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11월 15일
콜롬비아 와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떡볶이 레시피에 콜롬비아에는 없는 MSG 미원이 있을 때. 엄마가 해준 정구지 찌짐이 먹고 싶을 때. 늦은 밤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이 먹고 싶을 때. 친구들과 돼지국밥을 먹고 피시방 가던 게 생각날 때 정도. 한국 음식과 내 사람들 외에는 한국이 그다지 그립지 않다. 여기가 너무 좋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한국이 너무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땐 200만 원 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고서라도 한국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그때는 바로 머리 깎아야 할 때다.
전에도 한번 미용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콜롬비아의 미용실은 해병대 캠프처럼 치과 신경치료처럼 '인생이 너무 편하다 싶을 때 정신 차리기 위해 시련받기 위한 용도'로 참 좋은 곳이다. 특히나 나한테는 더더욱 그 시련이 짙다.
먼저, 한국의 미용실과 여기 미용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 이유는 먼저 주류 헤어스타일이 다른 탓이 크다. 난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그렇게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는 전반적으로 머리가 매우 짧다. 대부분 콜롬비아 사람들은 강호동처럼 짧은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깎고 다닌다. 그래서 남자 머리를 깎을 때 가위보다는 바리깡이다. 머리 정수리에만 조금 긴 머리가 있고 나머지는 짧은 수염처럼 다 밀어버린다.
콜롬비아의 정서는 남자는 상남자 같아야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다운 짧은 머리를 선호하고 그게 또 멋진, 잘생긴 머리라고 한다. 그에 반해 한국은 그런 머리가 대중적이지 않지 않은가. 나는 심지어 그런 머리를 고등학교 이후 해본 적이 없다. 난 잘 안다. 나의 두상상 그렇게 머리 깎으면 정말 북쪽 수령님이나 강호동처럼 돼버릴 것을. 인생에 이제 결코 없을 헤어스타일이다.
문제는, 여기는 다 그런 모히칸 스타일로만 머리를 깎으니 다른 머리는 어떻게 깎는 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용실에 내가 들어서는 순간, 미용사들의 동공이 약 진도 8.0 수준으로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대부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길 바라는 눈빛으로 외국인인 나를 경계한다. 내가 머리 깎으러 왔다고 스페인어로 말하면 그때서야 미용실 분위기가 다시 온화해진다.
하지만 그 온화해진 분위기는 약 10초를 넘기지 못한다. 내가 깎고 싶은 스타일이라고 핸드폰에 사진을 띄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투블럭을 원할 뿐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걸 어떤 스타일인지도, 심지어 이 스타일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를 거다. 그렇지만 또 다들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눈과 손은 다시 진도 8.0으로 흔들리건만 이렇게 깎아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마음 편하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계속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곁눈질로 노심초사한다. 미용사는 계속 도구를 이리저리 바꾸기 시작한다. 바리깡을 들어서 몇 초간 머리를 갈아내다 다시 가위로 바꾸는 식이다. ('갈아낸다'가 어울릴 정도로 거칠게 머리에 문댄다. 꼭 감자칼로 도려지는 감자가 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찌나 긴장을 하는지 떨리는 손으로 연거푸 분무기로 머리에 물을 뿌린다. 그 물은 넘쳐서 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아쉽게도 나는 식물도 아닌데. 콜롬비아 사람은 물로 느닷없이 세수하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난 좋아하지 않는다. 상반신 절반을 젖게 할 기세로 분무기 물을 뿌리는데 그 물에서 맡아본 적도 없는 남영동의 물 비린내가 살짝 나는 것 같기도 한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상반신 샤워 중에도 미용사는 긴장하며 머리를 깎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도 포기하고 눈 질금 감고 '괜찮다. 다 괜찮아질 거다.'라고 주문을 되뇐다.
안타깝게도 이 주문은 마음의 평화는 줄지언정 결코 머리 결과가 좋게 나왔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빗질을 하면서 가위질을 해주는데 이때쯤이면 실은 '내가 고문당하는 중'이라는 걸 눈치챈다. 내 두피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것인지 혹은 내 두피에 콩이라도 심으려고 도랑을 내려는 건지. 뾰족한 꼬리빗으로 사정없이 내려 찍으며 내 머리에 쟁기질을 한다. 피가 나야 이 사단이 끝나는지, '우리 비밀 기지가 어디 있는지 불어야' 끝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모든 사건의 배후라는 것을 고백해야' 이 고문이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고문 전문가가 있다면 꼬리빗으로 머리 쌔게 빗어주기를 새 고문으로 추천한다. 아마 30분도 버티지 못할 거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의자에서 물고문과 두피 고문을 몇십 분 당하면 비로소 머리는 완성된다. 이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건만 언제나 머리가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 순간이 끝나면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냥 머리 모양을 거울로 보여주는데 보는 둥 마는 둥 좋다 무이 비엔Muy bien 땡큐를 외치고 돈 내고 황급히 도망친다. 도망치는 길에 두피를 싹 만져본다. 머리에는 다행히 피는 안 난다. 매번 이 수모를 당하면 한국에서 받았던 치과 신경치료가 생각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경치료는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지만 미용실은 매달 가야 한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죄송하지만 진짜 빌어먹을 비렁뱅이 같은 일이다.
