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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Sep 18. 2019

단언컨대,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9년 06월 19일




으악. 박살이 났다. 오랜만에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사고를 쳤다. 쪼그려 앉아서 샤워실 바닥에 물때를 지우고 있었는데 일어나다가 유리로 된 선반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키지만 이 선반에 닿을 만큼은 키가 컸다. 유리 선반은 바닥에 떨어져서 "쨍그랑"이 아니라 폭탄이 터지는듯한 "퍽" 소리가 나며 박살이 났다. 바로 옆에서 유리가 산산조각이 난 것 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스틱스 강에서 목욕이라도 했는지 옆에서 유리 폭탄이 터졌지만 몸은 멀쩡했다. 하지만 대신 마음이 깨졌다. 밤 11시에 생긴 2시간짜리 잔업은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쪼그려 앉아서 큰 유리들은 치웠지만 다들 알듯 눈에 보일 듯 말듯한 작은 유리가 더 문제였다. 이러다 가시밭길에서 샤워를 하게 생겼다. 인터넷에서 유리가 깨졌을 때 청소하는 꿀팁을 검색해 보았다. 식빵으로 바닥을 쿡쿡 누르듯이 닦으면 작은 유리조각들이 쉽게 제거된다고 한다. 작은 유리조각들이 식빵에 콕콕 박히기 때문이란다. 꽤나 그럴듯한 팁이었지만 밤 11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밤 11시에 식빵이 먹고 싶은 별난 사람을 위해 편의점에서 팔지만 여기 콜롬비아는 그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도둑놈과 택시 기사와 술 취한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뿐이다. 그 시간에 식빵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밖에 나가면 범죄의 표적이라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이 된다. 물론 연 가게도 없어서 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물에 푹 젖은듯한 축축한 마음으로 바닥을 쓸었다. 수어 번 닦았다. 그리고 또다시 쓸었고 휴지로 다시 닦았다. 아마 이 순간 내가 부까라망가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거다.


가끔 내가 서있는 이곳이 어디지 생각이 든다. 이 표지판을 만든 사람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기쁨을 나누면 두배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기쁨을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건 잘 모르겠지만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이야기는 요즘 크게 와 닿는다. 힘들 때 아픈 일이 있을 때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은 꼬리를 물고 또 물어서 나를 심연, 저 저승으로 끌고 간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거처럼 세상 모든 아픔이 나의 것인 것 마냥. 마음 아래 깊숙이 뚫고 내려가 마리아나 해구에 닿는다. 그리곤 쪼그려 앉아서 귀를 막고 가만히 숨죽여 있는다.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나를 집어삼킨다. 우주 대 먼지 같다. 미아가 된 것 같다. 난 철저히 잘못 산 것 같다. 내가 여기 왜 왔나 싶다.




코이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코이카는 "국제 왕따를 만드는 곳"이라는 말이 나왔다. 코이카는 현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을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 촌구석에 사람들을 일단 던져놓는다. 거기서 이른바 "생존"하는 건 각 사람들의 몫이다. 그런데 어떻게 쉽게 정착하겠는가. 아는 사람은 없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기관장과 동료들 주변 눈치만 보게 된다. 현지에서 하는 활동들은 내 생각하는 대로 잘 되지도 않는다. 하는 것은 없이 출근만 꼬박꼬박 하고 있다. 뭘 해야 될지 길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남는 수많은 시간에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돌아보게 된다. 하는 것 없이 고생만 하고 세금만 축내는 게 아닌가? 내가 쓸모없는 존재인가? 여기 와서 정신병만 얻고 돌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부까라망가는 매일 꽃이 피고 진다. 가끔 잊고 살지만 난 매일 봄날을 살아가고 있다.


코이카에서의 삶은 결국 고독과의 싸움이며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사는 삶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직장은 감사한 사람들이 참 많다. 배고플 때 짜증을 내는 거 빼고는 존경스러운 코워커와 교장선생님. 나의 콜롬비아 첫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귀찮을 만큼 초대해주고 놀아주는 기계과 동료 선생님들. 만나면 공부는 안 하고 떠들기만 해서 친구 비를 내고 사귀는 친구 같은 과외 선생님. 나만 보면 "산티아고" 소리 치며 쫓아오는 무서운 학생 무리들. 그리고 나랑 같이 고생하시는 코이카 동기 선생님들까지.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깊고 긴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별거 아니었다듯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나를 끌어올려주는 건 언제나 주변 사람들이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고 보면 난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한자 사람 인자도 서로를 기대어있는 모습이 아니던가. 성경에서도 혼자 있는 아담이 보기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의지하고 도와주고 산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난 주변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뒤통수를 자세히 볼 수 없듯이 말이다. 다만 함께 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이어도 좋겠지만 헤어지는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면 좋겠다. 친절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상냥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도움을 나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런 사람이 되어가면 좋겠다.




유리를 치운 다음날에 부까라망가로 파견된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차린 건 많이 없었지만 즐겁게 먹으면서 떠들었다. 아침 내내 우중충하던 하늘은 점점 개어서 눈도 못 뜰 정도로 밝아졌다. 그러다 다시 모든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다가 다시 모든 것이 검게 물들었다. 어두운 것도 잠깐이고 밝은 것도 잠깐이고 이런 이야기하는 시간도 잠깐이고 이 콜롬비아 생활마저도 잠깐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지나간다. 다 지나 보면 별게 아니다. 지금도 마리아나 해구 속에서 반신욕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이 말이 위로가 안될 거란 걸 잘 안다. 차라리 고기를 구워주는 게 공짜 술을 주는 게 더 위로될 거란 걸 더 잘 안다. 하지만 지나 보면 다 별거 아니다.


초대해놓고 보니 내가 만든거 보다 배달시킨게 더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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