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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Sep 23. 2019

아마도 천국에는 아침 알람 같은 건 없을 거다.

19년 06월 27일



아마도 천국에는 아침 알람 같은 건 없을 거다. 그렇게 시끄럽고 성가시고 짜증 나는 아침 알람은 지옥에나 어울린다. 그래서 "삶이 지옥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이 힘든 건 아침 알람을 듣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악마에게서 지금 해방되었다. 방학이라는 천국에, 엘도라도 El Dorado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서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방학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리브레. 자유. 오 아름다운 인생이여. 방학이란 건 행복으로 만든 잼 같은 게 아닐까. 알람 없이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에 일어나기. 여유롭게 커피물을 올리고 스트레칭하며 노트북을 켜기. 간밤 있었던 뉴스와 웹툰을 시리얼 먹으며 몰아 보기. 여기가 천국이다. 그것도 게으름뱅이의 천국. 요리하기 귀찮아서 한솥 잔뜩 끓여놓은 카레를 먹으며 한국 예능을 본다. 가끔은 공부하는 척 끄적여본다. 볕 좋은 날 부까라망가를 여행한다는 심산으로 안 걸어 본 길만 골라 걸어보기도 한다. 코이카를 와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인생의 황금기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에 도달했다. 오히려 이러다가 큰 재앙이 오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함이 들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방학이 끝나면 나의 기계 수업도 시작한다. 이 불안감이 곧 "아 수업 준비 좀 똑바로 더 할걸"이라는 현실로 다가오기 딱 2주 남았다.


내가 사는 지방의 특산물은 개미다. 먹어보면 짭짤한 게 꼭 탄 팝콘 같은 맛이 난다. 두 번 먹을 맛은 아니다. 군대 같은 맛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요즘 코파 아메리카가 한창이다. 그래서 축구 바람이 콜롬비아와 남미 전역을 휩쓸고 있다. 콜롬비아는 축구에 목숨을 걸다 못해 사실상 축구가 국교인 나라다. 그래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샛노란 콜롬비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그리고 축구가 시작하면 길거리에 사람도 드물고 차도도 텅텅 빈다. 일요일에 교회 가듯 다들 티브이 앞으로 가서 축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축제에 빠질 수 없었다. 그래서 과외선생님과 함께 축구를 보기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이미 병아리처럼 샛노란 콜롬비아 유니폼 무리들이 득실득실했다. 처음 교회를 가는 새 신자처럼 쮸볏쭈볏 걸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감자튀김을 시켰는데 30~4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다. 주문이 많이 밀렸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옆에서 축구를 보던 아저씨가 알고 보니 주방장이었다. 다 끝나서야 튀겨주셨고 결국 감자튀김은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다. 처음 본 콜롬비아 현지 축구 중계. 신경 쓰며 듣지 않으면 중계하는 건지 그냥 주변 소음인지 모를 정도로 빠른 말이 인상적이다. 한국 축구가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콜롬비아가 축구를 잘해서 그런지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후반전. 경기가 끝나기 10분 정도 남았을 때 우주 방어를 하던 카타르의 골문이 드디어 열렸다. 그때 캐스터가 "골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이라고 숨도 안 쉬고 30초 넘게 소리쳤다. 골 넣고 세리머니하고 경기가 다시 재개될 때까지 "골ㄹㄹㄹㄹ..."은 계속되었다. 아마 캐스터를 뽑을 때 말을 얼마나 빠르게 하는지와 저 "골ㄹㄹㄹㄹ..."을 몇 초 할 수 있는지 시험을 봐서 뽑는 게 틀림없다. 사방이 시끄럽다. 골 소식을 몰랐다면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을 것이다. 골 소식에 자동차들도 일제히 빽빽거린다.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하이파이브도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와서 환호한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제발 한국이랑 축구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취미가 뭐예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걷기"라고 대답할 거다. 난 한국에서도 소문난 걷기광이었다. 광이라고 말하니 왠지 좀 촌스럽지만 말이다. 웬만한 거리는 곧잘 걸어 다닌다. 예전에 종각에서 시작해서 청계천이랑 한강을 넘어서 한양대역까지 가본 적 있고 부산에서 2호선을 따라서 호포에서 거의 서면까지 걸어본 적도 있다. 그 외 평소에도 한 시간 가량의 거리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걷어가곤 했다. 그리고 나의 걷기 사랑은 콜롬비아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보고타에서 집에서 학원까지 1시간 반씩 걸리는 거리를 거의 매일 걸어 다녔고 부까라망가에서도 곧잘 걸어 다녀서 온 지 2달 되었지만 버스카드를 아직 사지도 않았다. 걷기는 여러모로 좋다. 예전에 한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사람의 몸은 그 쓰임새로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걷고 뛰고 산을 오르는 거와 같이 자연스러운 운동이 좋고 인위적인 운동들은 오히려 몸을 망친다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스쿼트든 벤치프레스든 그런 이상한 동작은 안 쓰는 근육에 무리를 줘서 좋을 게 없는 운동이라고 하셨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답게 배 나온 아저씨이긴 하셨다.) 이 말이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걷는 건 몸에 좋다. 저 말이 인상적으로 남은 건 특별히 운동을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안심되었기 때문일 거다.


걷다보면 여러가지가 보인다. 구경하고 싶은 가게, 이쁜 카페, 그리고 전깃줄에 자라는 정체 모를 식물도




걷기는 정신건강에 좋다. 걷기는 같은 템포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리듬이고 음악적이고 흥겹다. 그 반복되는 리듬은 적당히 산만해서 딴생각하기 아주 좋다. 그리고 그 생각은 대게 부정적인 경우가 잘 없다. '오늘 뭐 먹지?'부터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같은 철학적 질문까지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머물다가 또 흩어진다. 우울한 사람이나 기분이 안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방에 콕 박혀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적인 시간은 사람을 서서히 안 좋은 생각으로 이끈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를 물고 물어서 나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걷다 보면 주변 시선이 분산되어 날 잡아 삼키던 고민 대신 빵 냄새,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어 지는 아기자기한 가게, 맑은 하늘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안 가본 길을 걸을 때 주위가 분산되는 효과는 더 커진다. 처음 보는 가게, 처음 보는 물건, 처음 보는 사람, 처음 보는 것들. 눈이 돌아간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도 둘레길이 영험한 길인 거처럼 입소문을 나는 것도 일상생활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하는 산만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방학이라 걸을 시간이 많다. 방학 끝에 있을 수업에 부담도 있고 걱정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걱정해서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매일 꾸준히 걸으면서, 그래도 하는 척 끄적여보면서 느긋 느긋으로 대응해나가련다. 나 콜롬비아 사람 다 되었구먼.


찰나는 75분의 1초라는 뜻이란다. 일몰 속의 도시는 찰나의 순간마다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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