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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Jan 16. 2020

두근두근 컴퓨터실 대작전

19년 11월 23일



  19년 11월 23일


   요즘 난 바쁘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인 한국 사람들에 비해서는 바쁘지 않지만 저번 주에 비해서는 정말 바빠졌다. 사실 고백하건대 난 여기서 정말로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수업 준비는 실습 부분이라 날로 먹고 있다. 수업은 학생들에게 준비한 도면을 하나 던져주고 프로그램 코딩하라고 시키면 끝. 아이들이 코딩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고소해하며 구경하면 수업은 끝이었다.


   학기도 곧 끝나는 터라 더 이상 수업 준비를 할 이유도 없었다. 수업이 아닌 시간에는 스페인어 공부 중이라는 빛깔 좋은 핑계를 들어 학생들이랑 선생님들이랑 떠들고 놀다가 퇴근하면 근무는 끝이었다. 이렇게 좋은 한량 생활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내가 이렇게 한량처럼 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번 주에 큰 일 하나를 떠맡게 되었다. 바로 '컴퓨터실 만들기'라는 가늠조차 안될 일이었다.




우리 학교 기계 실습장. 제대로 실습이 가능한 기계는 4대 중 1대 꼴.


   우리 학교 기계과의 아주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는 컴퓨터실 건립이었다. 말하자면 입만 아프고 손만 아픈 당연한 소리겠지만 기계과에서는 컴퓨터가 매우 중요하다. 기계 설계부터 가공, 조립, 시뮬레이션까지 대부분의 영역에 컴퓨터가 두루두루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계 가공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컴퓨터로 실습하면 비용과 시간 모두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컴퓨터로 설계를 하면 가공하지 않고 컴퓨터 상으로 조립까지도 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기계과지만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것만큼이나 컴퓨터를 다를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학교 기계과에는 컴퓨터실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컴퓨터 실습은 없이 60년 된 기계로 하는 시대착오적인 가공 실습이 전부다. 당연히 반쪽짜리 실습이고 학생들 취업에도 불리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 기계과 선생님들은 내가 오기 전부터 기계과 컴퓨터실 건립을 위해서 여러 노력을 해 오셨다. 그래서 어디선가 중고 컴퓨터 40여 대를 기부받아 오셨고 컴퓨터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산이 얼마나 들지 조사해서 교장선생님 앞에서 발표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먼저, 우리 학교 기계과는 큰돈을 지원받는 학과가 아니다. 학교 내에서 기계과는 '져가는 해'고 '구멍 난 지갑'이다. 그래서 학교는 '떠오르는 해' 유망한 업종인 전자과와 시스템과에 많이 투자한다. 기계과는 뒷전이다. 딱 구실 맞추기 용으로 지원해준다. 그리고 오늘내일하고 있는 환갑이 넘은 실습 기계에 인공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게다가 실습하는데 쓰이는 재료와 공구에도 무시 못할 비용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예산이 부족하다. 컴퓨터실 만들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컴퓨터는 있지만 컴퓨터실이 없는 기이한 상황이 이삼 년째 계속되었다. 그리고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선생님들은 사실상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셨다. 하지만 내가 오면서 이 꺼져가는 불씨가 다시 켜진 것이다. 그리고 나랑 학교 기계과 선생님들이랑 뭉쳐서 큰일 한번 벌리려고 하는 것이다.




   코이카에서 현지 활동 단원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은 크게 2개로 설명할 수 있다. '활동 지원 물품'과 '현장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둘 다 소개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지니 설명은 다음 그 언젠가로 미뤄두고, 일단 이번 컴퓨터실 건립을 위해서 '활동 지원 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활동 지원 물품'은 단원 생활 중 필요한 물품 구입을 위해서 1년에 1500달러를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자면 미술 선생님들은 미술 교자재, 간호 단원들은 의료 기자재, 한국어 선생님들은 한국어 책이나 프린터 같은 것들은 구매할 때 쓸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기계 단원이기 때문에 기계 가공 원자재라던가 기계 교과서, 공구 등을 살 때 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가공 실습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걸 살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있으니 그나마 활동 지원 물품을 사용하면 유인 지를 인쇄할 프린터 정도. 하지만 나는 이미 학교 내의 프린터란 프린터는 다 쓸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이역만리 먼 곳에서 온 불쌍한 외국인 노동자로 봐주시는 덕택(?)에 자기 프린터를 마음껏 쓰라고 말씀해주시기 때문이었다. 그 동정심 덕분에 프린트 돈까지도 굳혔다.