콜롬비아에서 빌어먹을 일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에 못지않게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바 선생님 바퀴벌레다. 콜롬비아의 동식물들은 대자연의 축복을 받았는지 전부 거대하고 수도 많다. 그래서 대체로 끔찍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놀랍고 끔찍한 대자연의 축복이 바 선생에게 피해 갔으면 좋았을련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여기 바 선생들의 특징은 건실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크기도 아주 크지만 속도도 빠르다. 특히나 바퀴벌레가 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주 아주 중요한 사항인데 이 선생들은 거의 '새'로 봐도 무방하다. 왜 이렇게 잘 아느냐 하면 우리 집에 벌써 두어 번이나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공포는 아직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글 쓰느라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쓰디쓴 커피와 함께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정말 집중해서 글 쓰는 중에 귓가에 벌? 새? 같은 것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두두두두 하던 게 헬리콥터스럽기까지 했다.) 무심코 옆을 돌아봤더니 그 옆에는 '새' 혹은 '용'에 가까운 바 선생 한 분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그 이후의 상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엄청나게 높은 고성의 비명을 질렀다는 것. 그리고 용수철이 튀어나가듯 의자를 박차고 나갔던 것. 그리고 용과 싸우는 기사가 된 듯 빗자루를 들고 용감하게 대적했다는 것. 그리고 철저하게 패배해서 패잔병이 되어 황급히 안방으로 피했다는 것 정도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아무리 기억해봐도 난 그 용을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안방에서 잠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바퀴벌레는 어디 있는지 바퀴벌레만 알고 있다. 부디 제발 우리 집에서 나간 것이었다면 좋겠다. 다행히도 그 사건 이후로는 그 바 선생님을 다신 뵙지 못했다. 혹시 같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온몸에 털이 솟구친다. 우리 집에 그만 계시고 바 선생님 제발 안전귀가하신 것이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를 괴롭히는 건 지진, 정확하게는 지진에 대한 공포이다. 지진을 여기 와서 벌써 수 번 느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지진을 느끼고 있다. 과외 선생님 세일라는 이곳이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 중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게 자랑거리면 안될 것 같지만 너무 자랑스럽게 말해서 반문조차 못하고 축하한다고 말했었다.
저번 달에는 정말 크게 움직여서 아파트 전체가 휘청이는 느낌이 들었었다. 검색해보니 그게 진도 6 정도의 지진이었다. 한국에 살면 인생에서 한번 느낄까 말까 하는 지진을 여기서 미용실 가듯 느낀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지금은 무섭다. 그래서 우리 집 출입구 한 켠에는 비상시 들고나갈 수 있는 응급키트를 두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코이카에서 나누어준 것이다. 코이카 최고.)
그리고 우리 집 냉장고 옆에는 재난을 알려주는 경보기도 설치해 뒀다. 지진, 가스 누출 등에 알람이 울린다고 설명서에 적혀 있었는데 아직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 심지어 진도 6.0 지진이 왔을 때도 이 녀석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마도 보통 지진에는 작동되지 않나 보다. 저 알람이 울릴 정도의 지진이면 이미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 아닐까 싶다. "그땐 이미 알람이 필요 없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지만 아마 누군가는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알람 소리를 듣고 싶을 수도 있을 테니 디스는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또 무서운 건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집안 구석구석 금이 생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없었던 금이었는데 이제는 A4지가 들어갈 정도로 틈이 벌어졌다. 집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외벽도 금이 크게 났는데 곧 한쪽 외벽이 뜯어지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역만리 지구 반대편에서 설마 지진으로 죽겠어라는 두렵고 안일한 생각으로 요즘 살고 있다. 미용실에서 고문으로 죽든 바퀴벌레와 싸우다 죽든 혹은 지진으로 죽든, 뭐 죽는다면 그래도 콜롬비아에서 열심히 잘 살려 노력했다 기억해주신다면 좋겠다.