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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Oct 06. 2019

29살, 코이카 봉사단은 너무 무모하지 않나요?

19년 07월 11일




매번 큰 맘먹고 쇼핑몰에 들어간다. "이번에야말로 꼭 옷을 사고야 말 테다." 매번 큰 결심으로 쇼핑몰에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절망과 빈손으로 나온다. 도대체 이나라 남자들은 뭘 입고 다니는 것인가. 입는 게 벌칙 수준인 옷들만 가게에 걸려 있다. 그나마 매장 구석구석을 뒤져서 좀 괜찮다 싶은 옷을 찾으면 핏이 이상하다. 핏도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하면 재질이 엉망이다. 젠장. 콜롬비아 온 지 4달이 되었건만 아직도 한국에서 사 온 옷들로 매일매일 때운다. 분명 이 나라 사람들은 내가 거지인 줄 알 거다. 셔츠 딱 5개로 매일 돌려 입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점심마다 교장선생님이 밥을 사주시나? 그래서 카페테리아 가면 누가 몰래 내 걸 계산하고 가나. 도우러 왔는데 도리어 도움만 받고 있다. 돈이 없어서 이역만리 먼 콜롬비아까지 온 외국인 노동자 선생님으로 오해받고 있다. 이 사실을 알면 코이카 관계자들이 곤란해하시겠지? 하여간 입을 옷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산에서 옷으로 한 보따리 가져올걸 그랬다. 아무리 후회한들 한국 옷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서너 배 더 클 거다. 게다가 오는 데는 족히 한 달은 걸린다고 하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이제 곧 내 옷차림은 콜롬비아 사람 다 될 예정이다.




살벌한 기계과 선풍기. 어설픈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기계과. 시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실 옷 문제는 별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일생의 가장 큰 위기, 큰 난관, 대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탈모다. 이런 말 하면 슬프지만 나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진작 글러먹었었다. 왜냐하면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두 분 모두 한 반짝반짝하셨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미 스무 살 후반부터 어엿한 탈모인으로 사셨다. 사진으로만 뵛는데 내 얼굴이 근원이 어딘지 단번 알 수 있었다. 큰 바위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생기신 게 딱 내가 머리가 다 빠지면 저렇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아쉽게도 큰 키만큼은 유전받지 못했다. 친할아버지도 한 탈모하셨다. 그 동네에서 스크루지 같은 할아버지로 유명하셨다는데 공짜를 많이 좋아하셨는지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는 계란 같은 두상만 남아있다. 지금 유일하게 살아계신 외할머니도 탈모로 고생하고 계신다. 이 정도면 탈모 꿈나무를 넘어서 유망주, 축구로 따지면 이강인쯤 되지 않을까. 더 억울한 건 탈모는 한 대씩 걸러서 온다는 것이다. 곧 환갑을 앞두시는 우리 아버지는 여전히 풍성하시다. 난 망했다. 나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이런 시련은 모두 예정되어있었다. 나는 그 반짝반짝 유전자의 정수 중에서도 정수를 받았다. 탈모가 안 오면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시무룩 해질 정도로 말이다.




살 옷이 없다던가 머리가 빠진다던가 하는 걱정만 하는 요즘. 산힐에서 만난 여행객들도 그렇고 이 선택을 하기 전 한국에서의 친구들도 그랬다. "미래가 걱정되지 않느냐"라고. 아예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주류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살기로 결심한 이상 이것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 두려움을 이겨먹는 더 깊은 삶의 보람과 행복과 여유. 그리고 그 너머에는 이 삶이 더 안전할 거라는 나만의 확신도 있기 때문이다. 30년도 못 살아본 나지만 삶으로 경험한 큰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들이 좋다고 몰리는 삶 치고는 진짜 좋은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마 DNA에 탈모 유전자뿐 아니라 청개구리 유전자도 조금 섞인 돌연변이로 태어났나 보다. 그래서 다들 하면 괜히 하기 싫어했다. 게임을 해도 메이플 스토리 단검 도적처럼 꼭 비주류 캐릭터를 골랐고 내 삶의 순간의 선택들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업고등학교를 간 것부터 방위산업체, 해외 1년 선교, 숱한 해외여행 그리고 여기 코이카까지. 이런 특이한 선택들 덕분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경쟁들을 피할 수 있었다. 먼저 중학교 시절 공부를 어정쩡하게 하던 나는 공고를 갔고 그 덕분에 도리어 꽤 괜찮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방위산업체를 간 덕에 더 큰 세상을 보는데 돈이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대학을 가던 2010년도 너도나도 경영학과를 지원하던 그해 설날 나는"편하게 돈 버는 경영을 가지 왜 기계나 만지는 공대로 가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친척들의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고 기계과에 갔다. 그리고 요즘은 친척들은 해외봉사활동이 또 뭐냐고 비아냥 거리신다. 돌이켜 보면 다들 안 하는 길만 걸었는데 오히려 좋았던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 대세는 다들 선택하니까 라는 마음의 안심을 주긴 하지만 그 안심을 위해서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한다. 다들 지원하니 경쟁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들어가서도 살아남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경쟁 또 경쟁이다. 나는 이런 숨 막히는 삶은 못살겠다. 경쟁 없고 아무도 안 오는 1등급 청정수 블루오션에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평생 놀 거다.




