얼굴 주름이 더 많다는 점 정도였다. 역시 그 학생에 그 선생님이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우리 학교 기계과 선생님들은 강의하는 사람이 민망하도록 떠들고 놀았다. 나도 물론 그 떠들기에 빠질 수 없었다. 너무 시끄러워지면 멀리서 교장선생님이 눈으로 테이져건을 쏘셨지만 그때 잠시 조용해질 뿐 눈치 보며 다시금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연수회 동안 수업시간에 떠들고 노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배우고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수요일부터는 부카라망가 그리고 옆 도시 삐에데꾸에스따 선생님들의 연합 체육 대회가 있었다. 학교를 대표해서 여러 선생님들이 농구, 축구 등의 경기에 출전하셨다. 하지만 그 대표선수들만 죽어라 운동할 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커피 한잔이나 맥주 한잔 들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떠들기 바빴다. 농구, 축구 경기를 구경할 수 있는 벤치는 텅텅 비어서 전세 낸듯이 누워서 경기를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늘이 있는 곳, 카페테리아는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 역시 어딜 가나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나가기 싫어하고 안락한 곳에 앉아 떠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서 고기도 익을 듯한 태양볕에 쏘여지며 경기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난생처음 보는 스포츠인 쇠공으로 나무토막을 쓰러트리는 선사시대 볼링 같은 롤라라는 스포츠도 구경하고 농구, 축구도 구경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스포츠는 태호 Tejo라는 콜롬비아 정통 스포츠였다. 이 스포츠는 그야말로 정신 나갔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과격한 스포츠다. 이 스포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진흙으로 된 과녁판에 주먹만 한 '쇠 추'를 던지는 스포츠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과녁판에 화약을 넣은 하얀 종이들을 꽃아 둔다는대서 이 스포츠의 미친 점이 드러난다. 점수는 이 화약을 터트린 개수와 진흙에 박힌 쇠 추의 개수로 얻기 때문에 쇠 추를 진흙에 박힐 정도로 쌔게 그리고 화약을 터트리려고 작정하고 던진다. 그래서 던질 때마다 옆에서 누가 총이라도 쏜 듯 쾅쾅 펑펑 소리가 난다. (예전에 보고타에서 들었던 총소리는 실은 태호 하는 소리가 아니었을까는 합리적인 추측도 든다.) 화약 터지는 소리로 귀는 쨍하고 쇠 추를 죽어라 던지고 바닥에 부딪힌 쇠 추는 사방으로 날아간다. 내 머리에 그 추가 맞으면 내 머리가 저 과녁에 있는 진흙처럼 움푹 파일게 분명하다. 게다가 태호는 한국에서 볼링같은 게임이다. 다들 한 손에는 쇠 추 나머지 한 손에는 맥주를 들면서 하는 거다. 콜롬비아의 낮은 수명이 태호와도 연관 있지 않을까? 이 정도의 기상과 패기가 있어야 살아남는 땅이 바로 콜롬비아다.
이번 주는 이렇게 연수회 주가 껴있어서 조금 특별한 일주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공장에서 찍어져서 나오는 기성품 같은 하루들만 이어졌다.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점점 더 게을러져가고 있다. 요즘은 요리도 귀찮아서 저녁에 간단히 계란 프라이를 해 먹는다. 매주 하던 청소도 이제 2주에 한 번씩 한다. 그렇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건 아닌데 점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시간만 빨리 간다. 이러다 사육당하는 돼지랑 다를 게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요즘 삶의 패턴을 바꾸고자 내 삶에 루틴들을 하나씩 첨가하고 있다. 유튜브 강하나 선생님의 하체 스트레칭 매일 하기. 스페인어 듀오링고 30분씩 하기. 저녁에 옥상에 올라가서 턱걸이하고 걷기. 큐티하기. 이렇게 무료한 하루에 하나씩 조미료를 첨가하고 있는데 최근 재밌는 이야기를 보았다.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행복해 질려면 자신이 가장 자주 쓰는 것들을 좋은 걸로 바꿔야 한다고 한단다. 이것이 삶의 지혜 혹은 잔머리지 싶었다. 그렇지 내가 돈 벌려는 게 다 쓸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라는 생각에 벼르고 벼르던 비알레띠 모카포트를 질러버렸다. 역시 비싼 건 좋다. 맛 차이는 조금밖에 안 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만족도가 폭발한다. 이 모카 포트 택배 오는 일주일은 내가 여기서 가장 기대하고 고대하는 시간이었을 테다. 소녀 같은 마음으로 매번 경비실에 택배 왔냐고 물어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건 의자다. 1시간만 있어도 엉덩이가 편육처럼 되어버릴 거 같은 이 의자. 바꿔버릴 때가 왔다. 매일매일 조금씩 더더 나아져 가면 좋겠다. 나도. 나의 주변 물건들도. 이 기세면 2년은 식은 죽 먹기, 누워서 케이크 먹기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