   그래서 이 돈을 어디에 쓸까 궁리하다가 기계 컴퓨터실 건립에 쓰일 수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걸 코이카 사무실에 여쭈어 보니 확실하진 않지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다. 그래서 일단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돈으로 컴퓨터실을 만들 수 있다는 가정하에 동료 기계 선생님들과 함께 준비해 보기로 했다.


기계과 2층에 방치된 기계 실습장을 컴퓨터실로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계획대로 될 수 있을까?




   남에 주머니에서 돈 빼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을 오래 산 편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 빼고는 나에게 돈을 쉽게 쓰는 사람을 못 봤다. 최저임금 몇천 원 벌려고 카페에서, 공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었는지 떠올리면 그 생각만으로도 진서리를 친다. 특히나 코이카는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돈 받아내려면 그렇게 까다로울 수가 없다.


  예산을 신청하는 물건들 하나하나 어디에 쓰는지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의 코이카 단원 생활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이걸 통해서 어떤 기대 효과와 파급 효과가 있는지도 일일이 적어야 한다. 물론 보고서의 대부분을 나의 뇌피셜과 희망찬 기대, 이상 저 너머의 꿈으로 가득 채웠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내가 사고 싶은 물건들의 가격이 적힌 견적서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기관장의 요구서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래서 이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나와 기계과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 사이 쉬는 시간 틈틈이 모여 무슨 자재를 사야 할지, 어떻게 공사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스마엘 선생님과 윌리암 선생님이 대부분의 계획을 만들었고 나는 그 회의에서 주로 아는 척 고개는 끄덕이지만 물어보면 "나는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계획이 완성된 이후 우리는 매일 오후 철물점, 건축자재나 전기 공사 자재를 취급하는 가게들을 순회하며 가격을 비교했다.


   내 인생에 콜롬비아에서 기계 선생님이 되는 날이 온 것도 신기했지만 이렇게 건축 자재, 전기 공사 자재들을 사려고 돌아다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이제 타일 시공과 전기 시공을 직접 해볼 날도 멀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사는 선생님들과 고용한 일꾼이 할 테지만 예산이 빠듯한 탓에 나도 잡일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다 있다.




   이번 주말 이스마엘 선생님 집에 윌리암 선생님과 함께 초대받았다. 이스마엘 선생님은 2년 전에 옆집에 살던 소꿉친구 사일러와 결혼했다. 결혼 이야기만 하면 부끄러워해서 자주 이야기는 안 해주지만 오랜 기간 알콩달콩 연애했고 심지어 이스마엘 씨가 아마존(회사 아마존이 아닌 정글 아마존)에서 일했을 때도 서로 뜨겁게 사랑했다고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내가 콜롬비아 오기 두 달 전에 이스마엘 2세 후아네스도 태어났다.


   초대받은 이스마엘의 집은 신혼부부가 딱 살기 좋은 집이었다. 거실과 아이방, 서재까지 다 갖춘 아파트에 매 주말 운영되는 야외 수영장도 있었다. 서로 알콩달콩한 게 느껴지는 집안 분위기에 나랑 윌리암 씨는 그냥 마냥 부러워했다. 점심은 삶은 콩과 아보카도 샐러드와 볶은 소고기. 간단해 보이지만 너무 맛있어서 모두들 코 박고 먹었다. 식사시간에 들리는 소리라곤 수저 움직이는 소리와 후아네스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리만 들렸다. 점심 식사 뒤에는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 이야기부터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술 먹고 꽐라 된 이야기 그리고 우리 학교 기계과를 없애려고 한다는 국회의원 욕까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눕듯이 앉아서 콘솔게임을 같이 했다. 배 터져라 밥 먹고 졸릴듯한 나른한 기분으로 수다 떨다가 게임까지.


   그러다 문뜩 쨍쨍한 창밖 풍경에 이끌려 동네 구경하러 베란다로 나갔다. 창밖으로는 병풍처럼 나지막한 산. 그리고 아래 흐르는 작은 강. 저 멀리는 하얀색 벽에 갈색 지붕을 얹은 콜롬비아 전통 집들과 하얗고 큰 성당. 햇볕이 워낙 쌔던 날이라 그 하얀색은 더 새하얗게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스마엘씨 집은 부까라망가 근교 도시 산힐. 고도가 조금 낮아서 더 덥다. 이렇게 좋은데 살고 있구나.


내가 어쩌다 콜롬비아 기계 선생님이 되었나.

내가 어쩌다 컴퓨터실 공사를 맡게 되어서 바닥, 천장, 전기 공사도 하게 되었나.

내가 어쩌다 콜롬비아 친구 집에 초대받아서 밥 먹고 게임하고 있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좋은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꿈같은 한량 같은 삶을 누리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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