그리고 뜬금없이 느낄진 모르겠지만 4차 산업 혁명도 이 선택에 한몫했다. 4차 산업 혁명은 알파고 이후에 워낙 시끌벅적했으니 다들 어느 정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설명해 본다면 4차 산업 혁명은 정보기술의 초연결성과 자동화로 도래하는 새로운 산업 환경을 말한다.(내가 이런 멋있는 말을 알리가 없다. 사전의 힘이다.) 누군가는 4차 산업 혁명이 닷컴 버블처럼 거품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라질 직업들이 벌써 심심찮게 거론된다. 거의 상용화 직전에 있는 무인자동차는 운전기사들의 일을 위협하고 있고 점원 없는 편의점도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한 보험회사는 인공지능을 도입하면서 90%의 사무일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노동이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대체되는 세상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비판적인 시선들이 있지만 내가 보고 느끼는 바로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 2009년, 햅틱이나 아몰레드를 쓰던 그 시절에는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면서 화장실에 있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핸드폰이 없는 화장실은 끔찍해서 상상하기 싫은 세상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상에 들어온다면 금방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아서 화장실에서 웹툰을 보듯 당연한 세상이 될 거다. 그리고 그때는 각 개인의 경쟁력은 기존 지금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이 아닌 나의 교유의 개성에 달릴 거라 본다. 인공지능이나 자동화로 대체할 수 없는 능력,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어쩌면 지금 끄적이는 이 글들도 그때를 대비한 것이다. 모두와 같은 사람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차별화가 곧 무기인 세상이 올 거라 본다.


이 정도 뷰 보며 청소하기 귀찮은 집에서 사는 건 꽤나 만족스러운 삶이다.




지금은 트럼프 형님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엘론 머스크지만 예전에 페이팔(정확히는 그 전신인 x.com)을 창업하기 전 1달러 프로젝트라는 걸 해봤다고 한다. 매일 하루 1달러를 쓰면서 생활하는 것이었다는데 매일 냉동 핫도그와 냉동 오렌지로 끼니를 때우고 도서관에서 책 읽으면서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보내니 엘론 머스크는 최악의 상황, 쫄딱 망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먼저 큰 집이 그다지 부럽지 않다. 지금도 청소하기 귀찮아 죽겠다. 포르셰를 한번 몰아보기 쉽긴 하지만 면허도 없고 버스에서 노래 들으며 창밖 보는 것도 좋다.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라면에 계란도 좋다.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적당히 배고픔만 해결하는 삶에서 책이나 읽으나 이렇게 글이나 쓰며 살아도 좋다. 우리 집 앞 이발소에는 강아지보다 소시지에 더 가깝게 생긴 강아지가 살고 있다. 그리고 소시지처럼 바닥에 엎드려 누워는 지나가는 사람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볕이 들면 그 아래 앉아서 가만히 웃고 있다. 내 삶도 저러면 좋겠다. 큰 무언갈 이루고 싶은 욕심은 없이 다만 여유롭게 쪼그려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면서 한없이 나부랭이로 살고 싶다. 하지만 머리카락만큼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걸어 다니는 걸 거의 못 본 비엔나 소시지 같은 강아지. 눈빛과 꼬리로 내게 매번 아는 척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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